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새롭게 등장한 무소속 동아리: 한국 퀴디치팀, 스누브루, 스누텐트

3년의 고생 끝에 관악산 자락을 밟은 새내기 K씨. 공부 빼고 다 해보고 싶은 그에게 딱인 신생 동아리들이 있다. 유별난 관심사를 파고들기 위해 소속도 없이 무턱대고 만든 ‘무소속’ 동아리들은 톡톡 튀는 취미생활을 이어 나간다. 유유자적하며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 캠핑을 하고, 판타지 소설 『해리포터』 에 등장하는 마법사들의 스포츠를 실사판으로 벌이고, 맥주의 ‘참맛’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동아리까지. 동아리연합회나 단과대에 소속되지 않아 동아리 소개집엔 없지만, 그래서 더욱 새 멤버를 기다리는 세 동아리를 만났다.

별밤 모닥불과 함께 멍 때리기, 스누텐트

툭하면 “스텐바이!”라고 외치는 이들이 있다. 언제든 캠핑을 갈 준비가 됐다(stand by)는 뜻이자 언제나 ‘스누텐트 옆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내 손으로 해내는 캠핑의 묘미에 푹 빠진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자 만든 단체가 바로 캠핑 동아리 ‘스누텐트’다.

평소 특별한 감성 여행을 동경하던 김바로 씨(체육교육과 졸)를 비롯한 5명의 친구는 음미·담소·패기·설렘의 첫 글자를 따서 ‘텐트 속 음담패설’이라는 캠핑 소모임을 만들었다. 그들은 제주도에서 별 바다를 보는 ‘텐트 속 돌하르방’, 밤새 책을 읽는 ‘텐트 속 주경야독’ 등 국내 곳곳에서 별난 캠핑을 꾸렸고 바다를 건너 독일로 ‘텐트 속 젊은이(Germany)’ 캠핑까지 떠났다. 2014년 중순엔 국내 유일의 대학가 캠핑 동아리 스누텐트를 기획했다.

이들이 이야기하는 캠핑의 묘미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을 자신의 손으로 일궈낸 뒤의 편안함이다. 텐트를 치기 위해 땅을 고르고 모닥불을 피우기 위해 장작을 패는 것까지 서로 도와가며 일하다 보면 금세 끈끈한 가족이 돼 있다. 양은비 씨(디자인학부·13)는 “일을 끝내고 노을을 바라보며 ‘불맛’ 나는 저녁을 먹는 것이 좋아서 캠핑하러 다닌다”고 웃었다. 모닥불을 보며 ‘멍을 때리는’ 순간인 ‘불멍’은 스누텐트 멤버들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일하느라 노곤해진 몸을 녹여주는 모닥불은 다닥다닥 타오르고 밤하늘에는 별이, 귓가에는 자연의 소리가 차오른다.

▲ 사진 제공: 스누텐트

스누텐트는 자신들만의 테마 캠핑을 연다. 교복을 입고 떠난 ‘수학여행’, 분교를 개조한 캠핑장에서 한 판 운동회를 벌인 ‘스누텐트 운동회’, 돈·술·시계·자동차·핸드폰 없이 다녀온 ‘오無캠핑’까지. 그중에서 멤버들이 입을 모아 최고로 꼽는 캠핑은 ‘라디오 데이’ 캠핑이다. 양 씨는 “익명으로 사연을 적은 다음 저녁에 불가에 둘러앉아 듣고 고민을 해결해주는 시간을 가졌다”며 “서로 간의 거리가 부쩍 가까워질 수 있는 캠핑의 특성을 잘 살려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스누텐트는 다양한 테마로 캠핑 콘텐츠를 만들어 대학가에 퍼뜨리고자 한다. 조헌 씨(디자인학부 졸)는 “술만 마시는 흔한 엠티 대신 텐트 들고 떠나 재밌게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캠핑 콘텐츠를 차곡차곡 늘려갈 이들은 날씨가 풀리기만을 기다리며 ‘스텐바이’ 중이다.

빗자루 타고 ‘브룸, 브룸!’, 한국 퀴디치팀

열댓 명의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허벅지 사이에 빗자루를 낀다. “Brooms up!” 휘슬이 울리자마자 이들은 배구공을 형광 분홍색 훌라후프들 사이로 던져 넣기 위해 달린다. 날지 않는다는 점만 빼면 영락없이 소설『해리포터』에 나오는 퀴디치*다. 이 경기는 단순한 패러디 혹은 장난이 아니라 2005년 미국 버몬트 주의 두 머글** 대학생이 시작한 뒤 유럽에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신생 스포츠다. 이를 국내 최초로 들여온 한국 퀴디치팀은 오늘도 퀴디치를 알리기 위해 빗자루를 끼고 달린다.

한국 퀴디치계의 문익점 이송윤 씨(정치외교학부·12)는 노르웨이로 교환학생을 갔을 때 처음 퀴디치를 접했다. 빗자루를 다리에 낀 채 달리고, 경기장을 날아다니는 황금색 공 ‘스니치’를 대신해 사람이 공을 등 뒤에 매달고 경기장을 누빈다. 이 씨는 “해리포터를 좋아했지만 덕후까지는 아니었다”면서도 “재미 삼아 해본 퀴디치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결국 지난해 9월 그는 국제 퀴디치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서울대에 재학 중인 두 외국인 학생을 모았고 지인들을 총동원해 한국 땅에서 최초의 퀴디치 경기를 열었다. 신기해 보여서 참여한 지인들도 이내 출구 없는 매력에 빠졌다.

