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온전한 선거권 행사를 위해
장애인의 온전한 선거권 행사를 위해
  • 대학신문
  • 승인 2016.03.20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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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장애인 선거권의 실질적 보장

2014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4년 6.4 지방선거에 참여했다고 응답한 장애인의 비율이 73.6%에 달했다. 지방선거 전국 투표율이 54.4%인 것에 비춰 볼 때 장애인이 선거에 대해 갖는 관심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장애인에게 투표 과정은 걸림돌의 연속이다. 이 조사에서 투표하지 않은 장애인 중 29.5%는 투표소 접근이 어렵고 이동지원수단이 제공되지 않아 투표하지 못했다고 응답했다. 어렵게 투표소에 방문한 장애인 유권자 중 38.6%는 투표 과정에서 시설 미흡과 직원들의 장애인에 대한 이해 부족 등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장애인의 선거권은 여전히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제한적이다.

▲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선거 전부터 당일까지 험난한 한 표 행사의 길

◇“후보자의 공약을 알고 싶지만 접할 방법이 없어요”=선거 과정에서 겪는 장애인의 어려움은 선거 전부터 시작된다. 선거에 대한 정보가 제한돼 후보를 판단하기에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선거운동 기간에 후보자들이 선거구의 주민들에게 보내는 선거공보물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선거공보물 제작이 의무화됐지만 선거공보물 분량 제한은 여전하다. 이는 일반 문자보다 많은 양을 차지하는 점자의 제약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박승규 활동가는 “(분량제한으로 인해) 선거공보물의 점자로 된 내용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가 있다”고 지적했다. 선거 공보물 내용의 난이도 또한 비장애인에게 맞춰져 있다. 발달장애인은 물론이고 청각장애인의 경우에도 수화로 교육을 받아 문해력이 부족한 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현재의 선거 공보물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후보자의 공약을 알 수 있는 또 다른 수단인 정책 토론회 방송도 장애인들의 편의를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청각장애인의 경우 수화방송이나 자막이 필요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으로 청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이나 수화 통역이 의무화돼 있지 않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을 위한 방송 여부는 방송사의 선택에 달려 있고 이는 결국 장애인들이 후보자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경로가 제한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도장 하나 찍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선거 당일 투표소로 가는 것조차 장애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동이 쉽지 않은 장애인을 위해 지방자치단체에서 교통수단을 제공하지만 홍보 미비와 예산 부족으로 실제 장애인의 이용률은 낮은 수준이다. 서울특별시지체장애인협회 이운용 사무처장은 “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차량을 두세 대 정도 배치하고 있지만 사전에 충분히 홍보가 되지 않아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며 “차량도 수요에 비해 충분히 확보가 안 돼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기표용구와 기표대도 장애인이 사용하기엔 불편하다. 이번 총선에선 손목과 입에 끼우는 기표용구와 폭이 넓고 재질이 달라진 기표대가 설치되지만 여전히 장애인의 편의성을 확보하기엔 부족하다. 지난 16일(수) 선관위가 주최한 모의투표에 참관했던 박승규 활동가는 “기표대의 경우 오른손을 사용할 수 없는 지체장애인을 배려하지 않고 오른쪽에만 도장이 비치돼 있어 선거를 혼자서 할 수 없는 경우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의 투표과정을 보조하기 위해 배치된 선거 도우미들이 장애인을 제대로 돕지 못하고 있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박승규 활동가는 “(모의투표 당시) 선거 도우미들이 발달장애인들과 어떻게 소통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해 장애인분이 당황해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경우 안내보행법의 원칙이 있음에도 이를 전혀 몰라 손으로 이끈다거나 등을 밀어버리는 등 시각장애인들의 불편을 초래했다”며 도우미들의 교육 부족을 지적했다.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투표를 진행하는 거소투표의 경우 비밀선거의 원칙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김성연 사무국장은 “거소투표의 경우 공직선거법에 선관위에서 선거를 관리, 감독하라는 강제조항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거소투표가 진행된 시설에 참관인이 배석하지 않은 경우가 20%에 달했다.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현실은 결국 거소투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이어진다. 실제로 2012년 직원이 시설 거주 장애인에게 특정 후보에 투표하라고 권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장애인 선거권이 더 이상 침해받지 않으려면

선거 때마다 장애인 선거권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 유형별로 맞춤대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고, 현재 있는 조항에 강제성이 떨어져 실제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의 경우 모든 장애인의 선거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구체적이고 의무화된 형태로 법에 명시하고 있다. 독일은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높이기 위해 쉬운 용어로 작성한 별도의 자료 제공을 법으로 의무화했다. 또 영국은 장애인이 직접 투표할 수 없어 보조나 대리 투표자가 필요할 때를 대비해 대리투표 절차와 대리 투표자의 조건까지 법에 까다롭게 규정한다.

별도로 법을 제정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조한진 교수(대구대학교 사회복지학과)는 “우리나라의 공직선거법은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만을 위한 법이 아니지만, 미국의 경우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선거 접근법’(Voting Accessibility for the Elderly and Handicapped Act)을 따로 제정해 장애인 참정권 보장을 효과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법은 시각장애인을 위해 큰 글씨로 인쇄된 설명과 청각장애인을 위해 통신장치에서 전송된 정보를 제공하도록 명시돼 있다. 장애인이 참여하기 쉬운 전자투표도 미국을 비롯한 국가들에서 활발히 시행되고 있다. 김성연 사무국장은 전자투표 방식이 “기표보다 참여가 용이해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얘기 중이고 기기도 마련돼 있으나 정당 간 합의가 되지 않아 실제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 개정을 위해선 사회 내 문제의식 공유와 기술 개발 등이 먼저 이뤄져야 하므로 단시간 내에 해결되기 어렵다. 그러나 당장 총선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당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하기 위해서는 장애인 단체와 선관위가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번 총선을 대비한 한국농아인협회와 선관위의 합의가 좋은 사례다. 한국농아인협회 김대현 직원은 “현실적으로 선거 당일에 수화통역사를 모든 곳에 배치하기 어렵다는 것에 동의했다”며 “선관위에서 사전투표일에 몇몇 투표소에 수화통역사를 집중적으로 배치하면 협회에서는 어느 지역에 수화통역인이 있는지에 대한 안내를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장애인도 헌법 24조에 보장된 선거권을 갖는 우리나라 국민이다. 따라서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하게 선거정보 접근권을 갖고 선거일 투표장에 가 투표권을 행사하는 권리를 누리는 것은 당연히 보장돼야 할 부분이다. 장애인 선거권의 보장이 장애인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씨앗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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