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개성 넘치는 동네책방 - ② 스토리지북앤필름

인쇄매체의 종말이 점쳐지기도 하는 요즘, 동네마다 자리 잡은 작은 책방의 등장이 예사롭지 않다. 동네책방, 독립서점으로 불리는 이들은 대형서점에서 찾아볼 수 없는 유별난 주제의 책이나 물량이 적어 쉽게 구할 수 없는 독립출판물을 구비해 손님을 끈다. 이번 연재 기획은 저마다의 개성과 철학을 간직한 서점들을 찾아가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① 일단멈춤 ② 스토리지북앤필름 ③ 햇빛서점 ④ 상상하는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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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실향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던 해방촌의 한 어귀에 갈 곳 잃은 책들이 모여들었다. 서로의 경사를 자랑하며 여기저기 뻗친 골목들 중에서도 가장 가파른 길로 들어서면 대형서점으로부터 외면 받은 독립출판물의 피난처가 있다. 책방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쇳소리 나는 문을 열면 특별한 창작물로 가득 찬 작은 공간이 펼쳐진다.

아날로그 사진에서 독립출판물까지

사실 스토리지북앤필름의 강영규 대표가 처음부터 독립서점을 열기로 결심한 것은 아니었다. 취미로 사진을 찍던 강 대표는 직접 필름카메라를 팔아보자고 결심했고 2008년 필름카메라 가게를 열었다.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를 좋아하는 그는 “필름카메라는 따로 보정이 필요 없을 만큼 자연스러운 색감을 가지고 있다”며 아날로그 사진에 반한 이유를 설명했다.

사진을 찍으러 다니다보니 한 장 한 장 쌓인 사진들을 감당할 수 없을 무렵 그는 사진집을 내기로, 또 그것을 판매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드디스크에만 존재하는 디지털 매체와 달리 손에 잡히는 물리적인 형태로 남아 있는 책이라는 매체는 아날로그 사진과 마찬가지로 강 대표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독립출판에 대해 알아보던 그는 독립출판계의 현실이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됐다. 당시 독립출판계에서는 사진집 장르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고 독립출판물 유통망도 협소했다. 강 대표는 “독립서점이 서울에 세 곳, 부산에 두 곳이 있었고 그마저도 홍대 등 일부 지역에 집중돼 있는 상황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또 독립출판물 유통망 안에서도 독립서점들의 까다로운 기준 때문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 뒤로 밀려나는 책들이 많았다.

이에 강 대표는 2014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해방촌으로 보금자리를 옮겨 아예 독립출판물만을 취급하는 책방을 열었다. 독립서점의 선두주자인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이렇게 시작됐다. 강 대표는 “거창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한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 해보고 싶은 것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니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며 사진에서 출발해 독립출판물을 판매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 각자의 시선이 담긴 사진집들과 애정어린 기록을 담은 책들이 스토리지북앤필름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일상의 기록을 답은 사진집

스토리지북앤필름의 서가 곳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이 담긴 사진집들을 볼 수 있다. 가판대에 놓여있는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는 아파트가 재건축되기까지의 작은 역사를 담은 기록물이다. 13페이지 남짓 되는 얇은 사진집 『602동 1904호』에는 작가의 부모님이 애정어린 손길로 가꾼 화분 사진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2012년 강 대표가 직접 발간한 주제별 사진집 『TOGOFOTO』는 필름카메라 특유의 따뜻한 눈으로 바라본 대상을 싣고 있다. 격월로 신청자에게 사진을 받아서 만드는 사진잡지 「워크진」도 찾아볼 수 있다. 매호 하나의 도시를 소재로 삼아 일상을 기록한 「워크진」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독자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책방의 사진집과 잡지가 입소문을 타자 잡지에 자신의 사진을 실으려는 사람들이 쏟아졌다. 그는 “우리나라에 사진집 독립출판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대만, 프랑스 등 외국에서까지 사진을 보내왔다.

책방에서 발간되는 사진집 속 사진들은 ‘자연스러움’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유명한 랜드마크나 화려한 볼거리가 아닌 일상의 풍경들은 개인의 특별한 구도를 통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자신만의 기록이 된다. “랜드마크를 찍은 사진은 다시 찾아서 보지 않게 되지만 그저 평범한 길거리를 찍은 사진은 다시 꺼내보게 된다”는 말에서 사진에 대한 그만의 철학이 느껴졌다.

 

독립출판을 향해 활짝 열린 문

유통망이 협소한 독립출판계의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했기에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사진집뿐 아니라 에세이, 이야기책 등 다양한 장르의 독립출판물을 망라한다. 가판대 위에는 술게임에서 지는 기술을 재치 있게 소개하는 『술게임의 기술』이 놓여있고 설치대에는 쉬다 가라는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그림책 『휴게소』가 비치돼 있다. 세상을 떠난 오빠의 초등학교 시절 그림일기를 엮어 만든 『오빠일기』는 곁에 없는 이에 대한 그리움의 기록이다. 꼭 사진집이 아니더라도 글, 그림 등 다양한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개인의 기록들이 독립출판물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에 모여들었다.

갈 곳 없는 독립출판물들을 가리지 않고 모두 받아주는 이 책방에는 책 선정기준이 따로 없다. 완성도가 높든 낮든 제작자가 공들여 만든 책은 모두 특별하기 때문에 좋고 나쁨의 위계가 없다는 것이 책방 주인의 생각이다. 가판대에 따로 놓인 책들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고 책장에 꽂혀있는 책은 손이 덜 가는 일이 없도록 그는 일주일 혹은 이주일 간격으로 책의 자리를 바꾼다. 강 대표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만큼은 독립출판물만의 가치와 매력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 각자에 대한 가치판단을 하지 않는 스토리지북앤필름은 독자와 독립출판물 제작자 사이의 다리 역할을 자처하기도 한다. 곧 3회째 개최를 앞두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마켓’에서는 다양한 독립출판물 제작자들이 직접 가판을 열고 책을 판다. 구매자와 제작자가 직접 만나 독립출판물을 사고파는 북페어는 독립출판물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교류의 장을 제공하면서 SNS를 애용하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 최대의 독립출판 축제 ‘언리미티드 에디션’에 참가한 경험을 토대로 북페어를 기획해온 강 대표는 “제작자와 구매자가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소통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책방을 방문한 대학생 김민조 씨는 “확실히 기성출판물과는 달리 독립출판물 제작자만의 독특한 생각이 담겨있는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처럼 스토리지북앤필름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평범한 개인의 기록도 특별하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눈 깜박이면 사라져버릴 순간은 사진으로 영원히 남겨지고 사소하더라도 놓치고 싶지 않은 기억은 글로 되새겨진다. 기성출판이 보지 못하는 기록을 사진으로, 글로 전하는 독립출판물은 책방을 통해 지속될 것이다.

▲ 삽화: 이철행 기자 will502@snu.kr

 

 

 

 

사진: 장유진 기자 jinyoojang03@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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