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 낮은 ‘우리 동네’ 라디오가 소리를 잃지 않으려면
문턱 낮은 ‘우리 동네’ 라디오가 소리를 잃지 않으려면
  • 고유리 기자
  • 승인 2016.02.28 06: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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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즐거운 라디오 쾌지나청춘, 행복한 하루를 시작합니다.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노래 두 곡 띄우겠습니다.”

어르신 DJ의 정감 가는 인사와 봄노래가 울려 퍼진다. 노래가 끝난 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올해 첫 봄꽃 소식을 전하는 이 방송은 공동체 라디오 관악FM에서 관악구 노인들이 진행하는 ‘쾌지나청춘’이다. 이처럼 공동체 라디오는 주민의 삶에 가깝게 닿아있는 지역 방송으로 10년 넘게 지속돼 오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소소한 목소리를 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에 공동체 라디오가 생겨나고 지속되는 것일까. 공동체 라디오가 지니는 가치와 이를 지켜내려는 방송국의 노력을 살펴본다.

 

지역사회의 소통 내다보며 걸어온 길

 

2000년대 초 지역사회에 대한 조명이 적은 한국 사회에서 지역의 목소리를 담을 매체 환경은 척박했다. 지역신문은 활성화되지 않았고, 시민사회가 지상파를 가진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일부 미디어 운동 단체들에서 지역민이 참여하는 미디어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상황은 변했다. 현대사회에서 의미가 퇴색된 지역 공동체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공공성을 띠는 미디어에 지역민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진 것이다. 이를 받아들인 방송통신위원회(당시 방송위원회)는 2005년 소출력 라디오 시범 사업을 진행해 공동체 라디오의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이후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새로운 형태의 미디어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당시 라디오 운영을 시작한 관악FM 안병천 대표는 “공동체 라디오가 지역사회의 소통을 활성화할 수 있는 단초가 될 거라고 판단했다”고 이야기했다. 마포FM 송덕호 본부장 역시 “미디어 운동 단체에 종사하고 있다가 지역 언론으로서 제 역할을 하는 시범사례를 만들고자 했다”고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 이유를 말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민들이 직접 활동하며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전하는 공익 방송으로 자리잡았다. 총 7곳(서울 관악, 서울 마포, 성남 분당, 충남 공주, 경북 영주, 대구 성서, 광주 북구)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1W의 출력 범위를 가진 지상파 FM 방송으로 인정받았다. 이 7곳의 방송국에서는 매일 지역민들의 목소리가 흘러나와 다시 지역민들에게 전해지고 있다.

 

 

 

 

 

 

 

 

마을 공동체 속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서 

 

공동체 라디오는 마을 안 소통의 장이 되고 지역민들의 일상생활에 도움을 준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근처에 사는 노인, 주부, 청소년, 이주민 등이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프로그램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고등학교 진로를 걱정하는 중학생의 고민을 들을 수도 있고, 이주민 DJ가 자국어로 된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며 공감하기도 한다. 송덕호 본부장은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미디어를 통해 자신이 사는 고장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지역 공동체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 공동체 라디오의 가치를 설명했다.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 방송으로서 기성 방송이 포괄하지 못하는 지역 의제와 담론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진행하고 있는 지역 정보 프로그램이 그 대표적인 사례인데, 성남FM의 정보 프로그램 ‘굿모닝 성남’은 구청 등의 공공기관으로부터 지역 현안을 취재해 전하거나 도시개발 등 주요 쟁점을 분석하기도 한다. 성남FM 장나라 PD는 “성남시 이야기를 가장 잘 들을 수 있는 방송”이라고 해당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마포FM은 2010년 마포구 뉴타운 지역 철거 당시 재개발 조합이 철거 지역에 남은 주민들을 쫓아내려고 출입구를 막아 고립시킨 행태를 비판하고 철거지역 주민을 인터뷰해 상황을 생중계했다. 며칠 후 출입구는 다시 열렸고, 철거지역 주민들은 “아무도 우리 상황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는데 마포FM과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버려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마포FM에 고마움을 전했다.

 

지역민 누구나 DJ가 되고 청취자가 된다

 

마을 미디어 중에서도 라디오 전파를 이용하는 공동체 라디오는 지역민이 콘텐츠 생산자로 활동하기 쉽다는 장점을 지닌다. 공영방송이나 유선방송에서 만드는 지역민 참여 방송의 경우 지역민의 역할은 게스트 정도에 그친다. 반면 공동체 라디오에서 지역민들은 방송 제작 방법에 대해 몰라도 8〜10시간 가량 교육을 거치면 바로 방송 제작에 참여할 수 있다. 세트장과 음향, 촬영 등 품이 많이 들어가는 TV와는 달리 음향 장비가 갖춰진 스튜디오에서 사용 방법만 익히면 곧바로 방송을 진행할 수 있다. 때문에 “내가 무슨 방송이냐”고 손사래치던 주민도 체험 후 “나도 할 수 있겠다”며 자신감을 얻는다는 후문이다. 행동이나 모습에 구애받지 않고 목소리만 전해지는 매체이면서 자신의 소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점은 방송 진행과 제작에 대한 부담을 덜어 준다. 관악FM에서 활동하는 강민건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내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나온다는 데 매력을 느껴 자원활동을 시작해 대학교 4학년인 지금까지 활동하게 됐다”며 “전문성을 완벽히 갖추지 않더라도 방송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 특별하다”고 이야기했다.

