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개교 70주년 - 서울대와 지역사회

올해 서울대가 개교 70주년을 맞는다. 이에 『대학신문』은 2016년 한 해 동안 서울대의 70주년을 돌아본다. 서울대는 1975년에 관악구로 이전한 이후 지금까지 관악구와 공생하고 있다.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대가 관악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되짚어본다.

 

서울대와 함께 성장해온 관악구

서울대가 관악구로 옮겨온 것은 관악구가 막 도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을 때다. 1963년 지금의 관악구 지역(당시 영등포구)이 서울시로 편입된 이후 서울시의 정책에 따라 관악구에는 철거민 집단이주 정착단지가 조성됐다. 계획보다 많은 철거민이 물밀듯이 들어오면서 산기슭과 강가에 불량주택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이에 1970년 신림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시작됐고 주택 개량 재개발사업이 한창이던 1975년 동숭동, 공릉동 등 곳곳에 캠퍼스가 나뉘어 있던 서울대는 캠퍼스 종합화 계획에 따라 관악구로 이전했다.

▲ 1971년 4월 2일 서울대 종합화의 실현을 알리는 서울대 종합캠퍼스 기공식이 관악산 부지에서 열렸다. (사진 출처: 『서울대학교 40년사』, 서울대학교 40주년 편찬위원회)

서울대가 옮겨온 당시엔 각종 도로가 정비되고 교통 여건도 좋아지던 상황이었다. 1978년 남부순환로가 건설되면서 관악구가 다른 지역과 쉽게 연결됐고 1980년대에는 도로 체계가 정돈됐다. 특히 1983년에는 지하철 2호선이 개통돼 노면 교통수단에 의존하던 관악구의 교통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됐다. 서울대입구역 김종은 역장은 “지하철 2호선 개통으로 서울대 및 관악구청, 소방서 등 각종 공공기관에 대한 접근이 쉬워져 지역사회의 교통 편의가 증진됐다”며 “현재 서울대입구역 1일 평균 승하차 인원은 서울시 전체 역사 중 10위권에 들 정도로 이용객이 많다”고 전했다.

교통뿐만이 아니다. 관악구의 지역 경제는 서울대 구성원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서 서로 영향을 미치고 함께 변화를 겪기도 한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신림9동(녹두거리) 주변은 고시 공부를 하는 이들이 모여들어 고시촌이 형성됐다. 2009년 로스쿨 제도 도입이 발표된 이후 지역 상인들은 줄어든 고시생 대신 대학생을 수용하기 위해 업종을 바꾸는 등 새로운 살길을 찾는 듯하다. 1997년부터 12년간 고시촌에서 하숙집을 운영했던 아주머니는 “7년 전부터는 수요가 줄어서 하숙 대신 원룸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전에 하숙집을 하시던 분 중에 원룸으로 업종을 바꾼 사람이 많다”고 변화한 상황을 설명했다.

서울대입구역 주변에도 집을 구하는 서울대생과 서울대 졸업생이 많다. 실제로 5층 빌라와 연립주택이 많았던 관악구청 일대에는 1999년 재건축 이후 아파트와 함께 원룸, 오피스텔, 독서실이 많이 들어섰다. 1973년부터 관악구청 인근에서 자리를 지켜온 한성부동산 전명현 사장은 “부동산을 찾는 손님의 70% 이상이 서울대생”이라며 “교통이 편리하다 보니 서울대를 졸업한 뒤에도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오피스텔을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거주민을 포함해 유동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주변 상인들 사이에선 “서울대가 먹여 살린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관악구에는 서울대 구성원을 주 고객으로 삼아 운영하는 가게가 많다. 관악구청 옆에서 8년째 꽃집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요즘 경기가 어려워져 일반인은 꽃을 거의 사지 않지만 젊은 사람은 애인 주려고 꽃을 많이 산다”며 “또 입학식, 졸업식 때문에 서울대 손님이 많다”고 전했다. 서울대 손님을 기대하고 새로운 터를 잡은 상인들도 많다. 1997년부터 낙성대역 인근에서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김성수 씨(61)는 “11년 동안 다른 곳에서 운영하다가 자리를 물색하던 중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며 “우리나라에서 공부를 제일 잘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어서 그런지 손님은 이전보다 훨씬 많다”고 전했다.

