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금서 다시 읽기 - 전환시대의 논리

금서란 당대에 발간 및 보급이 금지 또는 제약당한 책을 말한다. 금서가 당대의 주류정신과 기득권에 반하는 새로운 시도라면 그것은 당시의 잘못된 사회를 비추는 거울로 볼 수 있다. 과거에 억압받았지만 지금은 널리 읽히는 금서들을 되돌아 보고 이를 통해 금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 보고자 한다.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 한국 사회는 권위주의적 독재 정권으로 얼어붙었다. 1969년 3선 개헌에 이어 1971년 위수령 조치로 서울 시내 대학에 무장 군인이 진주했고, 1년 뒤 10월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이 종신 집권의 토대를 마련했다. 유신에 따른 비상계엄령 선포로 헌법에 보장된 개인의 권리와 자유가 심각하게 침해당했다. 정권에 문제를 제기한 사람들은 국가보안법, 긴급조치 등으로 잡혀 고문당해 심하면 죽음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자유로운 사고와 비판은 허용되지 않았으며, 단 하나의 논리와 생각만을 강요하는 억압의 시대였다.

1980년대 초 중앙정보부는 검찰이 운동권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어느 책의 영향을 받았느냐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추려 불온한 이념 서적 리스트를 작성했다. 리영희의 저작 3권은 모두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전환시대의 논리』와 『8억인과의 대화』가 각각 1, 2위를 차지했고, 『우상과 이성』이 5위에 올랐다. 그의 책들은 암울한 1970~80년대의 금서였던 것이다.

▲ 전환시대의 논리 / 리영희

1974년 출판된 『전환시대의 논리』는 리영희가 1970년 전후 월간지와 계간지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책이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언급하며 종교의 박해를 피하려고 이 저작에 ‘가설’이라는 말이 붙은 일화를 제시한다. 리영희는 여기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빗대 『전환시대의 논리』에 실린 글이 정치적 신학에 빠진 한국 사회에 코페르니쿠스적인 ‘가설’의 역할을 담당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의 예견대로, 『전환시대의 논리』는 베트남 전쟁과 중국 사회주의를 심도 있게 분석해 우회적으로 한국의 극단적 반공주의에 문제를 제기했으며, 당시 사회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순식간에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차지했다.

 

천천히 드러나는 베트남 전쟁과 사회주의의 실체

◇베트남 전쟁 다시 보기=한국은 갖은 논란 끝에 1965년 파병을 시작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게 됐다. 파병이 결정됐을 때 언론은 파병부대들의 용맹을 드러내며 대체로 그것이 당연하다는 논조의 기사를 보도했다. 국내에서는 베트남 전쟁에 관해 통찰할 여유가 전혀 없었고, 전쟁의 본질과 근본 원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족했다. 최영묵 교수(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는 “모든 언론에서 베트남 전쟁이 베트콩을 물리치기 위한 성스러운 전쟁이라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있었다”고 전했다. 모두가 정의를 위해 참전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리영희는 1964년부터 1967년까지 「조선일보」 외신부에서 근무하면서 베트남 전쟁에 대해 당시 언론의 지배적인 논법과는 다른 자신만의 시각을 형성했고, 이후 기고한 글들을 『전환시대의 논리』에 담았다. 그는 역사적 사실과 베트남 민중의 처지를 근거로 들어 베트남 전쟁을 성스럽고 정의로운 전쟁으로 인식했던 당대의 사회 통념을 반박했다. 베트남 전쟁은 오랜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베트남 민중이 독립하기 위한 민족해방전쟁일 뿐만 아니라, 그 시작도 미군의 통킹만 사건에 의해 도발됐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미국 국무부 공식 문서를 근거자료로 사용해 반박하기 어려운 논리로 베트남 전쟁의 허와 실을 드러냈다. 당시 국내 언론이나 관제 지식인들은 실증적 분석 대신 반공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데 그쳤다. 이와 대조적으로 리영희는 베트남 전쟁이 미국의 공작이며 미국이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이라는 것을 미 국무부 스스로 인정한 것을 증명했다. 백승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정부의 자료를 근거로 들었으면 누구나 그를 반박했겠지만, 미국이 직접 발표한 문서를 근거로 들으니 모두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중국 공산당에 대한 새로운 시각=리영희는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제시했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남북 간의 무력 충돌이 빈번했기 때문에 반공 이데올로기는 당시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에 대해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고, 무엇이 문제인지 합리적으로 통찰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한국 사회에서 중국은 ‘빨갱이들이 완전히 통제하는 사회주의 국가’ ‘모두가 똑같은 생각으로 똑같이 행동하는 전체주의 괴물’이라는 선전에 뒤덮여 그 실체가 인식될 수 없었다.

리영희는 책에서 당시 한국 사회가 사용한 냉전 용어들이 의미를 왜곡해 선입관을 만든다는 점을 지적한다. 미국과의 관계는 ‘혈맹’ ‘영원한 맹방’으로 표현하고, 사회주의 국가에 대해서는 북괴, 중공(中共), 괴뢰로 표현하는 세태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식과 관념을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선입관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요청하며, 중국의 민족해방과 상징 혁명으로서의 사회주의를 부각해 마오쩌둥이 가진 정치적 권위와 원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당시 아무도 알지 못했던, 중국의 공산당이 어떻게 형성됐고 전개됐는지 그 내부를 들춘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반공주의 입장에 서서 공산주의가 누구나 다 똑같은 생각을 하는 전체주의에 가깝다고 생각했는데, 리영희는 중국식 사회주의와 마오쩌둥을 둘러싼 거대 사회운동인 문화대혁명의 실체를 드러내 객관적인 사회주의 연구의 진전에 영향을 줬다.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주간은 “중공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당시 중국은 뭔가 무서운 일을 꾸미는 세력으로 사람들한테 공포감을 주곤 했다”며 “『전환시대의 논리』가 중국 정권의 내부 실상을 전해 전혀 다른 관점에서 사회주의를 볼 여지를 줬다”고 평가했다.

