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부 유승의 기자

‘Humans and SNU’를 한창 구상하고 있던 어느 날 밤이었다. 그날은 알파고가 이세돌 九단을 3번 연속으로 꺾었던 날이기도 했다. 한 친구와 함께 양꼬치 집에서 술을 마시는데, 그 친구는 자신이 알파고 때문에 회의주의자가 됐다며 내게 말했다. “야, 내가 공부를 아무리 열심히 해봤자 나중에는 알파고가 나 대신 다 할 거 아냐. 그냥 포기하고 치킨집이나 할까?” 고개를 숙인 친구에게 나는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야, 치킨도 너보단 알파고가 더 잘 튀겨. 더 맛있게.”

수십 년간 바둑만을 둬왔던 프로 기사들조차 알파고의 행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알파고의 바둑에서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간 오롯이 인간의 영역이었던 바둑이 그런 알파고 앞에 연이어 무릎을 꿇자, 서울대입구역의 한 양꼬치 집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회의론이 쏟아졌다. 알파고가 인류의 친구이자 길잡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보다 사람들은 알파고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터미네이터’가 될 것이라 믿는 것 같았다.

그런 알파고 때문에 나도 덩달아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 취재를 위해 한 카페를 찾아갔다. 언제 가도 반갑게 맞아주시는 주인 아저씨가 푸근하고 정겨워 발걸음이 자주 끌리는 그런 곳이었다. 왜 항상 레몬에이드만 시키냐는 핀잔 아닌 핀잔에 처음 시켜본 홍차를 마시며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됐고, 나는 별 생각 없이 첫 질문을 던졌다. “카페를 찾아오는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그러자 우문에 현답이 날아왔다.

“우리가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감정적으로 공감을 하면서 대화가 이뤄지잖아요. 그런데 요즘 들어 학생들을 보면 그런 교감의 영역을 이성적인 영역, 판단의 영역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아요. 말하는 사람은 ‘그래, 네 생각이 그랬구나’ ‘네가 그럴 만도 하지’ 하는 교감을 바라는데, 정작 듣는 사람은 상대방이 말한 것에 대한 답을 찾아서 제시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마음 한 구석이 뜨끔했다. 문득 돌아보니 어느샌가 나에게서도 ‘사람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앞에 앉아있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 항상 문제의 해답만을 찾으려 애썼다. 인터뷰를 마치고 카페를 나오니 맞은 편에 그 양꼬치 집이 보였다. 우리가 그토록 비인간적이라 느끼며 두려워했던 알파고는 친구의 자조섞인 농담에 ‘치킨도 너보다는 알파고가 더 잘 튀길 것’이라 대답해주던 내 안에 어느새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사람 냄새’가 나는 기사를 맡았다. 딸이 태어나줘서 행복하다고 고백하던 한 모녀의 모습을, 잔디밭에 누워 다정한 한때를 보내는 연인의 모습을, 그리고 대화에는 서로의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카페 아저씨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나는 내 기억에서 희미해져 가던 ‘사람 냄새’를 다시 느꼈다.

여기 인간이 수천년간 쌓아온 바둑의 정수를 불과 반 년만에 따라잡은 인공지능이 있다. 그리고 그런 인공지능과 달라질 바가 없어지고 있는,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 우리들도 있다. 대나무숲에서 한 학생은 외쳤다. 로봇이 우사인 볼트보다 100m를 더 빨리 뛸 수는 있겠지만, 옆 레인에 넘어진 친구를 일으켜주기 위해 달리기를 멈추는 일은 없을 거라고.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 두려워하고 경계해야 할 것은 그러한 능력을 가진 로봇이 아닌, 옆 레인에서 친구가 넘어진 것을 보고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결승선을 통과해버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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