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발달장애인 복지의 현주소

발달장애인 가족의 동반 자살 사건을 기억하는가. 숱한 사례가 있는 탓에 각자가 기억하는 일화는 다를 수 있다. 미흡한 발달장애인 복지체계와 개별 가정에 돌봄 부담을 떠맡긴 현실은 많은 가정을 벼랑 끝으로 몰아넣었다. 그나마 지난해 11월부터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발달장애인법)이 시행돼 복지체계를 강화할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대학신문』에선 국내 발달장애인 복지의 현주소를 들여다봤다.

▲ 2일(수) 노원교육센터가 개장했다. 이날 인터뷰에서 이성봉 부장은 "시설을 분리하기보다 지역사회와 계속 부딪히는 게 중요하다"며 "노원 지역사회 주민이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는 사랑방같이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열악한 발달장애인 복지 실태

지난 2일(수) 노원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노원교육센터)가 개장해 정규반 수업을 시작했다. 발달장애인법 시행 후 법을 근거로 마련한 첫 복지시설이다. 새롭게 단장한 교육센터는 지역사회와 발달장애인이 함께하겠다는 구호를 반영한 듯 공간이 칸과 벽으로 막혀있기보다 서로 개방되고 연결돼 있었다.

이날 오후에 열린 수업은 한 교실에 5명씩 총 6개 반에서 각기 다른 내용으로 진행됐다. 첫날인지라 각 반에서는 서로를 소개하고 반장과 부반장을 뽑기도 했다. 앞으로 이들 성인 중증 장애인 30명을 대상으로 계속될 노원교육센터 커리큘럼은 삶의 질 향상이라는 큰 목표 아래 문예, 여가생활, 직업기능교육 등을 적절히 배합하는 식이다. 노원교육센터 이성봉 부장은 “사회복지는 개별화가 기본 원칙”이라며 “일대일 관리는 힘들더라도 최대한 성향을 분류, 조합해 개별 상황에 맞추려고 노력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발달장애인은 발달이 평균보다 늦어 인지능력이 낮고 의사소통과 사회적 상호작용에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다. 법적으로는 지적장애인과 자폐성장애인, 그 밖에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받는 사람으로 발달장애인을 규정하고 있다. 한국엔 아직 발달장애에 대한 통일된 정의가 없지만 법적 정의는 그에 해당하는 발달장애인에게 행·재정적, 교육적 지원을 제공하는 기준이 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발표한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4년 국내 발달장애인은 전체 장애인 270만여 명 중 약 20만여 명으로 발달장애인 수는 수년간 증가 추세에 있다.

전문가들은 발달장애인은 장애의 특성상 다른 장애인에 비해서도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발달장애인이 복지체계 안으로 들어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뿐더러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데 서툴러 교육·근로가 특히 어렵기 때문이다. 이성봉 부장은 “시각장애, 청각장애를 비롯한 일반지체장애를 지원하는 서비스도 물론 부족하지만 성인 발달장애인에 대한 서비스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의 68%에 달하는 성인 발달장애인의 경우 시설 이용률이 50% 수준에 불과하다.

발달장애인은 당사자가 직접 복지 개선을 요구하기 힘들다는 문제도 제기됐다. 함께가는장애인부모회 김남연 회장은 “지체장애인은 의사 표현이 가능하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 그것이 어렵다”며 이들에게 필요한 정책과 제도를 마련하기 위해 “부모가 모여서 대신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수고교 졸업 이후 복지에 공백 생겨

현재 발달장애인 복지체계에서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성인기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복지가 끊기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에선 고등학교를 졸업한 때를 대학에 가거나 구직을 하는 시기로 여긴다. 그에 따라 중학 교육까지는 의무교육과정으로 정하며 고등학교 과정도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에 있다고 여긴다. 발달장애인도 마찬가지로 20살이 되기 전까지는 이들을 수용할 특수교육시설이 마련돼 있다. 그러나 발달장애인에게 이런 의무교육 서비스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들에겐 평균적으로 34년이라는 긴 돌봄 기간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돌봄 시설과 직업 재활서비스가 충분치 않은 탓에 현행 복지체계에서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발달장애인은 구직을 할 수도, 복지 서비스를 이용할 수도 없다. 이성봉 부장은 “서비스 기관의 수요보다 공급이 적기 때문에 센터에 들어가려면 몇 년씩 기다려야 한다”며 “(신설된 노원교육센터에) 오신 분 중에서도 집에서 몇 년 있다가 오신 분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많은 경우 발달장애인의 복지 단절은 곧 가정의 위기를 의미한다. 중증 발달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오롯이 부담해야 하는 경우 부모의 직업 단절은 흔히 있는 일이다. 문제가 심각하면 최근 몇 년 새 늘어난 발달장애인 가정 동반자살 사건에서처럼 가정의 해체로까지 이어진다.

성인 중증 발달장애인 딸(28)을 둔 황은자 씨(58)는 딸을 돌봐줄 시설을 찾지 못해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인 2008년부터 3년간 지자체의 주간보호 시설에 딸을 맡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주간보호 시설이 “인력도 부족하고 프로그램도 산책과 식사처럼 단순한 활동 위주”여서 “딸이 스트레스를 받기에 집으로 데려왔다”고 말했다. “애가 힘들면 엄마도 아프다”는 이유에서였다. 생활이 여의치 않았던 황 씨는 딸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새벽 시간이나 집에서 활동보조인을 쓸 수 있는 일과 중 5시간 동안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지난해까지 20년 동안 새벽에 우유 배달을 했다”던 그는 “나이가 드니 힘들어서 돈을 벌기가 더 어렵다”고 털어놓았다.

