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대만 타오팡 청년 주거문제

열심히 일하고 허리띠를 졸라매 ‘내 집’에서 행복한 가정을 일구는 것이 평범한 대만 사람들의 인생이었다. 부모님의 성공을 보고 자란 지금의 대만 청년들도 비슷한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수도인 타이베이의 집값이 월급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기자가 만난 청년들은 스스로의 조국을 ‘귀신 들린 섬’(귀도)이라고 자조했고,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는데 이대로라면 부모만큼도 못 살 거 같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집값에 미래를 뺏겨버린 대만 청년들은 좁은 방에 그대로 갇혀있지 않았다. 그들은 거리에 나와 함께 분노했다. 지난 2월 ‘헬대만’에 저항하는 대만의 20대를 만났다.

 

타오팡에 갇힌 청년, 빈곤을 마주하다

대만의 집값은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갔다. 2008년 미국을 덮친 서브프라임 사태와 뒤이은 유럽의 재정위기는 전 세계 대부분 나라의 집값을 떨어뜨렸지만 대만 타이베이의 집값은 홀로 고공 행진했다. 미국 경제매체 「쿼츠」는 “2014년 1분기 타이베이의 부동산 가격은 2008년 4분기에 비해 91.6% 상승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반면 같은 시기 대만의 가계 소득은 고작 연평균 0.63% 증가했다. 대학졸업자 초임도 수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대만 행정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기준 4년제 대학 졸업자 초임은 월 25,000TWD(한화 약 100만원)으로 2011년 25,000TWD, 2012·13년 26,000TWD와 비교해 똑같거나 후퇴했다. 일자리가 많은 타이베이 중심가는 원룸 방값이 20,000TWD에 육박해, 월급을 고스란히 월세로 내는 사람도 있다.

비정상적인 소득과 집값의 격차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소득대비 집값 지수(PIR)다. 타이베이의 PIR은 16.0인데, 이는 소득 중간층(소득을 5구간을 나눴을 때 3분위 구간의 연평균 소득)이 중간대 주택(집값을 5구간으로 나눴을 때 3분위 구간의 평균값)을 사려면 16년 치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한다는 뜻이다. 유엔 인권정주위원회가 권고하는 적정 PIR은 3.0~5.0이다. 2014년 서울의 PIR은 8.4였다.

원룸 월세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청년들에게 등장한 대안이 '타오팡'이다. 타오팡은 하숙과 원룸 사이의 독특한 주거 방식으로, 보통 평수의 아파트 한 채를 여러 개로 쪼개서 방마다 한 사람씩 거주하는 형태다. 개인 욕실 유무는 타오팡 가격에 따라 다르고 주방은 공용이다. 대만동오대학교에 다니는 란이우 씨(23)도 학교 근처 타오팡에 살고 있다. 란이우 씨가 사는 아파트 대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를 사이에 두고 오른쪽에는 큰 타오팡 1개, 왼쪽에는 작은 타오팡 2개가 있다. 큰 타오팡에 집주인이 살고 작은 타오팡에 각각 대학생 1명씩 산다. 타오팡으로 들어가는 문은 판자로 만들어진 대문으로, 아파트 안에 있는 일반 방이 아니라 완전히 개별적인 진짜 집이다. 그는 “호텔 방들처럼 완전히 분리됐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집주인에게 매달 1일에 월세를 내는데 그날이 아니면 주인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고 같이 사는 다른 대학생도 잘 모른다”고 말했다. 란이우 씨와 다른 학생이 사는 방은 4.5평으로 침대가 방 전체 크기의 2/3를 차지할 정도로 좁다. 주인이 사는 방은 그보다 약간 넓은 10평 수준이다.

아파트를 쪼개기 위해선 최대한 넓은 평수가 필요하기 때문에 불법 증축이 아주 흔하다. 타이베이 아파트를 보면, 베란다가 있을 곳에 컨테이너 박스가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고, 건물 밖으로 박스가 볼록 튀어나와 있는 경우가 많다. 란이우 씨는 이 박스들 95% 이상이 타오팡이라고 설명했다.

 

▲ 타이베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타오팡이다. 비싼 땅값을 건디다 못한 청년들은 아파트를 쪼개다 못해 베란다에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하고 그 안에 산다.

청년들을 좌절시킨 어른들의 땅투기

애초에 원룸용으로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불법으로 건물을 개조한 것이다 보니 안전문제나 소음문제도 심각하다. 란이우 씨는 옆방에 사는 사람이 무슨 노래를 좋아하는지, 화장실은 언제 가는지, 애인과 하는 모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알고 있다고 투덜댔다. 그가 이 타오팡에 살기 위해 지불하는 월세는 10,000TWD(한화 약 40만원)이다. 란이우 씨는 “집 주인이 친구 친척 분이셔서 저렴하게 방을 구한 편”이라며 “지하철 역 근처에 사는 동기는 몸만 뉘일 수 있는 비좁은 타오팡에 사는데 나보다 월세가 더 비싸다”고 귀띔했다. 이어 “학교가 타이페이 번화가에 위치해 땅값이 정말 비싸 다들 원룸은 꿈도 못 꾼다”고 덧붙였다.

