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마지막 주, 이제 막 터지기 시작한 꽃망울들이 드디어 관악에도 봄이 왔음을 알리는 듯하다. 종이신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은 일간지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도라지’에는 『대학신문』이 며칠이고 수북이 쌓여 있었다. 그 중 한 부를 들고 집으로 가는 길에 찬찬히 읽어봤다. 『대학신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학과 대학생에 대한 내용들이 주를 이루되, 거기에만 치우치기보다는 사회 전반에 대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잘 다룬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기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1면 상단에 ‘큐이즈’의 찢어진 현수막에 반창고를 가득 붙여둔 사진이 실려 있었는데, 비슷한 주제인 ‘다양성위원회의 출범’이 바로 하단에 실려 있어 유기적으로 연결된 모양새가 좋았다. 하지만 큐이즈에 관련된 기사가 바로 뒷면 상단에 있는데 그에 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어 처음 1면만 읽었을 때는 의아하기도 했다. 지면이나 배치 상의 한계가 있더라도, 관련기사가 2면에 있다는 언급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샤대실록」에서 다루고 있는 ‘관악사 자치위원회 선거’ 논란의 경우, 좋은 만평이었으나 관련 주제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해 처음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몇 장을 더 넘겨 「포토뉴스」에서 내용을 확인하고 무엇을 다루려 했는지 알게 됐지만, 알려지지 않았을 뿐 정말 중요해 보이고 만평에서까지 다루고 있는 주제를 단지 몇 줄의 「포토뉴스」로만 설명한 것이 아쉬웠다. 다음 호에서는 좀 더 자세한 내용들이 알려졌으면 한다.

가장 아쉬움이 남던 기사는 바로 해외면의 ‘대만 타오팡 청년 주거문제’를 다룬 “‘헬대만’에서 신음하는 청년들, 주거에 빼앗긴 희망을 되찾다”였다. 기사에는 오랜 시간 자료를 조사하고 취재를 한 내용들이 차곡차곡 담겨 있었다. 서울대 구성원들 외에는 잘 읽지 않는 『대학신문』의 기사로만 남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가까운 나라에서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될 지도 모르는 청년문제를 다룬지라 내용이 흥미로웠고 질적으로 매우 훌륭해 시선을 잡아끌기 충분했다. 그러나 딱 하나, 배치가 아쉬웠다. 마지막장, 그것도 주요 기사들이 모두 끝나고 문예면의 사진들이나 행사 알림, 식단표 같은 소소한 생활 정보들이 소개된 이후에나 지면을 할당받아 시선을 끌기 어려워 보였다. 보통 일간지들이 맨 뒷장을 전면광고로 채우고 있어 필자 또한 19면까지 읽은 뒤 아주 자연스레 신문을 접어 넣으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좋은 기사들도 많았다. 우리가 왜 『대학신문』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매주 이를 읽어야 하는지 이유가 되는 기사라고도 할 수 있겠다. 『대학신문』1920호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기사는『대학신문』만이 다룰 수 있는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 ‘70주년 특집’과 ‘등록금 납부 방식’에 대한 취재였다. 각각 학내와 학외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란 차이는 있지만, 주 독자층인 학생과 서울대 구성원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내용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대학신문』의 정체성을 증명하는 기사라는 느낌을 받았다. 또 사회면의 특집 ‘청년 정치인의 현주소’의 경우 흥미로운 주제와 적절한 시의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는 점에서 후속 기사를 기대하게 했다.

예전만큼 큰 관심을 끌지 못하더라도, 『대학신문』은 묵묵히 하고 싶은 말, 해야 하는 말을 신문에 담고 있다. 아쉬운 점도 드문드문 있었지만 『대학신문』이 이를 보완해 계속 발전하리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종이신문 말고도 『인터넷 대학신문』을 통해 좋은 기사들을 여럿 접할 수 있지만 그에 대해서는 홍보가 미진한 것 같다. 종이로 보는 『대학신문』도 좋지만, 웹으로 언제든지 쉽게 기사를 검색하고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많은 학우들에게 알려지길, 또 이제 곧 만개할 꽃들처럼 『대학신문』도 새로운 봄을 맞이하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조정빈

언어학과‧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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