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산업의 그림자 속 시들어가는 노동인권
방송산업의 그림자 속 시들어가는 노동인권
  • 대학신문
  • 승인 2016.03.20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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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미디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실태

방송콘텐츠산업은 정부의 최우선 국정운영전략인 ‘창조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지목되며 가장 유망한 산업으로 꼽히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4 콘텐츠산업통계』에 따르면 방송산업의 총매출액은 2011년부터 2013년까지 연평균 8.2%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다. 연일 쏟아지는 스타 PD와 작가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에 관한 기사는 방송업계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방송산업을 지탱하는 대다수의 방송업계 종사자들의 실상은 참담하다. 지난해 6월 종합편성채널 MBN의 프로그램을 제작하던 독립 PD(비정규직 및 프리랜서 PD를 통칭)가 해당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정규직 PD에게 폭행당하는 일이 발생했다. 한국독립PD협회와 전국언론노동조합(언론노조)은 이 사건 이후 ‘독립 PD 노동인권 긴급실태조사’를 실시해 독립 PD들이 당해왔던 비인간적인 대우를 폭로했다. 지난 16일(수)엔 ‘방송작가 유니온’과 언론노조가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언론노조 김한균 위원장은 “방송작가, 독립 PD들은 을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열악한 처지에 놓여있다”며 “화려한 조명 뒤에서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채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화려한 이면에 감춰진 방송 노동자의 현실

◇방송산업 노동자, 그들은 누구인가=방송산업의 노동 분업구조는 크게 콘텐츠 제작부문, 프로그램 편성부문, 송출부문으로 나뉜다. 이 중 콘텐츠 제작부문은 방송산업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문으로 주로 PD와 방송작가의 총괄 아래 이뤄진다.

그러나 방송산업을 이끌어가는 대다수 PD와 작가들의 노동 조건은 열악하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이후 외주제도의 도입 및 방송사의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인해 방송업계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규모로 양산됐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둔갑됐고 방송콘텐츠 제작의 외주화와 맞물려 점점 더 열악한 환경에 처했다. ‘방송작가 노동인권 실태조사’에 따르면 현재 방송작가 대부분이 ‘프리랜서화’돼 고용불안은 물론 다양한 인권침해 환경에 노출되는 실정이다. 또 소수의 방송국 정규직 PD를 제외한 대다수 PD들은 독립제작사에서, 또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외주화와 대규모 비정규직이라는 모순적인 노동구조는 수많은 문제를 발생시켰다.

◇기형적 노동 구조가 초래한 문제=지난해와 올해 각각 이뤄진 독립 PD와 방송작가의 실태조사는 주로 △고용 실태 △업무수행 실태 △급여 실태 △4대 보험 및 복지 실태 △인권침해 실태 부문에서의 설문을 통해 이뤄졌다.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 PD와 방송작가는 구두로 계약을 체결하는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반면 서면계약의 비율은 상당히 낮았다. 언론노조 조직쟁의실 이만재 활동가는 “서면계약의 경우에도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방송영상 프로그램 제작 스태프 표준계약서’에 규정돼 있는 주요 항목이 상당수 포함되지 않은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기존의 계약 관행에 문제가 있음을 짚었다. 이처럼 약식으로 체결된 계약은 결국 불합리한 고용 해지를 쉽게 만들어 문제를 증폭시킨다.

채용된 이후에도 문제는 이어진다. 근로기준법에선 주당 근로시간을 40시간 이하로 정하고 있지만 설문 응답자 중 74.9%에 해당하는 방송작가가 40시간을 초과해 근무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방송작가의 월평균 급여는 평균 약 170만원으로 평균 약 257만원을 받는 특수형태별 근로종사자 중에서도 매우 열악하다. 노동계의 시간당 임금 계산방법에 따르면 시간당 임금은 막내작가의 경우 평균 3,880원으로 최저임금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상당수가 외주제작업체에 속해있거나 비정규직으로 고용된 노동자들의 경우 부당한 근무환경에 대해 항의할 대상을 찾기조차 어렵다.

