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윤 부편집장

안 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였다. 외할머니에게 돈이 있고 일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것이었다. 일에 치이고 있는 엄마를 제외한다면 암 투병 중인 아빠나 이제 대학생인 언니를 가리키는 말 같았다. 19살이었던 나는 구청에서 보내온 쌀과 라면 박스를 보며 처음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못 된 사람이 구청에서 난동을 피웠다는 뉴스를 이해했다.

청년빈곤은 보통 복지시스템의 사각지대에 자리한다. 그들에겐 충분히 가난을 헹궈낼 여지가 있으며 어디서든 고생 좀 하면 금세 처지가 나아진다는 전제가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개 가난한 청년은 가난한 집을 업고 산다. 가난한 집에 태어나기를, 가세가 기울기를 바란 적이 없어도 그들은 1998년 외환위기, 2000년 카드 대란 등으로 무너진 가계 밑에서 가난을 입고 자란다. 성인이 되면 일찍 빚의 대물림을 겪거나 아무 자산 없이 사회로 던져진다. 아빠가 남기고 간 빚 몇 억을 상속포기한 후에야 나는 불어나는 가난을 막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청년 빈곤에는 ‘다메’(溜(め)池)가 없다고 볼 수 있다. 『빈곤에 맞서다』에서 저자 유아사 마코토는 가난을 이겨낼 수 있는 저마다의 저수지(다메이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때 다메는 단순히 경제적 여유뿐 아니라 기댈 수 있는 가족이나 친구, 사회안전망이나 자존감 등을 포괄한다. 가난한 청년층의 경우 자산도 없고, 가족이나 제도에 의지하기도 어렵다. 요즘엔 인간관계도 포기한다니 말 그대로 좁디좁은 저수지에 의지해 가뭄을 나는 셈이다.

그나마 고인 물로라도 그들은 자기 삶을 적시려 애쓴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혹여나 고용보험에서 배제돼도, 모욕을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여긴다. 월급보단 일당, 계좌이체보단 현금지급이 낫다. 당장 하루살이를 강요당하는 그들에게 무일푼이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없는 부자유를 의미한다. 경제학자 아마티아 센도 빈곤을 “단순한 저소득보다는 기본적인 잠재능력을 빼앗긴 상태로 봐야 한다”고 진단한다.

저임금만으론 스스로 가난을 벗기 어려운 청년층에게 선택의 자유는 주어진 환경에 좌우된다. 금수저부터 플라스틱 수저까지 다양한 계급론이 나오는 배경에는 근로소득으로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없다는 좌절이 깔려있다. 시간마저도 돈이 된 시대에 졸업을 미루거나 계획에 없던 대학원에 진학하는 건 가난한 청년의 결정권 밖에 있다.

물론 졸업을 미루는 청년들도 풍요를 누리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다. 새로운 정규직 일자리는 터무니없이 적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만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다. 양산된 비정규직 일자리에선 아무도 모를 불의가 여전하다. 대기업에 들어가도 족족 해고되는 현실에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공딩’들이 는다. 그래도 아직 알파고보다 우리가 싸다는 자조가 농담처럼 나온다.

청년빈곤은 비단 빈곤층뿐만 아니라 청년층 여기저기에 스며있다. 작은 저수지를 물려받은 이도, 어떻게든 경작을 미루는 이도 각자 물을 그러모으는 경쟁에 갇혀있다. 어쩌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생존에 빗겨있는 제삼자의 가뭄 구제책일지도 모른다.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청년수당 공약들이 청년의 팍팍한 현실을 방증한다.

다만 앞다퉈 나오는 공약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치이거나 흐지부지 끝날까 우려스럽다. 현재 들려오는 청년복지 대책은 대부분 시혜적 접근에 그치는 경향이 있다. 저임금 노동이 늘어가는 지금, 당장 장려금을 주는 데서 나아가 청년들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는 복지제도는 무엇일까. 한국의 빈곤과 그 구조 안에 서린 청년빈곤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오늘도 자기소개서에는 “가장 힘들었던 기억과 극복한 경험을 쓰라”고만 나온다. 아직 가난을 다 극복하지 못한 나는 쓸 말을 잃는다. 수능이 끝난 후로 한 번도 쉬어본 적이 없지만 스스로 좀 더 벌고 아껴야 했다는 자책이 든다. 언제나처럼 어려움을 극복한 개인의 자수성가는 신화가 되고, 복지는 희미한 풍문으로 남는다. 이것이 가난이라는 옷을 입은 채 사회로 나서는 청년들의, 우리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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