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진 교수(지리학과)

얼마 전 서울대 교수들의 이직이 급증하고 있다는 언론보도를 접했다. 사립대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연봉, 과도한 행정업무, 그리고 각종 규제와 연구지원의 제한 등의 이유로 과거 ‘가문의 명예’로 여겨졌던 서울대 교수직을 버리고 떠난다는 내용이었다. 2011년부터 모두 65명이라고 하니, 전체 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다른 직장의 이직률에 비하면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수치는 서울대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유지해왔던 상징적 지위를 잃고 있다는 직접적인 증거로 해석되기에는 충분한 것 같다.

나는 이 기사를 일본에서 열린 ‘아시아풍수워크숍’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기내에서 접했다. 이 워크숍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환경 관련 학자들이 전통지식으로서 풍수(風水)를 재해석하고 그 활용 가능성을 같이 찾아보려는 연구모임이다. 풍수가 동아시아에서 중요한 환경이용원칙 혹은 지리사상으로 사용됐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중국, 일본이 모두 같은 한자어를 사용하며, 발음 역시 Pungsu, Fengshui, Husui로 비슷하다. 불행히도 얼마 전까지 풍수는 사익추구를 위한 기복신앙 혹은 혹세무민하는 주술 정도로 간주됐고, 학문영역에서 다뤄지지는 못했다. 전통사회에서 풍수가 미친 폐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진, 태풍, 몬순 등의 자연재해의 위험을 관리하고 자연이 주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 오랜 기간 발전시켜온 ‘아시아적 공통가치’로 풍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최근 국제적으로 지역의 전통지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중국에서는 풍수를 중국 고유의 문화자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일본 역시 풍수적인 시각이 다분한 일본식 환경관리원칙인 ‘사토야마’(里山)를 국제화하는 데 국가가 나서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이 두 가지가 필자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이유는 25년 전 있었던 한 은사님의 서울대 교수직 사직 때문이었다. 그분의 전공분야는 풍수였다. 풍수에 관한 저서를 여러 권 출판하셨고, 그중 일부는 중국어와 일본어로도 번역되기도 하는 등 한국풍수를 현대적으로 정립한 분으로 알려졌다. 80년대와 90년대 초 전통학문으로 풍수를 강의하시면서 학생들과 일반인들로부터 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학문적 인기의 절정에서 갑자기 서울대 교수직을 사직하셨고, 지금까지도 단독연구자로 오직 집필에만 전념하고 계신다.

90년대 초 서울대 교수직을 자발적으로 그만둔다는 것은 정말 드문 일이라서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사직 이유를 당신 스스로는 ‘씨름선수에게 권투시합을 하라고 하는 대학과 학계의 분위기가 싫어서’라는 말로 정리를 하셨다. 그리고 어느 인터뷰 기사에서 ‘한국의 모든 면 소재지를 다 돌아봤는데, 만약 대학에 근무했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의 말씀에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가야 할 대학이 오히려 학문을 방해하고 있다고 읽히는 이유가 무엇일까? 25년 전 대학의 분위기를 따라 자신이 잘하는 씨름을 포기하고 ‘권투시합’을 했더라면 지금까지의 업적과 한국의 풍수연구는 과연 어떻게 됐을까? 당시 그분에게 서울대 교수 자리를 포기하게 했던 그 배타성과 억지에서 지금은 어느 정도 벗어났을까?

서울대를 그만두시는 분들은 모두 제각기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 이유를 일반화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앞의 질문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답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25년 전 은사님이 직접 겪고 고민했던 서울대의 문제들이 지금 65배의 크기로 다가온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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