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공지능의 미래와 서울대의 현주소

드라마 속 추억 정도로 여겨졌던 바둑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가 다시 높아졌다. 긴 시간동안 진행되는 대국을 직접 실시간으로 챙겨보고, 기보 하나하나를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해보는 사람도 많았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 그리고 인간을 이긴 인공지능. SF 영화에서나 이뤄질 법한 인간과 기계의 대결을 목도한 사람들은 그 대결에 열광했고, 자연스럽게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하지만 인공지능 연구가 알파고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다. IBM의 딥블루와 왓슨이 각각 세계 체스 챔피언과 미국 ABC 방송사의 퀴즈쇼 ‘제퍼디’ 챔피언을 꺾은 것을 상기하면, 인간이 인공지능에 패배한 것 역시 처음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개발과 확산은 이미 닥쳐온 현실이자 앞으로 우리가 계속 마주할 미래인 셈이다.

인공지능 vs 인간? 인공지능 with 인간!

알파고의 승리가 체스나 퀴즈쇼와 달리 인간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바둑이 가진 특성 때문이다. 바둑은 한 수 한 수에 둘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무한히 많아서 단순한 계산능력만 가지고는 공략이 불가능하다. 또 바둑은 판세를 읽는 종합적인 사고력을 길러야만 이길 수 있는 게임이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것을 두고 인공지능이 인간 고유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오는 것도 이런 바둑의 특성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실제로 인간의 영역을 넘어선 것일까.

인간과 단순히 비교하기에 인공지능이 지식을 습득하는 방식은 인간의 그것과 매우 다르다. 먼저 ‘딥 러닝’(deep learning)을 그 근거로 들 수 있다. 딥 러닝은 쉽게 말해 ‘심층학습’으로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많은 양의 데이터를 이용해 특정 지식을 습득하는 기술을 가리킨다. 김경민 연구원(바이오지능 연구실)은 딥 러닝 기술의 핵심이 데이터 처리를 위한 층을 쌓는 것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딥 러닝을 “각각의 층들을 거치면서 데이터의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지식부터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지식까지 학습해 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알파고와 바둑을 예로 들자면 많은 기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수 하나하나를 익히는 것에서 시작해 전체적 판세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해하는 것까지가 딥 러닝의 알고리즘이다. 이 지점에서 인간과 인공지능의 학습 체계 간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인공지능이 막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발전한다면, 인간의 지능은 소규모의 정보를 통한 추론으로 발전한다.

다른 근거로는 ‘강화학습’(reinforcement lea-rning)을 들 수 있다. 인공지능이 학습하는 데이터의 양과 범위를 정하는 기술이 딥 러닝이라면, 학습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기술은 강화학습이다. 이 기술의 핵심은 ‘리워드 세팅’(Reward Setting)이다. 리워드 세팅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어떤 성과를 올렸을 때 어떤 보상을 해줄 것인가에 관한 문제를 말한다. 김경민 연구원은 “인공지능이 특정한 임무를 필요한 방향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에 리워드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과정 하나하나를 따지기보다는 필요한 결과값에 대해서만 리워드를 설정해 그 결과값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파고가 대국을 거듭할수록 노련해지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여러 번의 시뮬레이션을 거치면서 게임 승리에 설정된 리워드에 맞춰 지속적인 발전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김선 교수(컴퓨터공학부)는 “인지, 추론 등 전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인간과 다른 지식 습득 체계를 갖추고 있다”며 “인간과 인공지능이 비슷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데이터 처리의 효율성과 업무 처리의 정확성은 대단히 높지만 제한적 추론 이상의 지식 창출은 불가능하다. 반면 인간은 적은 정보만으로도 확장된 추론이 가능하고 감성적, 창조적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업무의 정확도나 정보 처리의 효율성은 인공지능에 비해 떨어진다.

▲ 16일(수) 코엑스에서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 주고나의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이 열렸다.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인공지능 기술의 현황과 앞으로의 과제, 그리고 한국의 인공지능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

IBM 롭 하이 기술개발 책임자는 지난 16일(수) ‘인공지능 국제 심포지엄’에서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며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보완하는 쪽으로 앞으로의 미래를 그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IBM의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을 예시로 들었다. 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정확히 확정하기 힘든 진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처했을 때, 의사가 기존의 진단 사례를 모두 뒤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때 왓슨이 의사에게 기존의 진단 데이터를 모두 분석해줘 판단에 도움을 주는 조수의 역할을 수행한다. 인간이 가진 정보처리량의 한계를 인공지능 컴퓨터를 이용해 넘어선 것이다.

주식 투자의 경우에도 계산에서의 실수가 잦고 모든 주식 관련 데이터를 확인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보완해 줄 수 있다. 심포지엄에 참석한 마이크로소프트 리서치 아시아 웨이잉 마 부소장 역시 “인공지능이 앞으로의 디지털 삶을 더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평가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의 지능 체계가 가진 한계를 보완해주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의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해석이다.

