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한반도 강제동원 유적 보존 실태와 보존 방안

한반도 강제동원 유적에 대한 우리 사회의 관심이 환기된 것은 지난해 일본 하시마 섬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는 소식이 알려진 다음이었다. 하시마 섬을 메이지 산업혁명유산으로 추켜세우면서 조선인 강제동원의 역사를 은폐하는 일본 정부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지는 한편, 한반도에 산재한 8,000여 곳의 강제동원 유적이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이에 『대학신문』은 지난해 수십 년 동안 방치되고 훼손된 남해안의 강제동원 유적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대학신문』 2015년 9월 14일 자)

최근엔 전문가들이 이들 국내 강제동원 유적에 대한 전수조사와 보존관리를 향후 과제로 제시했고 광주와 인천 부평구 등 일부 지자체에서 유적을 보존하려는 의미 있는 움직임도 일어났다. 강제동원 유적은 태평양전쟁 시기 연인원 782만명의 조선인이 일제에 의해 군인·노동자·위안부로 강제동원돼 인권을 유린당한 비극적 역사의 증거다.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되새기고 이러한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도 강제동원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우리에게 중요하다. 이에 『대학신문』은 현재 국내 강제동원 유적의 보존 실태를 살펴보고 앞으로의 보존 방향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국내 강제동원 유적, 훼손되거나 방치되거나

사실 국내 강제동원 유적의 대다수는 전문 연구자들에게조차 정확한 실태가 알려지지 못한 채 남아있다. 제주도 일대의 일본군 군사시설을 제외하고는 한반도 유적의 전체 현황은 온전히 파악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를 위한 강제동원 유적 전수조사는 조선총독부 통계, 당시 신문, 일본에서 입수한 도서 등의 문헌을 통해 조사지역을 설정한 뒤 현장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실태를 파악하는 두 과정으로 이뤄진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위원회’(지원위)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반도 지역에 총 7,467개소의 강제동원 작업장이 있었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대부분 추후 현장조사를 통한 검증이 없었고 군부대 등이 빠진 탄광, 공장 등 노무동원 작업장만을 목록화해 전수조사가 아닌 기초자료 확보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문화재청에서도 2013년부터 3년간 남해안과 대구·경북, 대전·충남 등 3개 권역에 대한 ‘아시아태평양전쟁 유적 일제조사’를 실시했으나 대상이 군사시설로만 한정됐고 조사지역에서 서울·경기·강원 지역은 빠졌다.

그나마 조사나 민간 연구를 통해 알려진 유적들은 대부분 방치돼 있다. 우선 강제동원 유적의 위치가 보통 일반주택지나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다. 지원위 자료에서 전체 노무동원 작업장 중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 탄광산(5,504개소)과 문화재청에서 조사한 군사시설물(667곳)의 경우가 그러하다. 대부분 도시 외곽에 있는 이러한 유적들은 지역사회의 관심이 닿기 어려워 관리되지 않고 있다. 지원위 조사1과 정혜경 과장은 “대중의 관심도 낮은데다가 보존 비용도 많이 들어가고 개인 소유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이곳을 박물관·기념관 같은 역사공간으로 보존하라고 권장하기도 쉽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들 강제동원 유적의 활용 가치에 대한 학술적 근거가 확보되지 않아 보존에 대한 지역사회의 공감대도 형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재청의 권역별 조사에 따르면 강제동원 유적 다수가 와인 저장고, 농작물 재배, 가축 사육 등 개인 용도로 이용되고 있다. 문화재청과 서울시가 상암동에 복원한 일본군 관사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은 식민지 유산을 둘러싼 뚜렷한 온도차를 보여줬다. 13억원을 들여 복원하고 문화재 등록까지 추진했던 이 건물을 지역민들은 ‘기분 나쁜’ 일제 잔재로 받아들였고 문화재 등록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강제동원 유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지자체는 현재 제주도를 제외하고 거의 없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유적들이 안전사고 위험에 노출되거나 도시재개발로 인해 훼손되지만 지자체의 관리 시스템은 부재한 실정이다. 문화재청 조사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유적 667곳의 보존 상태는 255곳이 ‘불량’, 139곳이 ‘소실’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 남구 용호동의 장자등 포진지의 경우 철근과 레일 등 돈이 될 만한 쇠붙이는 누군가 떼어가고 아파트 개발에 밀려 입구는 폐쇄됐다. 향토사학자 왕정문 씨는 “원형대로 있을 때 제발 관리 좀 하자고 했지만 아파트 공사를 하면서 포진지가 심하게 파손됐다”며 “지자체는 교육용으로 활용하자 말만 하지 보존 의지는 없다”며 비판했다. 일제 동굴진지 8곳과 남제주 비행기격납고 등 5곳이 문화재로 지정된 제주도는 일찌감치 유적 관리에 나선 전국에서 유일한 지자체다. 2008년~2009년 학술 및 측량조사를, 2010년부터 일제 군사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군사시설 등록문화재 신청과 함께 제주도를 ‘다크 투어리즘’ 관광지로 가꾸는 ‘제주평화대공원’ 사업을 추진했다.

