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두 차례 거대 원전 사고를 겪었다. 체르노빌 사고 30주년, 후쿠시마 사고 5주년인 올해, 관련 연구와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있고 반핵 운동도 활발하다. 각국 정부도 원자력이 인류에게 치명적인 재난의 근원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해 탈핵 움직임에 시동을 걸어왔다. 독일은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을 완전히 정지할 계획이며, 대만은 98% 완공된 신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원자력 자체에 대한 불안 심리와 거부감이 늘고 있는 것이다.

원전에 대한 두려움은 앞서 겪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비극적 경험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아카하타 신문」 사회부의 『후쿠시마에 산다』는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그 비극의 역사를 개개인들의 구체적인 목격담과 체험담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두 권의 책에 실린 바로 그 생동하는 목소리들은 독자에게 진실이 만들어내는 크고 깊은 울림으로 전해져온다.

▲ 체르노빌의 목소리: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김은혜 옮김/

새잎/ 408쪽/ 16,000쪽

▲ 후쿠시마에 산다: 원전 제로를 향하는 사람들/

「아카피타 신문」 사회부/ 홍상현 옮김/

나름북스/ 399쪽/ 15,000쪽

인류 최대의 원전 사고, 체르노빌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가 폭발했다. 알렉시예비치가 인터뷰한 사람들은 “뭔가 다른 죽음”을 목격했다. 죽은 동물들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새들은 눈이 멀어 자살하는 듯 창문에 뛰어들었다. 모든 곳에 방사능이 퍼졌다. 상점의 물건들에서도, 수유 중인 여자의 모유에서도 방사능이 검출됐다. 원전 해체와 청소 작업도 불완전하게 진행됐다. 작업에 참여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보호구도 받지 못한 채 원전에 뛰어들었고, 그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했다. 의사들은 방사능에 노출된 환자들을 가스 중독으로 오진했고, 이후 방사능에 타들어 간 시체들을 치워야 했다.

사고 상황은 정부가 사실을 은폐함으로써 악화됐다. 방사선 수치 기록이 조작돼 보도됐고, 생산지가 표기되지 않은 제품들이 상점에서 버젓이 팔렸다. 사회불안을 조장하고 체제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은 협박과 살해 위협을 받았다. 사고가 난 뒤에는 모두가 체르노빌 사고를 외면하려고 했고, 피해자들 자신조차도 사고에 대한 기억을 직시하지 못했다. 자신이 살던 평화로운 세계가 일순간 죽음으로 가득 찬 사태에 직면한 피해자들은 너무나 큰 충격으로 침묵한 채 주변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알렉시예비치는 사고를 직접 겪거나 목격한 사람들을 10년 넘게 인터뷰해 그들 스스로 자기 내면의 아픔을 말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왔다. 소문과 유언비어로 공중에 떠 있던 체르노빌 사고는 드디어 현실 세계에 발을 내디뎠고, 기록되지 않은 역사는 사람들의 상처 받은 마음에서 비롯된 생생한 문장들로 비로소 채워졌다. 저자는 어떤 언론이나 단체도 전달하지 못한 원전 사고의 파괴성을 개개인의 솔직한 발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알렉시예비치는 원전 사고를 특정 사회나 논리 구조하에서 해부하지 않는다. 그는 방사능 수치나 사망자 수 같은 과학적 사실 대신, 원전 사고를 맞닥뜨린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선천성 장애를 가진 딸을 낳은 어머니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온갖 모욕을 받았고, 자식에 대한 죄의식으로 고통당했다. 또 대머리인 아이들은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고, 어디를 가든 버려졌다고 느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체르노빌과 관련된 여러 피해자와의 대화의 장을 마련하고, 독자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여 원전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사고의 비극성에 공감하도록 만든다.

시간이 지나도 반복되는 원전 재앙, 후쿠시마

25년 뒤, 체르노빌 사고와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는 재앙이 일본을 덮친다. 2011년 3월 11일 태평양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해일은 일본을 덮쳐 후쿠시마의 집과 선박, 사람들을 쓸어갔다. 설상가상으로 지진해일은 원전을 가동하는 전력을 끊어버렸고, 냉각수가 공급되지 못한 원전은 결국 폭발하고 만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원자력 사고가 두 번째로 일어난 것이다.

