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계속되는 ‘소녀상 지킴이’ 침낭 농성

옛 일본대사관 앞 위안부 소녀상에 둘린 목도리가 칼바람에 휘날린다. 그 옆에 펼쳐놓은 장판 위에선 예닐곱 명의 사람이 웅크린 채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소녀상 지킴이’ 한연지 씨(23)는 “주말에 비가 많이 와서 농성장이 침수됐었다”며 “위안부 배지에 녹이 슬어서 닦아내고 있다”고 말했다. 물티슈를 쥔 손이 곱아들지만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깨끗이 닦인 배지가 한아름 쌓인다. 취재를 하면서 함께 배지를 닦는 기자에게 한 씨가 “에이, 자고 가!”라고 농담을 건네자 박장대소가 이어졌다. 농성하면 흔히 떠올리는 험악한 분위기 대신 쾌활함이 가득한 이곳은 위안부 한일협상안 폐지 농성장이다.

철수 위기에 처했던 소녀상 지킴이의 장판이 다시 펼쳐진 것은 지난 1일(화)이었다. 지난해 12월 28일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상호 비난·비판하는 것을 자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체결된 한일협상안에 반대하는 대학생들의 노숙농성이 63일 만에 종료됐다. 개강을 맞아 학교로 돌아가 활동하는것이 현실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씨는 휴학계를 내고 다시금 24시간 농성에 돌입했고 소녀상 곁을 지키는 대학생 농성은 끝을 맺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역사는 왜곡되고 있고 소녀상은 언제 철거될지 모른다”며 “협상안 폐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누구든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지킴이들의 농성장은 천막도 바리케이트도 없이 모두에게 열려있다. 처음 만난 이들이지만 금세 친해져 농성을 함께 하고 있다.

천막이나 텐트는커녕 뻥 뚫린 길바닥에 장판 한 장 펼쳐 놓은 농성장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고정된 ‘한일협상안폐기대학생대책위’의 구성원들이 주로 참여했던 63일간의 노숙농성과 달리 이번 농성에서는 서로 일면식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농성장을 짬짬이 드나들며 지속되는 모양새다. 새내기 김예원 씨(20)는 “친구 따라 농성장에 왔었는데 우리의 문제에 행동하지 않았던 내 모습이 부끄럽더라”라며 “과거 아픔의 상징인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오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은 소녀상을 지키는 것이 ‘역사를 지키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수요일 수업 후 자리를 지킨다는 정도언 씨(23)는 “소녀상이 사람의 형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위안부 문제를 자신과 멀리 있는 과거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대신 자신과 동일시하고 아픔에 공감해 ‘내 문제’로 인식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농성장을 지키던 중 일본인 관광객들이 소녀상을 찾아왔다”며 “통역사에게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숙연해지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이 소녀상을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옛 일본대사관을 향해 굳게 버티고 선 채 과거를 상기시키는 소녀상처럼 지킴이들은 밤낮으로 농성장을 지키고 있다. 한연지 씨는 “한일협상안이 폐기될 때까지 노숙농성을 계속하려 한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개강과 함께 끝날 줄 알았던 농성은 끊임없이 장판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에 의해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파도처럼 이름도 소속도 남기지 않는 이들의 열정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jang0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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