▲ 사진 제공: 한국 퀴디치팀

소설에서 끄집어내 만든 퀴디치는 현실의 스포츠와 달리 승패보다 선수의 다양성을 우선시한다. 퀴디치에만 있는 ‘젠더 룰’은 한 팀에 40%이상이 같은 성이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이때 성은 선수 본인이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달렸으며 여성·남성으로 자신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은 성을 선택하지 않아도 된다. 이 씨는 “의무적으로 다양한 젠더가 섞여 평등하게 경기가 진행된다”고 강조했다. 또 선수가 원한다면 국적 상관없이 어느 팀에서든 뛸 수 있다. 예컨대 한국인이라도 미국 국가대표로 나와서 한국 국가대표들과 실력을 겨뤄도 된다. 실제로 한국 퀴디치팀은 총 인원의 1/5이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어 팀 내에서 영어와 한국어가 섞여서 오간다.

매주 수요일 저녁 8시부터 한국 퀴디치팀은 퀴디치를 즐기겠다는 일념으로 종합운동장에서 연습경기를 진행한다. 공을 주고받으며 몸을 푼 그들은 본격적으로 경기하기 위해 6명씩 두 팀으로 나눈다. 공격수들은 상대편의 후프에 공을 넣으려 노력하고 수비수들은 후프로 들어오는 공을 쳐 내거나 공으로 공격수를 맞춰 방어한다. 경기시작 17분쯤 투입되는 인간 스니치가 잡히는 순간 휘슬이 울리며 경기가 끝난다. 이긴들 트로피가 나오지는 않지만 이들은 두 시간 내내 퀴디치를 즐기며 잔디 위를 뛰어다닌다.

이들은 한국에 퀴디치를 널리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다른 학교에서도 팀을 만들 수 있도록 홍보하는 것은 물론 기업에 후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현재 가장 큰 목표는 올해 7월 국제 퀴디치 월드컵에 출전하는 것이다. “이상하게 보는 시선은 이미 초탈했다”며 웃는 이송윤 씨는 “퀴디치는 양덕들만의 놀이가 아니라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지키려 노력하는 진짜배기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퀴디치: 빗자루를 타고 날면서 후프 모양 골대에 공을 집어넣는 경기로, 경기 규칙은 럭비나 피구와 비슷하다. 경기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대신 경기 중반 투입되는 ‘스니치’를 잡으면 경기가 종료된다.

**머글: 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사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말

▲ 사진 제공: 스누브루

니들이 맥주 맛을 알아? 스누브루

새로운 술 문화를 주도할 차세대 주자가 관악에 떴다. 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음미하기 위해서 맥주를 즐기는 ‘맥덕’들이 모여 맥주 동아리 ‘스누브루’를 만들었다. 술맛 나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은 여러 맥주를 마셔보고 공부하는 것에서 나아가 직접 양조에 도전한다.

“밥 대신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며 앞머리를 쓸어 넘긴 장원혁 씨(자유전공학부·11)의 귀 밑에는 맥주를 뜻하는 수메르 쐐기문자가 선명하다. 이처럼 문신으로 새길 정도로 맥주를 사랑하는 장 씨와 맥덕의 메카인 이태원의 한 펍에서 맥주에 대한 사랑을 키워가던 알바생이 지난해 말 의기투합해 스누브루를 탄생시켰다.

스누브루는 다른 술과 다른 맥주만의 매력을 이야기한다. ‘와인은 신의 손에, 맥주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는 농담이 있듯 자연조건이 따라줘야 하는 와인과 달리 건조 재료를 사용하는 맥주의 맛은 재료를 배합하는 사람의 손에 달렸다. 또 이미 완성된 술을 바텐더가 혼합하는 칵테일과 달리, 맥주는 발효단계서부터 다양한 종류로 생산된다. 스누브루는 한국이 현재 다채로운 맥주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지역이라고 말한다. 장 씨는 “지금 한국인들은 세계 맥주계의 ‘금수저’”라며 “맥주 시장이 늦게 열렸기 때문에 각국에서 이미 검증된 맥주만이 들어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제 시작된 스누브루는 시음회와 강좌를 진행한 것은 물론 본격적인 활동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새해를 맞이해 ‘새해 복 마시기’ 시음회에서는 독일 맥주의 한 스타일인 ‘복’(bock)에 속하는 여러 술을 마셔보며 차이를 비교했고, 지난달 25일 열린 강좌에서는 ‘한국 맥주, 과연 맛이 없는가?’라는 주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 그것이 편견임을 밝혔다. 더불어 관악구의 여러 맥주 전문점과 제휴를 맺고 있다. 장 씨는 “회원들에게 다양한 맥주를 접할 기회가 생기는 것은 물론 다채로운 맥주가 유통될 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새로운 술문화를 이끌어나갈 이들의 취지에 공감한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현재 정회원 수는 46명, 일반회원 수는 200여 명에 달한다. 스누브루는 앞으로 주관적인 리뷰가 포함된 ‘관악 맥주 지도’를 만들고 스누브루라는 이름에 걸맞게 직접 양조를 시도할 계획이다.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며 맥주에 대해 알아가는 장 씨는 “우리만의 맥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맥주 발효되는 구수한 냄새가 관악에 풀풀 날릴 날도 머지않았다.

아직 소속이 없어 활동비 지원을 받지는 못하지만, 구성원들은 남다른 애정 때문에 활동에 아낌없이 사비를 쓴다. 현재 고학번은 물론 졸업생들과 대학원생들이 함께 새싹단계부터 활동을 일궈나가는 중이다. 관악의 무소속 동아리들은 색다른 평생 취미를 가꿔나갈 또 다른 학우들을 기다리고 있다.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