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유정 석사과정

정치외교학부 외교학전공

관악에서 맞이하는 열 번째 봄이다. 매번 그랬듯 길게 늘어선 셔틀버스 줄과 식당 줄이 새 학기와 새로운 구성원의 합류를 알린다. 지금은 높다란 아시아연구소 건물로 바뀐 과거의 후생관에서는 새내기들이 놓여 있는 반찬들을 죄다 집어 밥값을 대신 계산해주려는 선배들을 당혹케 하는 에피소드가 종종 생겨나기도 했다. 메뉴별 정액제가 아니라 그릇마다 가격이 따로 매겨져 있던 당시 후생관에서 쌓은 추억을, 후배들은 ‘감골’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이처럼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 사이의 미묘한 줄다리기는 새 봄의 두근거림을 극대화시키곤 한다.

봄은 그 단어가 가진 따뜻한 이미지와는 달리 녹록지 않을 수도 있다. 이른 봄에 피는 매화가 아름다운 이유는 여전히 가시지 않은 추위 속에서 누구보다 일찍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필자가 입학하는 그날에도 진눈깨비가 흩날렸고, 새로 산 봄옷을 입으면 감기 걸리기 딱 좋을 정도로 관악의 봄은 늘 더디게 오는 듯 했다. 1980년 서울의 봄이나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사건들과는 별개로 여전히 ‘봄’일 수 있는 것은 따뜻한 희망만이 봄의 전부가 아니라, 혹독한 시련의 세월을 잠깐이나마 녹이고 변화와 역동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처절함도 봄의 일부기 때문이 아닐까?

꽃샘추위 속에서 봄 패션을 지킨다는 것은 어지간한 체력이 아니고선 힘들다. 마찬가지로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혹독한 시간들을 거치기 위해선 신체적으로나 연구역량으로나 기초체력이 필요하다. 연구자로서의 커리어를 위한 체력단련엔 ‘내 삶을 관통하는 질문’을 찾아보는 것도 포함된다. 이는 당장의 연구내용이 일상생활에 바로 적용돼야 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보다는 수많은 현상들 중에서 ‘왜 하필 그 문제를 다루게 됐는지’ ‘그 다음 단계의 연구는 무엇인지’에 관해서 스스로 정립할 수 있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주변의 조력을 받을 수도 있고, 핵심질문이 단칼에 결정되지 않거나 바뀌기도 한다. 그렇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커리어 속에서 어느 순간 성큼 다가온 선택과 혼란의 순간에 버텨낼 만한 원동력으로서는 꽤 쓸 만한 자원이 될 수 있다.

삶의 문제는 실천의 영역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사회과학도로서 규범적 판단이나 처방과 실천적 함의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는 쉽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베버가 했던 가치중립성과 객관성에 대한 고민은 생각해 볼 점들을 남긴다. 예컨대 강대국 간의 힘의 정치나 대통령의 국정운영에는 할 말이 많지만, 내 가장 가까운 곳의 권력관계에는 무심한 정치학도라면 어떨까? 이론과 학술적 연구가 모든 사회현상에, 특히 하루하루의 생업전선의 모든 문제에 명쾌한 답을 내려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만 자기성찰이 부재한 학문이 상아탑에 갇히지 않고 세상을 한결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지는 않다고 믿을 뿐이다.

관악에서 맞이하는 열 번째 봄이지만, 연구자로서 걸어갈 긴 여정의 봄 같은 시기기도 하다. 다음 봄을 맞이할 즈음에는 다가올 여름을 잘 날 수 있는 지혜를 조금 더 얻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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