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트만 코닥이 조그만 박스와 같은 카메라를 만들면서 “찍어만 주세요. 나머지는 저희가 책임집니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전 세계 사진 시장을 석권한 지 100년이 지났다. 독일의 아그파사는 카메라용 필름 생산을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고, 코닥은 미국내 공장과 해외 공장 일부에서 필름 생산을 중단하고 있다. 이제 필름은 소수의 마니아와 아티스트를 위해 소량으로 생산되면서 가격은 몇 배로 뛸 것이다. 그 대신 고성능 컴퓨터와 고해상 모니터, 그리고 아도비의 포토샵이 ‘암실’ 대신 ‘명실’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최근 필자처럼 다큐멘터리 사진이나 포토저널리즘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이상한 풍경이 하나 생겼다. 본격적인 SLR(일안반사식)식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되면서 취재현장에서는 사진가들이 끼리끼리 모여 촬영한 사진을 즉석에서 리뷰하고,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컷들은 즉석에서 지우고 있다. 과거 필름을 사용할 때는 상상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이 현상은 분명 디지털 사진의 명암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이를 긍정적으로 본다면 ‘맘 놓고 마구 찍어도 좋다’는 것이다. 필름 살 돈을 걱정하지 않고 부담 없이 피사체를 요리할 수 있다. 필름의 감도나 칼라, 흑백을 선택할 필요도 없다. 모든 사진은 후 작업에서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교과서에 나오는 앵글과 노출에 대한 부담으로 피사체 앞에서 망설였던 과거를 털어내고 마음껏 찍으면서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시험해 볼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즉석에서 ‘Delete’를 누른다.

 

 

하지만 이 같은 자의적인 판단은 ‘기록한다’는 사진가의 명제와 종종 배치된다. 내용상 필요없다고 생각되거나 형식상 모자란다고 판단한 사진을 즉석에서 지우는 것은 쉽지만 먼 훗날 이 컷들이 내용면에서 ‘후특종’을 만들기도 하고 형식적으로 ‘참신’했다는 것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필름을 사용한다면 좋든 싫든 촬영한 것은 모두 보관하는데 비해 디지털은 기록상 큰 손실을 자행하고 있는 셈이다.

 

즉석에서 가치판단, '후특종' 사라져

오랜 기다림 요구했던 '설렘의 추억' 없을 것

 

한편, 필름에 비해 보정과 리터칭과 같은 후 작업이 간편하다는 디지털 사진의 속성 때문에 많은 사진가들이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3월이면 신문 1면에서 볼 수 있는 황사 사진의 경우 극적인 효과를 위해 ‘노랑색’을 과도하게 조작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필름도 역시 암실에서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디지털에 대한 편견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필름이 가진 ‘원판 불변의 법칙’이 존재하지 않느냐고 항변할 수 있지만 디지털에도 RAW파일처럼 수정되지 않은 원본 파일이 존재한다. 이 파일은 후 작업으로 수정될 때마다 기록이 남고 어떠한 변형에도 견디는 내구성을 가지고 있다. 즉 어떤 사람이 몰래 사진을 조작하거나 적당히 변형해서 원본이라고 우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이런 문제는 사진을 찍는 주체의 도덕성의 문제이지 디지털 카메라라는 기계가 갖고 있는 고유한 특성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사진은 찍는 주체의 몫이지 카메라의 몫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사진은 디지털로 완성될까? 피사체에서 튀어나온 광자가 렌즈에 빨려 들어가 필름의 은입자를 변형시키거나, 또는 반도체 소자에 0과1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사진가에게 전혀 다른 인식을 요구한다. 디지털의 색과 질감이 필름과 완전히 동일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해도 촬영하는 주체가 이것을 인식하는 순간 피사체를 대하는 태도는 달라지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 1백년간 자신의 인생 또는 타인의 삶의 한순간을 기록하고 보관할 수 있었다. 찍을 때  때로 수고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하지만 오랜 기다림 끝에 그 결과물에 대해 만족해하고 행복해한 것은 사진예술만이 가져왔던 독점적 특권이었다. 과연 디지털 사진도 과거의 사진처럼이 ‘설렘의 추억’을 느끼게 할까.

 

이상엽

다큐멘터리사진가ㆍ웹진 이밎프레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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