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색 투표용지에 무지갯빛 도장을 찍는 그날까지
흰색 투표용지에 무지갯빛 도장을 찍는 그날까지
  • 대학신문
  • 승인 2016.03.13 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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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성소수자 유권자운동

20대 총선이 한 달 남짓 남은 지금, 곳곳에서 들려오는 예비후보자들의 선거유세 소리가 선거철이 어느덧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들은 사회 다양한 계층의 요구를 반영해 노인, 여성, 청년 등 정책 공약을 쏟아내고 있지만 주목받지 못하는 목소리가 있다. 바로 성소수자의 현실 개선을 외치는 이들의 목소리다.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의 현주소=우리 사회에서는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생소하다.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란 성소수자들이 제도적·정책적으로 성소수자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활동이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은 법제화 과정에서 성소수자가 무시되고 배제되는 차별적 상황을 대처해나가는 방향 중 하나”라고 말했다.

선거 때마다 성소수자 관련 단체들은 성적 지향에 따른 차별 금지가 포함된 차별금지법 제정과 군형법 내 성소수자 차별 조항 폐지 등을 정치권에 지속적으로 요구해왔다. 또 이들은 동성 커플을 인정하는 법률 제정 등을 꾸준히 요구하며 성소수자들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왔다. 성소수자들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 주거, 노동 등의 사회정책 개선도 이들이 지속적으로 요구해온 부분이다.

◇편견의 장벽에 부딪힌 성소수자 유권자운동=하지만 지금까지 진행된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은 여러 한계에 부딪혀 번번이 효과를 내지 못했다. 여전히 성소수자 문제의 공론화를 꺼리는 폐쇄적인 사회 인식 때문이다.

성소수자나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이 정책 입안 과정에서 직접 목소리를 내려고 시도할 때마다 배제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운영회원 나라 씨는 “2015년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서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의 참고인 출석이 갑자기 취소됐다”며 “성소수자 인권은 건드리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다”고 밝혔다.

일부 유권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국회의원들이 성소수자 관련 정책 입안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2012년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은 새누리당과 당시 민주통합당에 성소수자 정책 토론회 참석을 제안했다. 새누리당은 불참 이유에 대한 설명도 없이 참석을 거절했고 민주통합당은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된 이야기’ ‘당내에서도 꺼려하는 분위기’라는 이유로 참석하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은 성소수자 이슈를 활발히 논의하고 정책·제도에 의견을 반영하는 해외의 모습과 대조된다. 지난해 동성결혼을 허용해 화제가 됐던 미국의 경우 연방대법원에서 지난 7일(월) 동성 부부의 친권을 인정하지 않은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동성 부부의 입양·양육권을 존중하라는 판결을 내놓았다. 이는 미국 레즈비언 권리센터가 앨라배마주의 판결에 이의를 제기한 결과다. 또 아일랜드는 지난해 동성결혼을 허용한 국가 중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동성결혼을 합법화해 주목 받기도 했다.

◇무지갯빛 투표를 위한 움직임은 계속된다=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성소수자 인권 활동가들은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 계속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모은다. 성소수자의 사회적 현실이 더는 묵과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2014년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와 성적지향·성별정체성 법정책연구회가 진행한 ‘한국 LGBTI(성소수자) 커뮤니티 사회적 욕구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2%가 차별이나 폭력을 직접 당했다고 밝혔다. 자살을 시도했던 응답자는 전체의 28%에 달했다. 나라 씨는 “성소수자 차별과 혐오는 실제로 끔찍한 폭력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인권은 유예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차별받는 성소수자들의 의견을 누구도 대변할 수 없는 사회 현실에서 법적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결국 성소수자들과 그 지지자들이다.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똥’ 정욜 대표는 “사회 분위기상 국회의원 스스로 (성소수자) 인권이라는 단어를 담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으며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런 가운데 다가오는 총선을 대비한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 기지개를 켰다. 지난 2월 성소수자 인권 관련 단체들은 ‘Rainbow Vote’(레인보우 보트)라는 성소수자 유권자운동 캠페인을 시작했다. 나라 씨는 “스스로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특히 정치적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레인보우 보트가 출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레인보우 보트는 캠페인의 시작과 함께 성소수자 혐오 정치인을 뽑는 온라인 투표를 진행해 지난 8일 이를 발표했다. 또 성소수자들과 지지자들의 정치적 힘을 보여주기 위해 유권자 등록 운동도 시행해 등록한 유권자들이 시작된 지 나흘 만에 2,000명을 넘었다.

이외에도 레인보우 보트는 성소수자 유권자의 힘을 보여주기 위한 여러 활동을 계획 중이다. 가장 먼저 온라인 투표를 통해 선정된 성소수자 혐오 국회의원들의 지역에 찾아가 서명 운동과 퍼레이드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지금까지의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이 선거 때만 국한돼 진행됐다는 지적을 반영해 성소수자 인권정책 제안, 입법 및 국정감사 등 의정 감시와 같은 선거 이후의 활동도 논의하고 있다. 정욜 씨는 “레인보우 보트는 성소수자 관련 인권 이슈가 어떻게 소화되는지를 끊임없이 파악하고 연결하는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서 제안된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성소수자 유권자운동의 가시적인 성과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해외에선 성소수자들의 집단적 움직임이 법적 현실의 개선을 가져온 모습을 명확히 볼 수 있다. 1969년 성소수자 모임 장소를 급습했던 경찰들에 대항하며 시작된 미국의 ‘스톤월 항쟁’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쳐 이를 기념하는 퀴어퍼레이드로 이어졌다. 전 세계의 퀴어 퍼레이드는 성소수자의 법적 현실 개선을 외치는 주요한 장이 됐고 각국 정당의 성소수자 관련 정책 기조를 변화시켰다. 강명진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실망하며, 포기하는 순간 세상은 그대로 답습될 뿐”이라고 지적하며 “한명 한명이 생각하고 움직이다보면 그것이 모여 세상도 움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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