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주년 특집] 대학신문 사진부가 만난 서울대, 그리고 사람들

2010년 미국의 사진작가인 브랜던 스탠던은 뉴욕의 사람들을 촬영하고 그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함께 담아 SNS에 ‘Humans of NewYork’이라는 제목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이 사진들은 전 세계에 따스한 감동을 전해 큰 인기를 끌었고 이에 영감을 받아 많은 도시에서 ‘Humans of cities’ 시리즈가 제작됐다. 『대학신문』의 ‘Humans & SNU’는 서울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대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이 기억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녹두 ‘황해도 빈대떡’

개업하고 한 달쯤 됐나, 예비군 갔다 온 학생들이 돈이 없었는지 학생증을 내더라고. 그래서 나는 학생증을 돌려주고 ‘우리 신용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 내가 학생들을 믿으니까 돈이 생기면 갖다줘라’ 했어. 며칠 있으니 그 학생들이 다시 와서 돈을 내며 그때 이모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고 하더라고. 그 학생들이 단골이 되고, 사회 나가서도 지금도 와. 지금도 하는 말이 그때 해준 말, 믿고 사는 사회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그게 가장 인상에 남아.

 

 

관악 02 기사님

제가 시내버스 정년이 끝나고 마을버스 일을 시작한 건데,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해요. 매일 청년들과 마주하며 기운을 받고, 똑똑한 학생들을 싣고 다니고, 일한 돈으로 기부도 할 수 있으니 너무 고맙고 감사해요. 그 생각을 하면 내 기분이 좋든 그렇지 않든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되네요.

 

 

녹두 ‘휘가로’

서울대 녹두거리 쪽은 우리가 제일 먼저 오픈했어요. 옛날에는 학생들이 손목시계 맡기고 학생증 맡기고 먹었다니까. 90년대엔 사시 합격하면 난리났었지. 그러면 주변 사람들한테 다 술을 사줘야 되는 거야. 그러면 여기서 쏘는 사람은 안 바뀌고 몇번씩 와서 쏘고 했지. 그리고 옛날에는 법대생들은 깔때기로 먹고 그래서 여기 깔때기도 있었어.

 

 

 

▲ 1997년 11월, 학내에서 강제 연행된 41대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등의 석방을 요구하며
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새벽 4시 10분경 학생회관에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 1995년 당시에도 번화했던 녹두거리의 사진이다.
오른편에 작게 ‘휘가로’의 간판도 보인다.

 

 

 

 

 

 

 

 

 

 

 

 

 

 

 

 

서점 ‘그날이오면’

97년도에 국가보안법으로 서점 대표자들이 구속된 적이 있었어요. 당시 명의자이던 저희 처가 연행돼 구속이 되고, 저도 불구속 상태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그 소식이 학내에 퍼진 거에요.

“‘그날이오면’이 침탈당했다.” 그래서 조사를 받고 저녁때쯤 돌아와보니 약 400명의 학생들이 서점 앞 도로가 꽉 찰 정도로 모여서 항의 집회를 하고, 저도 그 앞에서 앞으로의 포부를 밝혔어요. 그때 함께 해준 사람들에 대한 집단적인 기억이 가장 강하게 남네요.

▲ 녹두의 서점 ‘그날이오면’ 은 1990년대 학생들의 소식통이 되기도 하고 비상연락망이 되기도 했다.

 

 

서울대입구 하숙집

나는 참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이렇게 우리나라에서 이런 좋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만날 기회가 없잖아요. 여기 아니면 어디서 만나겠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학생은 새내기 대학교 1학년부터 와서 대학원 갈 때까지 기숙사랑 여기랑 번갈아 가면서 살던 학생이에요. 오래 보기도 봤고 예의도 바르고. 학생들이 대체로 예의도 바르고 교양도 있어요.

▲ 1978년, 신림동의 한 하숙집에서 학생들이옹기종기 모여 식사를 하고있다.

 

혜화 ‘학림다방’

물론 학생들이 예전만큼 많이 오진 않죠. 원래는 저 앞이 서울대학교 문리대 자리였거든요. 그때는 학생들이 연락할 방법이 많지 않으니 여기를 아지트처럼 삼고 이용하곤 했어요. 학생들이 다니다 보니 교수들도 오고 종종 와서 강의도 하고... 그러다 보니 ‘제

▲ 1960년, 방과후 서울대생들은 문리대 앞
다방에 모이거나, 극장에 가거나,
바둑을 두러 다니기도 했다.

25강의실’이라고 불렀나 봐요. 건너편 작은 개천을 센강이라고 부르고 다리를 미라보 다리라고 부르는 것처럼요. 예전 서울대 학생들은 이쪽 지역에 대한 추억이 많을 거에요. 지금은 다니던 캠퍼스가 이전하고 없으니 졸업하신 분들은 이쪽에 와서 추억을 되새기기도 해요. 이야기를 듣고 와보는 학생들도 있고 아직도 환경대학원인가 어디는 간혹 와서 야외수업을 하기도 해요.

 

 

 

 

관사장학회 회장님

관사장학회는 관악구 지역 주민들과 다른 여성 단체장들이 함께 모여 관악구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 생각하다가 만든 장학회예요. 아직은 만들어진 지 얼마 안 된 장학회다보니 좀 더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먼저 손길을 내밀 수밖에 없었지만 앞으로 계속 진행해 가면서 더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울대입구역 꽃집

서울대 애들은 그런데 포장도 단순한 걸 좋아해. 보면 학교 앞에 놀 데도 없고 애들이 잘 꾸미고 다니지도 않아. 가만 보면 참 순수해. 그래서 난 서울대생들이 너무 좋아.

애들이 너무 착해. 항상 버스줄 서있는 거 보면 안경 안 쓴 사람이 없고 배낭 메고 책 들고 있어요. 항상 아침 되면 줄이 이렇게 길게 서있는 거야. 그거 보고만 있어도 좋아 난.

 

 

글·사진: 대학신문 사진부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