진입장벽이 높지 않다 보니 공동체 라디오로 향하는 지역민 자원활동가도 많다. 현재 200여명의 자원활동가들과 함께 일하는 안병천 대표는 “신문 등 다른 매체가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데 반해 공동체 라디오가 10년 이상 유지된 것은 시민사회의 활발한 참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현재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5명 정도의 상근 활동가와, 일주일에 한두 번 방송국을 오가는 지역민(자원활동가)들이 만들어간다. 장나라 PD는 “성남FM의 방송 DJ는 100% 자원활동가들로 구성돼 있고 모두 일일이 대본을 작성해 가며 방송한다”고 설명했다.

공동체 라디오는 제작자뿐 아니라 청취자들이 접근하기도 쉽다. 라디오는 오늘날 영향력이 작아졌다는 평가를 받지만 웹이나 스마트폰으로도 쉽게 들을 수 있고,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지상파 채널의 접근성은 더 높을 수밖에 없다. 마포FM의 애청자라는 DJ 슈비 씨는 “밴드를 하고 있어서 다른 음악가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들었다”며 “아무래도 지상파 방송이다 보니 쉽게 청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지상파 방송은 기술의 혜택을 다 누리지 못하는 주민들까지 아우를 수 있다. 안 대표는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면 인터넷 비용이 필요한데 차상위계층에게는 그 비용도 적지 않은 돈”이라며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만 원짜리 라디오만 있으면 누구나 들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속되는 운영난 극복방안을 모색하다
 

현재 공동체 라디오는 계속되는 운영 문제로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져있다. 정규 방송사로 허가받고 전파를 확보했지만 허가와 동시에 공적 지원은 중단됐기 때문에 많은 방송사가 재정난을 겪었다. 지원이 끊겼으니 광고비를 비롯한 수익구조가 개선돼야 하는데 출력범위는 여전히 반경 수 km 남짓에 불과해 해당 지역 전체를 포함하지는 못하며, 광고 효과도 보장할 수 없는 상황이다. 송덕호 본부장은 “공적 지원이 사실상 전무해진 후 임대료를 내지 못해 쫓겨난 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광주시민방송(광주북구FM)은 지난해 말 지역 의회에서 ‘효율성이 낮다’는 이유로 예산 전액 삭감이 결정되자 이사회를 거쳐 폐국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운영난을 헤쳐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방송국들은 더 많은 지역 관련 콘텐츠 공급원을 끌어들이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공동체 라디오가 지역 미디어의 선두주자 역할을 하면서 소규모 라디오나 미디어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안병천 대표는 “공동체 라디오의 맹아가 될 수 있는 집단을 만들어 나가고 지역 미디어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퍼져야만 공동체 라디오가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실제 관악FM은 뉴스 플랫폼 ‘라디오스’를 개발해 서울의 소규모 마을 미디어가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전파를 할당받지 못한 소규모 마을 미디어는 더 많은 지역민들을 만날 수 있고, 이용자는 더 많은 지역 밀착형 방송을 선택해 즐길 수 있게 된다.

지역사회와 연계해 순환적인 수익구조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지원이 끊긴 뒤 방송국들은 라디오 체험 프로그램이나 라디오PD교실을 여는 등 주민 교육사업으로 재원을 확보했다. 마포FM은 사회적 경제 교육, 문화예술 교육을 진행하는 ‘마주하는 학교’ 사업과 야외 스튜디오를 지역 축제의 공연 장소로 탈바꿈하는 ‘이동 스튜디오’ 사업을 열었다. 지역 사회에 유익한 서비스를 제공해 얻은 수익은 지역을 위한 공동체 라디오가 지속되는 데 쓰여 다시 지역사회로 돌아간다.

공동체 라디오는 우리 사회에서 의미가 퇴색된 지역 공동체를 되살리려는 노력의 하나다. 또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현해 나가는 하나의 움직임으로서 지역민들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지역 의제와 담론을 누구보다 쉽고 가깝게 들려주고 있다. 공동체 라디오를 아끼는 사람들은 지역의 작은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공동체 라디오가 지속되길 바란다고 입을 모은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공동체 라디오는 더 많은 곳에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미래를 꿈꾸며 그들만의 전파를 발신하고 있다.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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