근대화 이룬 ‘도약기’ vs 전근대성 드러낸 ‘몰락기’

지난 7월 14일 김재호 교수(전남대[]경제학부)가 이태진 교수(국사학과)의 저서『고종시대의 재조명』를 읽고 쓴 서평이 「교수신문」에 실리면서 시작된 고종시대 재조명 논쟁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논쟁은 김 교수의 서평에 대한 이 교수의 반론, 또 이에 대한 김 교수의 재반론에 이어 9월 10일자에 이 교수의 반론이 다시 게재되면서 점차 심화되고 있다.

 

이 논쟁에서는 고종시대 대한제국이 광무개혁 등을 통해 근대화되고 일본의 침략에 의해 근대화 시도가 좌절됐다고 보는 이 교수의 견해와, 대한제국은 이미 근대화 능력을 상실했으며 일제 강점기를 통해서야 근대화됐다고 보는 김 교수의 견해가 대립되고 있다. 고종 시대에 관한 논쟁은 고종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라 대한제국에 대한 평가와 일제 강점기 평가와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받았다.

 

 

“대한제국과 고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 바로잡아야”

 

 

두 교수는 고종시대에 주목하는 이유에서부터 분명하게 입장을 달리한다. 이 교수는 “고종시대에 대한 조명이 일제의 조선 역사 죽이기 차원에서 진행됐다”며 “대한제국과 고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반면 김 교수는 “우리나라가 대한제국을 끝으로 식민지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고종의 과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 고종이 미화되고,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고종시대에 대한 감상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시각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논쟁은 의회제도, 민국정치이념 등 구체적 사안을 들고 진행되고 있다. 이 교수는 중추원이 일본 메이지 유신의 입헌군주제 때의 의회와 비슷한 수준의 지위를 가졌으며 의회기능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중추원은 과세에 대한 동의권조차 없는 자문기구일 뿐이므로 의회로 보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또 이 교수는 “고종이 군주의 절대권을 추구한 것은 사실이지만 민권을 탄압하지는 않았다”며 대한제국이 민국정치이념에 따라 백성을 군주와 함께 나라의 주인이라 봤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왕이 양반의 우두머리에서 백성 전체에 대한 통치자로 새롭게 규정되는 민국정치의 이념은 조선 왕조 개창 때부터 인식된 것으로 새롭지 않으며, 동학ㆍ서학 등 새로운 세계관의 등장에서 알 수 있듯이 이념의 한계를 드러냈다”며 고종 시대의 전근대성을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고종의 군주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현대적 시각에서 과거를 바라보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는 데 비해, 김 교수는 “이 교수의 주장은 왕조 중심의 사관으로 대한제국 시기를 보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민족주의적 시각 벗어나  객관적으로 고종을 평가해야”



 

이 교수는 고종에 대한 자신의 평가가 민족주의적이라는 비판에 대해 “잃어버린 역사를 되찾는 일은 과도한 민족주의가 아니라 우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일제시대의 발전도 결국은 광무개혁의 연장선상에서 진행됐다는 것이다. 한편 김 교수는 일제 강점기에 과연 우리나라가 성장했냐는 의문에 대해 “공출 등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당시 시장 경제 원리에 따라 경제활동이 이뤄졌다”고 말한다. 그는 “‘과연 그 시장이 건전했나’는 문제에 대해서도 무조건 민족주의적 입장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왕현종 교수(연세대ㆍ사학과) 는 “김 교수의 관점은 제국주의의 경제 결정론과 유사한 것으로 경제사를 보는 좁은 시선일 수도 있다”고 지적했으며, 이 교수에 대해서도 “조선왕조에 주목한 이 교수의 견해는 민족주의적인 개인의 주관이 작용한 경향이 강하다”고 말한다. 

 

최근의 고종시대 재조명 논쟁에 대해 왕 교수는 “1997년 대한제국 100주년 때 있었던 논쟁 이후 지금까지 거의 발전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도 “고종시대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보다 실증적인 논의를 위해 고종 시대 역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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