4대 보험으로 일컫는 국민연금, 건강보험, 고용보험, 산재보험의 가입률 역시 저조하다. 방송작가와 독립 PD 모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가입률이 매우 저조한 것으로 나타났으며 방송작가들의 경우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의 가입률 또한 저조했다. 특히 보험의 직장가입률이 낮은 것으로 보아 소속회사가 없는 프리랜서 노동자들의 보험 가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이 드러났다.

제일 심각하고도 어려운 문제는 인권 침해 실태다. 대다수 응답자들이 근무 중 인격 무시, 욕설, 폭행 등을 겪은 적이 있었으며 사적인 지시 또는 계약된 내용 이외의 업무지시를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특히 여성 독립 PD와 작가들의 경우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포함)을 경험했다고 응답한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성희롱 발언을 일삼으며 작가를 막 대하는 PD가 있었지만 불이익을 받을까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고 밝혀 폐쇄적인 방송계의 특성상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음을 시사했다.

 

방송산업 노동구조, 이대로는 위험하다

방송산업의 노동문제는 외주제작과 비정규직, 방송계의 직업적 특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방송사들은 지금도 콘텐츠제작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외주제작 부문 노동자와 자체제작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활용을 늘리고 있다. 이런 추세에 피해를 보는 것은 오롯이 노동자들이다. 지난해 불거진 독립PD 폭행사건은 단순히 정규직 PD와 독립 PD 간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방송사가 콘텐츠 제작인력을 무분별하게 외주화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독립 PD들에 대한 이른바 '갑질' 행태가 드러난 것이다.

방송작가는 현행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지 않아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한다. 송규학 회장은 “방송계는 역사가 짧다 보니 직업적 정체성이 확고하게 확립되지 않은 측면이 있다”며 “처음엔 노동이라기보단 창작자의 개념으로 시작해 불이익에 대한 생각도 권리에 대한 개념도 없었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 역시 “초기 방송작가는 신문에 소설을 연재하듯 콘텐츠를 제공하고 원고료를 받는 형태였다”며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도 작가들의 급여가 고료의 형식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현재 프로그램 횟수당 고료를 지급받는 작가들의 경우 프로그램이 결방, 불방, 종방될 경우 해당 고료를 받을 수 없게 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게 된다.

비정규직과 외주의 확산으로 노동자들의 결집성이 떨어지자 노동조합 활동도 난항을 겪었다. 한국독립PD협회는 기업 중심의 노동조합 조직화에서 배제되며 단체교섭능력을 확보하지 못했고, 현재 방송작가의 권익을 대변하는 노동조합 활동은 거의 없는 상황이다. 방송작가의 경우 노동조합법상의 근로자성을 인정받지 못해 방송사와의 단체교섭 체결에 실패하기도 했다.

 

노동구조 쇄신을 위한 움직임

한국독립PD협회, 언론노조 등의 단체에서는 방송산업 노동구조의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송규학 회장은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규직 제작 인력에 대한 노동기본권 확립을 촉구했다. 그는 “방송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법률을 통해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주장의 일환으로 표준근로계약서를 의무화해 노동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적절한 근로시간 및 임금을 도입하는 한편 노동자 인권을 보장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법에서 규정한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의 근로자 개념은 다양한 직군의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한다. 따라서 근로자 개념을 넓게 확장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아야 노동조합이 교섭권을 획득할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 노동자성의 인정은 노동조합 활동의 전제조건이 된다. 민주노총 권두섭 변호사는 “노동조합으로의 조직화를 통해 단체교섭 능력을 확보해 단체협약 체결을 이뤄야 한다”고도 발언했다.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은 사업주에 대한 불평등한 지위로부터 발생하는 만큼 당사자 간의 대등한 교섭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언론노조의 김동원 정책국장은 “문화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창작활동은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누리는 특권”이라며 “방송산업 노동자가 겪어온 부당한 대우와 파행적인 노동 관행은 단순한 위법사항이 아니라 생계를 볼모로 인간으로서 누릴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인권의 문제로도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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