 

사고의 전환, 그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서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당시 젊은이들은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이나 주입된 지식과 180도 다른 측면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기존의 논리, 이념, 가치들이 잘못됐을 수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만들어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해준 것이다. 최영묵 교수는 “인터넷도 없던 시절 베트남 전쟁의 본질과 중국 사회주의를 미국, 중국 현지 정보를 갖고 부각해 굉장히 쇼킹했다”고 책의 영향력을 평했다.

당시 한국은 세계정세를 제대로 보도하는 외신이 없었고 국내 언론도 통제되고 있었기 때문에 아시아는커녕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어두운 상황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베트남과 중국을 통해 미국의 패권적 시각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세계를 보는 시야를 넓혔다. 천정환 교수(성균관대 국문과)는 “당시 남한이라는 나라는 사실상 단절된 섬이나 다름이 없었다”며 심한 검열에도 불구하고 세계정세에 대한 정보를 전달한 이 책의 의미를 높이 평가했다.

물론 『전환시대의 논리』는 사회주의와 문화대혁명을 지나치게 긍정적으로 봤다는 한계를 지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이 갖는 의미가 크다는 의견이 다수다. 백승욱 교수는 “사회주의에 대한 무조건적 혐오를 넘어서 이성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해야 한다는 시각은 리영희가 처음 시작했다”고 말했다. 또 중국의 사회 구조적 문제, 계급적 차이, 평등의 문제 등 여러 문제에 대한 고민이 섞여 있어서 너무 이상주의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숨겨진 사실을 밝히는 데 있어 일 점 타협도 없었던 리영희는 여러 번 정권의 탄압을 받았다. 반공주의 논리에 따르지 않고 베트남 전쟁의 모습을 조명한 그는 1968년 「조선일보」에서 끝내 해직되고 만다. 이후 중국에 관한 권위 있는 학자들의 논문을 편역한 『8억인과의 대화』에 이어 독재 정권을 직접 건드린 리영희의 두 번째 평론집인 『우상과 이성』은 금서가 됐다. 이로 인해 그는 반공법 위반 혐의로 1977년 11월 구속돼 1980년 1월까지 형을 살고 이후 해직과 복직을 반복한다.

백승욱 교수는 이와 같은 탄압을 역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리영희가 겪은 고난은 그의 목소리가 진실을 추구함을 증명해준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리영희는 상대의 가장 잘못된 점을 짚어 논리로 반박할 수 없게 만든다”며 “논리로 반박할 수 없으면 힘으로 누르는데 그것을 리영희가 대표적으로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1970~80년대에는 주로 조직사건, 정치운동 때문에 잡혀간 경우가 많았는데 리영희는 오로지 글 때문에 끊임없이 문제가 됐다. 정권은 리영희의 글을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고, 그 첫 단추에 『전환시대의 논리』가 있었던 것이다.

지난해 국방부의 압수 도서 사진과 문체부의 도서관 추천도서 좌편향 지적은 금서 논쟁을 재점화했다. 독재에서 벗어난 지 30여 년이 지났지만, 한국 사회는 여전히 비판적 지식 추구와 사유에 대한 자유를 제한당하고 있는 듯하다.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가 보여준 올곧은 지성의 정신이 오늘날 다시 요청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백 교수는 “리영희의 글쓰기 방식은 상대의 잘못된 점을 논리적으로 짚어 이 사회에 기여하는 방법을 잘 보여준다”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권력의 압제에서도 이성과 진실의 가치를 지키려한 『전환시대의 논리』는 지금 한국 사회보다도 더 앞선 금서가 아닐까.

 

『전환시대의 논리』가 금서로서 가지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 백승욱 교수(중앙대 사회학과)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은 사람들이 사회주의나 베트남 전쟁에 대해 모두 리영희와 같은 의견을 갖게 된 것은 아니지만, 자기 스스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웠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을 억압했던 시대에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의심하게 했기 때문에 금서가 될 수밖에 없었다.

 

▲ 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주간

금서는 체제에 균열을 낼 수 있어서 금지된 책이다. 그러므로 유신 정권이 어떤 책을 금서로 지정했다는 것은 오히려 그 책에 뭔가 엄청난 것이 감춰져 있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셈이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금서라는 것은 시대를 고민하는 젊은 대학생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했을 책이라는 것을 거꾸로 가르쳐준다.

 

▲ 최영묵 교수

(성공회대 신문방속학과)

당시 열띤 시위와 민주화 운동으로 대학생들이 수업을 듣지 않곤 했다. 그럼에도 같이 모여 ‘숨어서’ 공부했는데, 그 중 대표적인 책이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전환시대의 논리』가 대학생들의 숨은 교과서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전환시대의 논리』는 1970년대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책이다.

 

 

▲ 천정환 교수(성균관대 국문학과)

대부분 사람은 미국이 제공하는 환영과 이미지에 따라 반공주의로만 국제 관계를 바라봤지만, 리영희는 오랜 외신 기자 경험 등을 토대로 세계 전체 정세를 파악하려고 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박정희가 신이 아니라는 것과 베트남 전쟁의 은폐된 진실을 알려준, 1970년대 대학생들이 세상을 보는 눈을 만들어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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