비극적인 역사의 증거를 보존하기 위해

국내 강제동원 유적 보존 논의에 앞서 우선 전국 차원의 전수조사가 필수적이다. 정혜경 과장은 “한국의 경우 태평양전쟁 유적 현황을 파악하는 일은 시작됐다고 말하기 힘들다”며 “먼저 각 지역 문화원이나 문화재단을 중심으로 지역 단위의 현지 조사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는 문헌자료 분석, 일본의 태평양전쟁 유적과의 비교 등을 통해 전쟁 유적의 역사적 배경과 건축물의 특징 등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이후 보존 가치가 있는 유적에 대한 정밀조사, 전국 분포 현황 정리 작업 등도 뒤따라야 한다. 이렇게 확보된 유적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근거는 추후 유적 보존과 관련한 지역사회의 논의와 공감대 형성을 위한 토대가 된다.

메이지 근대유산을 유네스코에 등재하는 데 성공한 일본의 경우 일찍부터 태평양전쟁 유적 보존을 진행해왔다. 전쟁 유적과 유물을 연구하는 ‘전쟁고고학’이라는 분야가 1980년대부터 발달했다. 이 분야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전역의 전쟁 유적을 연구하고 보존하는 움직임이 일어난 결과 정부와 지자체 차원의 유적 전수조사가 이뤄졌다. 보존하기로 결정한 유적과 장소에 대한 문화콘텐츠 개발도 활발하다.

강제동원 유적에 대한 풍부한 실태조사와 학술연구가 이뤄질 때 비로소 유적 보존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될 가능성이 생긴다. 최근 인천 부평구 ‘삼릉마을’은 일제 시대 수많은 조선인들이 전쟁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동원됐던 미쓰비시 군수공장 사택이 있던 곳으로 부평의 근현대사를 증언하는 상징적인 유적이다. 그러나 지은 지 80년이 넘은 노후 주택이 대부분인 이 마을의 열악한 생활환경 때문에 부평구는 국토해양부에 도시재생사업을 신청했다. 이 지역에 대한 학술조사를 진행 중인 부평역사박물관 김정훈 학예연구사는 “구청도 주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선에서 이곳을 기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며 “우리는 혹시 사라질 수도 있는 역사의 흔적을 기록하는 최소한의 작업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역사회와 강제동원 유적의 필요성을 공유하려면 어떤 주체들의 노력이 필요할까. 현재 광주시교육청에서 진행 중인 ‘광주 역사공원 사업’은 유적에 대한 충분한 조사와 검토를 바탕으로 시민단체·연구자·지자체가 보존을 추진하는 드문 사례다. 2013년 광주 서구 화정4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부지 내에서 3개의 동굴이 발견됐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과 신주백 교수(연세대 국학연구원)는 이곳이 일제 강점기 광주비행장 부속시설인 유류저장소였다고 판단했고 이에 광주시교육청은 그 타당성을 확인했다. 이후 이곳에 관한 학술대회가 개최된 것을 계기로 동굴을 포함해 이 일대를 역사공원으로 조성하는 계획이 추진돼왔다. 관련 TF팀에 참여했던 정혜경 과장은 “유적의 역사적 의미를 앞세우지 말고 지역민과 지자체 등 관계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강제동원 유적의 전반적인 실태 개선을 위해선 중앙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기반으로 문화재 등록 추진 등 관리 대책이 이뤄져야 한다. 정혜경 과장은 “일본 정부는 전수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그 중 가치가 높은 것은 문화재로 등록하거나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나머지는 마을의 역사문화공간으로 활용을 하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의 권역별 조사 역시 정밀조사를 실시해 문화재 등록,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를 추진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다.

현재 일어나는 보존 움직임에서 중요한 것은 먼저 유적 보존의 학술적 근거를 풍부하게 확보하고 지역사회의 현실적 조건을 신중히 고려하는 각 주체들의 태도다. 역사 유적을 보호해야 한다는 당위를 앞세우는 태도는 지역사회의 공감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또 여전히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유적에 대한 실태조사도 시급하다. 정 과장은 “앞으로도 관련 정부 기관은 유적의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지자체와 공유해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국내 태평양전쟁 유적의 체계적인 관리·보존을 위한 첫걸음을 이제 막 뗀 지금, 강제동원 역사의 기억과 보존에 정부와 시민사회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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