『후쿠시마에 산다』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원전 사고 후 혼비백산한 후쿠시마의 상황을 자신만의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사고 직후 방사능은 후쿠시마 시내 한복판까지 퍼졌고, 이 때문에 출입 금지 구역이 지정돼 후속 조치가 지연될 수밖에 없었다. 원전 사고로 지진해일 수습이 늦어지면서 주민들은 심하게 손상된 가족의 주검을 지켜봐야만 했다. 열악한 피난처에서의 생활이 길어지자 주민들의 스트레스와 두려움도 깊어졌고, 생계 또한 암담해졌다. 후쿠시마 주민들은 제각기 다른 방식으로 평화로웠던 삶을 빼앗기고 전쟁과 같은 절망에 빠져버렸다.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은 제대로 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누구보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 국회는 비밀보호법을 제정해 원전 사고 관련 자료를 모두 은폐할 여지를 남겨놓았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주민들과의 협상 없이 배상 체계를 일방적으로 결정했으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원전 재가동과 수출을 추진했다.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방사능 관련 사망자를 집계하는 일을 회피했고, 방송도 그에 관한 진실을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은 사람들의 두려움에 편승해 자극적이고 부정적인 기사를 생산하기도 했다.

이 책을 기획한 「아카하타 신문」은 후쿠시마 주민들이 실제로 겪고 있는 현실을 보도함으로써 정부와 도쿄전력의 졸속행정과 사고 수습에 미지근한 태도를 비판했다. 나아가 신문은 사고 피해자들이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원전 사고가 터진 지 3년이 지났음에도 아라오 슌스케 씨의 집 실내에서는 시간당 0.2µSv, 근처 공터에서는 그것의 3배에 달하는 방사선량이 검출됐다. 주민들은 방사선량이 예전보다 낮아졌어도 정말 아이들이 아무런 영향 없이 자랄 수 있을까 하는 심적 불안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가 원전 수습에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증세로 주민들의 부담만 가중하니, 주민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극 속에서도 한 포기 풀이 자라기 마련이다. 『후쿠시마에 산다』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희망적인 모습을 그린다. 한 음악가는 음악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내용을 담아 사람들을 위로하면서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는 정부를 비판한다. 건조한 문체로 정부와 도쿄전력을 고발하는 시를 써서 문학상을 탄 시인도 있다. 이렇게 『후쿠시마에 산다』는 거대 재앙에 맞서 사람들이 서로 위로하고, 의지하고, 연대하며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을 차곡차곡 기록해나간다.

또 다른 비극으로부터 생명과 존엄을 지키려는 사람들

체르노빌 사고와 후쿠시마 사고는 그 원인과 진행 양상에는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후쿠시마에 산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겪은 사고를 똑같이 ‘전쟁’이라 회고한다. 피해자들이 입은 몸과 마음의 상처는 전쟁만큼이나 비극적이었다. 체르노빌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고가 일어나기까지 과학기술은 발달을 거듭했고 인류는 더 진보한 것처럼 보였지만, 원전은 똑같은 메커니즘으로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 속에 빠뜨렸다. 원전 사고가 피해 지역의 과거와 문화, 전통, 가치를 송두리째 무너뜨린 것이다.

또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어느 곳에서도 피해보상이나 재발방지 노력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관계자들의 비인간적인 사후 조치는 원전의 필요성과 안전성에 대한 논의를 넘어서서, 피해자들의 인간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들은 자신의 힘으로 무너진 생명의 존엄성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고 분투한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의 부제는 ‘미래의 연대기’다. 원전 사고는 과거의 기록이지만, 그것은 다가오는 미래를 닮았다는 이야기다. 여기에는 그들이 겪은 재앙이 미래에 다시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강력한 메시지와 체르노빌 사고를 겪고 극복해온 그곳 주민들의 염원이 담겨있다. 후쿠시마 주민들도 자신의 세대에서 원전 피해를 끝내고, 다음 세대를 위한 거름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원전이 가장 밀집된 나라기도 하다. 『체르노빌의 목소리』와 『후쿠시마에 산다』는 원전 사고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현재와 미래까지 잠식한다는 사실을 엄중히 경고한다. 사고로 인한 상처는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아직도 아물지 못한 채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다. 반복된 재앙에서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제2의 체르노빌, 제2의 후쿠시마는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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