 

▲ 지난해 여름, 서울대 미대 교수가 지도하는 '관악창의예술영재교육'에 참여한 관악구 지역 초등학생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 제공: 관악구청)

교육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진 관악구

그러나 서울대와 지역사회의 관계는 단순한 경제적 공생 관계에서 더 나아간다. 많은 서울대 구성원들은 관악구에 자리 잡은 직후부터 인근 주민들과 교육 활동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다. 1970년대 서울대 학생들은 난곡 지역에서 탁아방이나 야학을 열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공부방 활동을 주도했다. 재개발사업으로 삶의 터전에서 쫓겨날 처지에 있는 주민들의 삶에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구청을 중심으로 서울대와 관악구의 교육 협력이 이뤄졌다. 특히 2011년엔 교육·복지·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학·관 협력을 약속하면서 이후 꾸준히 사업이 확대됐다. 2005년부터 진행된 ‘관악시민대학’은 주민들의 호응에 힘입어 심화 과정으로 대학원 과정이 생겼고, 지난해에는 최고위과정까지 개설됐다. 사업 개수도 늘어 지난 한 해에만 36개의 교육 사업이 진행됐다.

가장 인기 있는 사업은 서울대 교수의 재능 기부와 서울대 학생의 멘토링이다. 관악구청 교육사업과 대학협력팀 서윤희 주무관은 “멘토링 사업은 방과 후에 사교육 부담이 있는 학생이나 서울대 학생에게서 배우고 싶은 학생이 많아 항상 인기가 많다”고 전했다. 매주 토요일 인근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생명과학여행’ 견학을 이끄는 이병천 교수(수의학과)는 “국가연구비를 받아 수행한 결과물로 지역사회에 이바지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했다”며 “매년 1,300명의 고등학생이 다녀가고 견학 후 진로를 바꾼 학생이 생길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고 말했다.

지난해 사범대와의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여해 꿈을 이룰 길을 찾은 고등학생도 있다. 한윤재 씨(18)는 “광고 분야에 관심이 많았지만 미술학원에 다닐 형편이 못돼 디자인과 입시를 포기했었는데 멘토링 도중 실기시험 없이 진학 가능한 홍보학과를 알게 됐다”며 멘토에게 감사를 표했다. 멘토 이지수 씨(종교학과·15)는 “장래희망이 고등학교 영어교사고 가르치는 게 좋아 멘토로 참여하게 됐다”며 “학업적인 내용뿐 아니라 언니처럼 편하게 상담을 해주며 정서적으로도 도움을 주려 했다”고 뿌듯해했다.

교육 내용이 주민들 삶 속에 녹아들면서 그 효과가 지역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관악시민대학원’을 수료한 600여 명의 주민 중에는 자체 모임을 꾸려 관악구의 자연환경 보존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주변의 불우이웃을 돕는 움직임도 있다. 4기 수료생 윤재홍 씨(70)는 “지난해엔 외부인이 자주 오는 신림사거리 순대타운이 너무 지저분해 골목 정화 활동을 펼쳤다”며 “올해엔 관악구에 있는 장애인 단체와 아시아권 유학생을 지원하는 활동을 계획 중”이라고 소개했다.

지난해엔 관악구 지역 정치인들이 서울대 교수로부터 의정활동에 필요한 교육을 받기도 했다. 여기에 참여한 관악구의회 이성심 의장은 “정책 심의에 필요한 전문성을 획득하는 데 도움이 됐다”며 “의원 스스로 공부하는 분위기를 형성해 정책 의회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 2007년 복원사업으로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생기면서 도림천이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관악구의 환경 개선을 위해 나란히 걷다

