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조국의 미래를 묻거든 눈을 들어 관악을 보라”라는 말을 아마 들어 보았을 것이다. 들을 때마다 멋쩍었었는데, 최근에 이 말을 우연히 다시 접했을 때의 기분은 좀 더 복잡했다. 내친김에 두어 가지를 더해 보면, 내가 대학에 막 들어왔을 때 개교 50주년을 기념하는 “겨레와 함께 미래로”라는 문구가 사방에 널려있었다. 70주년이 된 올해에는 “세계를 품고 미래로”로 바뀌었다. “조국의 미래”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불편하다. 리더십이라는 것은 꼭 이런 식의 거창한 수사를 필요로 하는 것일까? 그것도 자기규정이라는 형태로?

한국사회의 미래를 모색하는 구심점이 되고자 하는 서울대의 열망과 자부심은 충분히 존중할 만하다. 나 또한 서울대에서 배우고 가르치게 된 것을 축복으로 생각하고, 심지어 나름의 사명감도 느낀다. 하지만 우리는 서울대의 리더십에 대한 한국사회의 평가가 꼭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또 적어도 나의 경험에 따르면 서울대 내부라는 공간에서도 이러한 리더십과 구심점이 명확히 존재하지는 않는다. 이런 경우 각종 구호와 사업을 통해 비전을 정립하려는 노력이 진행되기 마련인데, 아무래도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성과를 내는 경우는 드물 것이고, 그렇게 모아내고 밀어가는 과정이 구성원들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서설이 길었는데, 요즘 『대학신문』을 보면 구심점이 보이지 않고 하나의 비전으로 모아지지도 않는 서울대의 현재 상황이 비춰지는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꼭 잘못된 것이 아닐 뿐더러, 이런 상황을 얼른 타개하려는 조급함이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다. 학내 구성원들의 위치와 경험과 생각이 다양한 만큼 십여 쪽의 지면을 관통하는 뚜렷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찌 보면 우리 공간의 솔직한 반영일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목소리들이 그저 흩어져 있는 것과 그것들이 나름의 얼개 속에서 서로 간섭하며 얽혀있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그렇다면 『대학신문』이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너무 많은 소재를 다루면서 정보의 양을 늘리는 것보다는, 다수의 학내 구성원들이 응당 관심을 가질 법한 사안을 (꼭 학내의 이슈일 필요는 없다) 좀 더 집요하게 파고드는 것이다. 즉 하나로 수렴된 비전이나 메시지를 구성해내려 무리를 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저런 경험과 목소리가 그저 나열되기보다는 함께 대화하는 장(場)을 입체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예컨대 「종합」면에서 언급된 사안이 「사회」, 「학술」, 「의견」 등에서 다각도로 다뤄지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위한 좋은 소재 중 하나는 학내 거버넌스의 문제다. 지난 호의 경우 ‘2016년도 대학운영계획안’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1면에서 그 내용을 전달하는 정도로 그친 것은 아쉬웠다. 이번 호에서 마땅히 주목을 받아야 했던 신입생 관련 내용은 「종합」면에서 「의견」면에 이르기까지 나름 입체적 구성이 돋보였으나, 「새내기 특집」면은 그들이 필요로 하고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좀 더 풍부하게 실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또 새내기를 비롯해 새학기를 맞는 다양한 학내 구성원들의 마음이 설렘과 희망 말고도 두려움과 조급함 혹은 ‘개강 블루스’ 같은 것일 수도 있을텐데, 그런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던 것도 좀 아쉽다.

물론 매번 특집과 기획을 중심으로 지면을 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 「학술」이나 「문화」 등에서 제공되는 이런저런 정보와 분석 각각이 매우 상큼하게 다가올 때도 많다. 하지만 다른 통로를 통해서는 찾기 힘든 서울대 구성원들의 논의와 교류의 공간으로서의 『대학신문』의 역할이 더 도드라진다면 더욱 좋을 것 같다는 바람이다.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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