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목 교수(물리천문학부)

우리 시간으로 지난 2월 12일 새벽 1시, 미국 과학재단에서는 중력파 검출 소식을 전하는 기자회견이 열렸고 각 국가별로 같은 시각, 또는 몇 시간의 시차를 가지고 동료 연구자들의 발표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이른 새벽이어서 9시간이 지난 오전 10시에야 국내 언론을 위한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이미 외신을 통해 내용이 어느 정도 알려졌고 미국과 유럽 몇 나라가 주도했던 연구였기 때문에 큰 관심을 끌지는 못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회견장에는 자리가 모자라 많은 사람들이 뒤에 서서, 또는 문 밖에서 취재하는 풍경이 연출됐다.

우리나라에서는 지금도 영웅이나 구세주를 찾으려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5년마다 되돌아오는 대통령 선거 때만 되면 넘치는 공약과 구호를 들으면서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처럼 들썩거리지만 막상 시간이 지나면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과학 분야에서도 뛰어난 학자가 나타나 세계가 놀랄 만한 연구 성과를 내서 노벨상을 받고 우리나라 전체 산업 경쟁력까지 몇 단계 끌어올려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중력파 최초 검출이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는 것은 과학의 발전은 이러한 구세주에 의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력파는 아인슈타인이 1916년에 이미 예측했지만 실험적으로 검증하려는 노력은 1960년대에 들어와서야 시작됐다. 처음으로 등장한 검출기는 조지프 웨버가 제시하고 직접 제작한 원통 모양의 금속 막대를 이용한 것이었으나 충분한 감도를 얻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은 중력파 검출이라는 숙제를 과학계에 남겨 놓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게 한 기폭제 역할을 했다.

중력파 검출의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은 대형 레이저 간섭계다. 미국과학재단은 1970년대 중반부터 레이저 간섭계에 대한 기초 연구를 지원하기 시작했으며, 1990년에는 미국 국가과학위원회가 정식으로 이번 중력파 검출에 성공한 장비인 LIGO(Laser Interferometer Gravitatinal-wave Observatory)의 건설을 승인했다. 막대 검출기부터 시작하면 근 60년, 레이저 간섭계만 따진다고 해도 40년이 넘는 기간을 지원해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LIGO와 함께 중력파 검출의 또 하나의 주인공은 1997년에 출범한 라이고 과학협력단(LIGO Scientific Collaboration, LSC)이다. 전 세계에서 중력파를 연구하는 사람들을 모아 함께 연구하고, LIGO가 관측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검출기로부터 나오는 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제작할 뿐 아니라 검출기의 성능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준 조직이 LSC다. 한국중력파연구협력단은 2009년에 LSC의 회원이 됐으니 비교적 늦게 가입했지만 직접적인 검출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와 가동 과정에서 전세계 여러 나라의 연구자들과 호흡을 함께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라이고는 2002년부터 2010년까지 감도를 점차 올려가면서 가동을 반복했고, 2011년부터 2014년 사이에는 어드밴스트 라이고(advanced LIGO, aLIGO)로 업그레이드하는 공사를 진행한 후 지난해 여름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가자마자 최초의 중력파를 검출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LSC의 일원으로 중력파 검출 과정에 참여하고 모든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느낀 것 가운데 하나는 과학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라는 것이다. 지식은 공유할수록 커지고 공동연구는 오류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게 해준다. 무려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같이 일하는 과정에서 더없이 중요한 것은 소통이다. 개성이 뚜렷한 수많은 연구자들이 하나의 목표를 위해 같이 일하는 것이 어찌 쉬울 수 있겠는가? 한번 회의를 시작하면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느라고 시끄럽고 언제 회의가 끝날지 모른다. 그러나 일정한 논의가 끝나고 방향이 결정되면 그 후로는 모두 군말없이 따라가는 과정이 해마다 반복된다.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지만 결국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모두가 승복한다.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최종 결정안에는 소수 의견이 적극적으로 수용된다. 이러한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끊임없는 지식의 진보가 이뤄지는 곳이 LSC의 또 하나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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