앞으로 서울대는 지역사회와 또 어떤 관계를 맺어 나갈까. 서울대 이전 이후 지금까지 해묵은 주제인 환경문제는 지역사회에서 서울대의 역할을 되돌아보게 한다. 서울대가 관악산 훼손의 주범으로 꼽히면서 지역사회와 마찰을 빚은 것은 1996년 공대 신공학관(301동)이 준공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건강한 도림천을 만드는 주민모임’(도림천모임) 유정희 창립대표는 “301동은 높이와 번쩍거리는 외관으로 관악산을 오르내리는 시민들에게 서울대의 관악산 파괴에 대한 우려를 만들어냈다”며 “그 결과 농생대 이전, 미술관 건립 문제에 대해 관악구민의 격렬한 반대 여론이 형성돼 서울대 내부의 환경문제가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1999년 농생대의 이전 부지는 애초 계획했던 낙성대 쪽 국수봉에서 자연대 운동장으로 변경됐고, 1994년에 확정된 미술관 건립 계획은 녹지 훼손 논쟁으로 지연되다 2002년 신축 부지를 20m 옮기는 것으로 합의됐다. 2000년 12월엔 ‘관악산을 지키는 시민 모임’을 비롯해 서울대의 개발을 제한하려는 주민들의 청원이 시의회에서 받아들여졌고, 이에 서울대는 순환도로 밖 녹지지대는 개발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서울대가 환경문제 개선을 위해 힘쓴 예도 있다. 1996년 도림천 복개 반대 운동이 대표적이다. 교통난 해소를 위해 관악구청이 도림천을 도로로 덮어버리겠다고 발표하자 서울대 환경 전문가들과 학생들이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며 지역 주민과 머리를 맞댔다. 이에 참여했던 신장식 씨(정치학과·96졸)는 “90년도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대 학생들이 지역과 함께 호흡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다”며 “공대, 자연대 학생들은 전공 지식을 활용해 수질 실태조사에 나서는 등 도림천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서울대는 도림천을 중심으로 지역 환경에 대한 문제의식을 키워나갔다. 서울대가 관악구로 이전해오면서 땅이 콘크리트로 덮여 빗물이 흡수되지 않아 도림천이 메마르고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됐다는 반성이 일었기 때문이다. 김정욱 명예교수(환경대학원)는 “이장무 전 총장 재임 시절에는 관악산과 도림천을 비롯한 지역 환경을 위해 서울대가 같이 한다는 방침을 세우기도 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동아리나 교과목 차원에서의 관심이 여기에 힘을 보태고 있다. 교내 환경동아리 ‘씨알’은 2010년 환경영향평가를 무시하고 도림천을 콘크리트로 도배한 본부를 비판하며 도림천의 사라진 물길을 그리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2005년부터 현재까지 사회봉사 과목을 신청한 학생 일부는 매주 관악산과 도림천에 찾아가 생태 변화를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2013년 빗물을 저장해 도림천의 홍수량을 줄이기 위해 공대 35동에 설치한 빗물시설은 이번 학기부터 사회봉사 교과목을 수강한 학생들 일부가 확충에 나서게 된다. 한무영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서울대의 개발로 여름에는 도림천이 범람하고 봄에는 물이 말라 인명과 재산을 위협하고 있다”며 올해부터 현재 두 개뿐인 빗물시설을 확충할 것이라는 계획를 밝혔다.

그러나 최근 지역 환경문제에 대한 서울대의 노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회봉사 업무를 담당하는 도림천모임 김태현 사무국장은 “사회봉사를 수강하는 학생들이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만 활동해 지역사회에 대해 장기적으로 논의할 기회가 적다”며 “정해진 프로그램 자체는 열심히 하지만 그 이상의 것에 대한 고민이나 노력은 과거보다 부족한 편”이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실제로 지난 2010년 도림천의 부활을 위해 교내 환경 관련 전공자와 환경 동아리가 결성한 ‘건강한 도림천 연구회’도 실질적으로 활동이 중단된 상태다. 연구회를 이끌었던 김영오 교수(건설환경공학부)는 “자발성을 갖고 시작했는데 봉사로만 활동을 이어가기는 힘들었다”며 “지금이라도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물길 복원에 대한 필요성을 제기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서울대 구성원들은 서울대 내부에서만이 아니라 외부의 많은 사람들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재능 나눔과 지역 문화 축제부터 등산객 문제와 저류조 설치까지 여러 논의에 대해 서울대 구성원들은 다음 10년 동안 어떻게 대응할까. 개교 70주년을 맞은 지금 서울대가 지역사회와 단절한 채 고유한 목적만을 추구하는 외딴 섬으로 남지 않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대학의 책임을 되새기길 기대한다.

 

 

사진(맨 아래):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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