타이페이 외곽지역인 신베이역 근처에 사는 즈밍 씨(28)는 직장인이 된 후 타오팡에서 벗어나 원룸으로 이사했다. 타이페이 시내가 아니라 외곽에 직장을 잡은 덕이었다. 그는 동생과 함께 투룸에 살며 한 달 월세로 22,000TWD(한화 약 88만원)를 낸다. 사는 것은 좀 어떻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아파트가 지어진 지 30년이 넘었는데 리모델링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어 정말 낡았고, 차가 없으면 타이페이로 올 수 없을 정도로 교통이 불편하다”고 말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월세가 이렇게 비싼데도 왜 직접 집을 구입하지 않을까. 곽샤오이 씨(29)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으며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예컨대 그가 지금 사는 타이베이 외곽의 평범한 원룸은 100년 치 월세를 내야 살 수 있다. 내 집 마련과 결혼은 포기한 지 오래다. 26,000TWD(한화 약 108만원)를 받는 곽샤오이 씨가 18,000,000TWD(한화 약 7억 2천만원)짜리 집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만 청년들이 받는 월급으로는 살인적인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너무 비싼 집을 살 사람이 없어 타이베이의 주택 공실률은 20%가 넘는다. 부동산 가격이 지금처럼 폭등한 것은 80년대부터 시작된 대만의 경제 호황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만에서는 집을 여러 채 소유해도 세금을 더 부과하는 제도가 없고, 부동산 소유세가 소득세의 1/10인 0.5%에 불과해 부동산 부자들에게 세금부담이 거의 없다. 때문에 1980~2000년대 경제 호황기에 갈 곳을 잃은 자본이 전부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들어 갔다. 이때 타이베이에 여러 채의 부동산을 소유한 부자들은 당장 집이 팔리지 않아도 가격을 내리지 않고 그냥 둔다. 곽샤오이 씨는 “부동산은 항상 오른다는 필승신화가 지배적인데, 부자들에겐 어차피 세금부담도 0에 가깝기 때문에 이들이 집값이나 임대료를 내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대를 잘 타고난 어른들은 성장의 과실을 만끽하고 땅 투기로 돈을 벌며 대만을 귀신 들린 섬으로 만들었다”며 “귀신 들린 섬을 만든 책임은 회피하고, 성장을 멈춰버린 시대를 힘겹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힘든 일을 안 하려고 한다’ ‘너무 나약하다’며 훈계하는 꼴이 너무 무책임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해 가을 결집된 분노가 세상을 바꿨다

청년들은 끝내 분노를 터뜨렸다. 2014년 가을, OURs(The Organization of Urban Re-s)·사회주택시행추진연맹 등 101개의 민간 시민단체 주도 아래 1,200명의 청년이 대만의 최고급 아파트 디바오(궁전)앞에 모였다. 궁전아파트의 한 달 관리비는 한화 1,200만원, 집값은 평당 5억 6,000만원이 넘는다. 시위대는 ‘평등을 보장하라’ ‘청년 주거권을 약속하라’는 피켓을 든 채 타이페이 집값의 상징인 궁전아파트 앞에 판자를 깔고 그 위에 누웠다. 평생 못 살아 볼 땅에 이렇게라도 누워보겠다며 말이다. 청년들은 정부의 부실한 주택보급정책을 비판하고 주택관련 법률 개정을 요구하며 거리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른바  '새둥지운동' 이었다.

새둥지운동은 일회성 행사로 끝나지 않았다. 청년들은 귀향 버스·귀향 비행기를 타고 투표소에 갔다. 부재자 투표제도가 없는 대만에서 타이베이로 상경한 청년들이 투표하기 위해선 고향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만 총통선거에서 20~29세 청년층의 투표율은 74.5%로 전체 투표율 66.27%를 웃돌았다. 이는 2012년 총통선거의 청년층 투표율 60%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결집된 분노는 정치를 바꿨다. 중·장년층을 지지기반으로 두는 국민당이 청년을 지지기반으로 두는 민주진보당(민진당)에게 정권을 넘겨준 것이다. 민진당 차이잉원 총통의 핵심 공약인 ‘5대 사회안정 계획’ 첫 번째가 젊은 층을 위한 사회임대·공공주택 건설이었다. 차이잉원의 행보는 청년들의 불만에 응답하지 않았던 국민당 정부와 대조돼 청년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실제로 케이블 방송 TVBS의 1월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당 주리룬 후보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4.6%였고, 민진당 차이잉원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54%로 10배가 넘었다. 민진당사 한쪽에 마련된 차이잉원 홍보 기념품 판매장에선 선거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컵과 티셔츠를 사 가는 청년들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란이우 씨는 “주변에 국민당을 지지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또 주목할 만한 총선 결과는 지난달 25일에 창당 1주년을 맞은 신생정당, '시대역량'이다. 시대역량은 청년의 대변자를 기치로 내건 정당으로 대만의 최근 청년운동을 진두지휘한 당 대표 황궈창 씨(42)가 상징적인 인물이다. 이번 총선에서 시대역량은 6.1%의 지지를 얻으며 의회 내 5석을 확보해 제3당으로 원내진입에 성공했다. 펑진펑 부교수(대만대 정치학과)는 대만 언론 「중앙사」와의 인터뷰에서 “시대역량은 집권세력에 대한 젊은 세대의 불만을 대변하는 상징”이라고 평했다.

대만의 정치구조·세대갈등·청년들의 절망은 한국의 그것과 똑 닮았다. 대만 청년들은 기득권 틀에 순응하며 자신을 구겨 넣는 대신 정치권에 목소리를 내며 틀 자체를 바꿨다. 이들은 80년대 거리에서 화염병을 던지던 한국의 청년을 기억한다. 시위가 아니어도 좋고, 가시적인 사회운동이 아니어도 좋다. 어둠을 밝히는 것은 횃불이 아니라 작은 촛불로도 충분하다. 한국의 청년들이 마주할 미래가 궁전아파트에 살지 않는 평범한 청년도 행복한 사회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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