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혜빈 문화부장

김혜순 시인이 그려낸 돼지

부조리한 여성 관념에 가하는 반격

멋대로 여성성 재단하는 예능

자발성으로 포장된 억압 되짚어볼 때

 

화려한 조명이 몸태를 또렷이 보여주는 계단식 무대 위. 네티즌의 투표로 정해진 순위가 발표되고 눈물을 흘리는 소녀들이 호명될 때마다 하나둘 번호가 붙은 의자에 진열된다. “국민 프로듀서님, 잘 부탁드립니다!” 나이와 상관없이 교복을 입히고 소녀라 부르니 소녀가 되고만 이들이 외친다.

요즘 TV방송이 여성의 이미지를 재단해내는 솜씨란 교묘하고도 폭력적이다. 11명만이 살아남는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에서 101명의 걸그룹 연습생은 하나같이 국민의 선택을 바라는 어여쁜 소녀다. 강인한 여군이 나오는 <진짜 사나이 여군특집>은 다를까. 체력이 약한 출연자에게 ‘여자가 아닌 군인이 되라’고 다그치고 애교가 많은 출연자에게 ‘여자인 척하지 마라’고 꾸짖는 장면들은 소녀다움을 주문하는 것보다 더 교묘하게 여성성을 규정하고 여체를 비하한다.

최근 시집으로 묶여 나온 김혜순의 시들은 고착화된 여성 관념에 반기를 든다. 시집을 펼치니 ‘여성주의 시인들의 공화국’이라 불리는 김혜순이 만들어낸 또 다른 여성상을 만날 수 있었다. 시인은 자신을 비롯한 여성을 돼지에 비유한다. 핑크빛 귀여운 돼지가 아니라 ‘팔다리가 축 늘어진 돼지’ ‘똥 위에 젖가슴을 대고 엎드리’는 바로 그 돼지다. 무리 속에서 개체성조차 잃은 존재인 돼지를 자처한 것은 극도의 자기비하, 자기학대에 가깝다.

시인은 돼지가 됨으로써 순결함, 섹스심벌 등의 이미지로 여성성을 가두던 오랜 잣대들에 반격을 가한다. 영화 ‘8마일’에는 피 튀기는 랩 배틀에서 에미넴이 자신을 비하해 상대편의 입을 막아버리는 통쾌한 장면이 있다. 성모의 순결함을 이야기하면서 달거리 피를 부정하다(레위기)고 말하는 서양 종교와도, 여성이 수행자의 고행을 방해하는 존재로 등장하는 동양 종교와도 돼지는 배틀을 벌인다. “나는 몸 안의 돼지를 달래야 하는 환자예요 그러고도 사람들 몸 안에 좌정한 돼지만 보여요”라고. 여성이 섹스심벌로 소비되는 대중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에 향하던 탐욕적이고 관음적인 시선에 대항해 시인은 아예 ‘양손에 돼지 가슴이 담긴 봉지를 든 여자’를 등장시켰다.

전족도 코르셋도 사라진 오늘날도 여체를 억압하는 문화는 여성 스스로 선택한 자연스러운 일로 포장될 때가 많다. 한 언론의 폭로에 따르면 101명의 소녀들은 연출진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출연료를 받을 수도 없는데, 이는 계약서에 스스로 사인한 결과란다. 사나이가 되려는 여군들은 ‘황금으로도 못 얻을 군 입대 기회’라는 자막과 함께 호들갑을 떨며 입대를 결정했다.

동일하게 ‘자발적인’ 자기학대지만 김혜순의 돼지는 끝내 부정(不淨)을 유지하면서도 부활에 성공한다. 구덩이 속으로 던져졌다가 ‘터진 창자가 무덤을 뚫고 봉분 위로 솟구’치면서 부활한 것이다. 돼지가 창자만으로 피어나게 되니 시의 제목은 ‘피어라 돼지’다. 여성은 예쁘게 핀 꽃이 아니라 터진 내장을 피워낸 돼지다. 역겹기 그지없는 묘사지만 어딘가 속이 후련하지 않은가. 그것은 어쩌면 김혜순 식의 배틀이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방송 출연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대중의 시선을 대리한 카메라의 제약을 받고 누군가의 욕망에 따라 편집된다. 가학적으로 진열된 소녀들과 여성성을 모욕당한 여군들. 최근 본분을 지키랍시고 여성 아이돌을 대놓고 희롱하던 프로그램 <본분 올림픽>이 심의에 걸리고 말았지만 얼마나 교묘한가의 차이만 있을 뿐 수많은 TV예능이 여성성을 멋대로 학대한다. 이는 카메라 너머 관음하는 욕망과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누군가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시인은 “국가 혹은 우리 인간이 타인의 몸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시선으로 재단해 왔는가를 되묻는 시”라고 자신의 시를 소개했다. 김혜순의 날 선 비판의 노래를 읽으며 묻고 싶다. 여성은 창자가 터진 돼지도 부활한 돼지도 될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