 

뽀로로봇, 서울대 인공지능의 현재와 미래

안경을 쓴 귀여운 아기 펭귄 뽀로로와 친구들. 이들이 커다란 운동장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고 있는 에피소드가 담긴 애니메이션 한 편이 있다. 이 애니메이션을 보고 두 명이 대화를 나눈다. 한 명은 뽀로로의 열혈 시청자인 꼬마아이다. 그런데 다른 한 명은 인간이 아닌 로봇이다. 아이가 “What did they play?”라고 물으면 로봇이 “Hide and Seek.”라고 대답한다. 반대로 로봇이 질문을 던지기도 하는데, 이런 식으로 둘의 대화가 지속적으로 이뤄진다.

▲ 18일(금) 서울대 바이오지능 연구실에서 뽀로로봇을 만났다. 연구실은 가정집 같은 분위기였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로봇과 함께 노는 모습을 관찰하고 기록해 연구에 활용한다고 한다.

이는 컴퓨터공학부의 바이오지능 연구실(장병탁 교수 연구팀)가 개발한 인공지능 로봇인 ‘뽀로로봇’에 관한 이야기다. 이 로봇은 아이와 함께 뽀로로 애니메이션을 시청하고 관련 대화를 영어로 진행해 아이가 영어회화 실력을 키우는 것을 돕는다. 연구팀은 장기적으로는 아동의 보육을 보조하는 가정용 로봇, 넓게는 고령층을 위한 로봇까지 꿈꾸고 있다.

1997년에 문을 연 이래 서울대 바이오지능 연구실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뽀로로봇은 한국 인공지능 기술의 미래를 보여준다. 미래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는 자연어 처리 능력과 감각 정보 처리 능력이 필수다.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각종 업무에 보다 밀접하게 관여하기 위해서는 이를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한데, 자연어 처리 능력은 인공지능 프로그램이 인간의 말을 컴퓨터 언어로의 변환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그 의미를 해석하는 능력이다. 감각 처리 능력은 말 그대로 감각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으로 로봇이 영화를 보고 시청각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이 그 일례다. 뽀로로봇은 이런 연구를 종합해서 탄생한 첫 성과물이다.

뽀로로봇은 Q&A시스템을 통해 애니메이션을 보고 받아들인 시청각 정보를 데이터화한다. 학습한 데이터는 기존 데이터와의 비교를 통해서 뽀로로 애니메이션의 전형적 패턴과 스토리라인에 맞춰 새롭게 이해된다. 그리고 이 패턴화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이의 질문을 파악하고 가장 알맞은 대답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뽀로로와 그의 친구들이 ‘숨바꼭질을 하며 논다’는 것이 하나의 패턴이라고 할 때, 숨바꼭질 내용이 담긴 애니메이션을 본 뽀로로봇은 기계학습 알고리즘으로 기존의 ‘숨바꼭질’에 연관한 데이터를 훑어 애니메이션을 패턴화하고 이를 바탕으로 아이의 질문에 대비한다.

바이오지능 연구실에서는 이러한 로봇의 개발 외에도 여러 방면에서의 연구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심층강화학습’(deep reinforcement learning)은 새로운 활용연구 중 하나로, 강화학습 기술을 실생활에 보다 실용적으로 접목시키기 위한 연구다. 인공지능 스스로 기존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리워드를 세팅하고 이를 통해 ‘보상 평가’(reward estimation)를 수행하는 것이 이 기술의 핵심이다.

곽동현 연구원(바이오지능 연구실)은 “알파고를 비롯한 기존의 게임 프로그램들이 수행한 강화학습훈련은 목표가 매우 간단했다”며 실생활의 모호한 상황 속에서도 활용이 가능한 방향으로 강화학습 알고리즘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림을 예로 들며 “사과를 그리는 데 동그라미를 그리면 몇 점, 빨간색을 칠하면 몇 점 등의 방식으로 인간이 일일이 기준을 마련해주는 것은 효율성 측면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목표를 인공지능 스스로 설정하는 것이라는 의미다.

 

제4의 물결, 그 속의 한국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은 곧 도래할 인공지능 시대의 서막일 것이다. 성큼 다가온 이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에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서울대에서 진행되는 각종 연구들도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한국 정부 차원의 인공지능 프로젝트는 세계적 수준에 비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인공지능 연구의 근간이 될 관련 기초과학 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황에서 앞으로의 발전 가능성을 낙관하기 어렵다. 산업계와 정부의 목적에 맞추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하기 힘든 과학계의 현실 속에서 혁신적인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될 것임을 꿈꾸는 것은 지나친 기대일지도 모른다. 이성환 교수(고려대학교 뇌공학과) 역시 심포지엄에서 “산업계와 정부의 요구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라는 데 쏠려 있다”며 한국에서 진행되는 인공지능 연구의 방향성을 지적했다.

딥 러닝 기술의 기반이 되는 ‘인공 신경망 네트워크’(Artificial Neural Network)는 뇌신경과학이라는 기초 학문 분야에서 그 아이디어가 시작됐다. 인공지능을 구성하는 세부적인 알고리즘을 짜는 데에는 수리통계학적 접근도 필수적이다. 이처럼 기술의 혁신을 위한 기초과학의 필요성이 지대한 상황에서 응용과학에만 집중하는 한국의 모습은 근시안적이라 여겨진다. 인공지능의 확산이 인류 제4의 물결이 될 것이라는 예측 속에서, 다가오는 큰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한 올바른 판단이 필요하다.

 

사진(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사진(아래): 이문영 기자 dkxmans@snu.kr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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