시설에서 장애인을 수용할 여유가 없는 문제는 중증 발달장애인에게 더 가혹한 현실로 돌아온다. 중증 장애인을 돌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탓이다. 가끔 폭력성을 띠는 발달장애인 아이를 둔 A씨는 “시설에서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보조교육사를 때렸는데 그가 맞대응한 일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억울했지만 눈치를 봐야 하는 처지였던 그는 종국에는 아이를 집에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이성봉 부장은 “아직 한국은 중증 장애인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때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있다”며 이는 “인력이 적어서 선생이 중증 장애인을 돌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법 제정으로 돌파구 마련될까

그나마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되면서 숨 쉴 틈이 생길 전망이다. 당시 발달장애인 복지체계가 장애인 당사자와 장애인을 돌보는 가정의 실질적인 필요에 부응하지 않는다는 목소리에 정치권이 응답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선 여야 양 진영 후보가 발달장애인 복지 개선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 2014년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돼 지난해 11월부터 시행됐다. 여기엔 발달장애인에게 자기결정권과 의사소통권을 포함한 각종 권리를 보장하고 개별사례에 맞춘 지원계획을 수립하도록 하는 여러 근거조항이 담겼다.

올해 초 노원·은평구의 발달장애인평생교육센터 설치는 법에 근거를 둔 발달장애인 복지의 출발을 알렸다. 교육센터의 설립 확정엔 법 제정 과정에서와 마찬가지로 장애인부모회의 역할이 컸다. 김남연 회장은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통해 우여곡절 끝에 우선으로 조례를 만든 것이 평생교육센터 건”이라고 말했다. 발달장애인부모회와 관계자들은 박 시장과의 약속에 따라 2020년까지 서울시 모든 자치구에 센터가 설치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 장애인복지정책과 담당자는 이중 “올해 초엔 노원구와 은평구에서 센터를 열고 하반기에 3개소를 추가로 설치해 내년 초까지 총 5개소를 설치할 계획”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법 제정은 시작일 뿐 발달장애인 복지가 자리를 잡으려면 수년의 시간과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발달장애인법이 광범위한 권리를 명시하고 있음에도 어디까지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근거조항의 성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임채영 교수(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는 “법에 따르면 발달장애인을 위한 센터와 거점병원을 세운다고 하는데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곳은 많이 없다”며 “법에 근거한 발달장애인 복지가 현실화하려면 적어도 3~5년은 지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 과제는 '분리' 아닌 '통합'

발달장애인을 수용할 수 있는 사회로 나가기 위해선 법 제정을 기반으로 여러 제반 시설을 마련하는 동시에 전문적인 복지체계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남연 회장은 “학령기 특수교육부터 성인기 의료권, 건강권, 주거권까지 발달장애인 복지가 제대로 돼 있는 게 없다”며 다양한 필요에 대응해 시설을 증축하고 전문 인력·교원을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었다. 정책 결정 과정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임채영 교수는 정부가 정책을 만드는 과정에 “당사자의 참여를 보장하고 서로 다른 부처와 시설 간 연계를 활성화해 복지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가정에서 바라는 궁극적인 복지의 모습은 지역사회와 어울리면서 장애로 인해 구조적으로 차별을 받지 않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발달장애인을 특별 관리나 시혜의 대상이 아닌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이 요구된다. 전문가들은 교육이나 근로 시설을 마련할 때도 별도로 분리하기보다 비장애인이 이용하는 시설 안에서 공간을 만드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한다. 이성봉 부장은 “장애인을 분리하다 보니 발생하는 비용이 있다”며 “일반 시설의 한 부분을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게 해주면 예산 절감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나아가 발달장애인을 사회의 동료 구성원으로 보는 분위기가 형성되려면 정부와 시민단체만이 아닌 지역사회의 관심과 동참이 요구된다. 임채영 교수는 “발달장애인을 다르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선입견이 한국사회의 큰 문제”라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2004년에 발달장애인지원법을 제정해 한국보다 장애인 복지에서 앞서 있다고 평가되는 일본 사례에 비춰 한국의 개선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임 교수는 일본에서 지난 10여 년간 그랬듯 “법에서 보장한 복지가 정착하기까지 지역사회 주민에게 홍보하고 교육 세미나와 캠페인, 공청회를 여는 등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독일, 영국, 남아프리카 등지에 있는 캠프힐은 발달장애인 거주공동체다. 장애인이 스스로 농장을 운영하며 일과 시간 이후에는 문화와 여가 생활을 즐기는 캠프힐은 장애인 복지 분야에서 모범 사례로 꼽힌다. 장애인이 생산 활동에 직접 참여하면서 자기계발을 할 시간도 갖기 때문이다. 이성봉 부장은 “현실적으로 국내 노동시장에 여유가 생길 때 발달장애인 복지도 같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여가를 즐기는 사회”의 청사진을 그렸다.

▲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사진: 김여경 기자 kimyk37@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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