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5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카이스트, 포스텍 등 국내 이공계를 대표하는 5개 대학은 연구평가 시스템 개혁을 요구하는 공동선언문을 정부 관련 부처에 전달했다. 5개 대학은 선언문에서 “보다 선진화된 연구풍토를 위해서 현재 정량 중심의 평가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래창조과학부는 선언문 내용을 반영해 2017년부터 연구과제 선정·평가 때 연구자의 SCI(과학인용색인) 논문 수를 점수로 매겨 평가하는 방식을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연구과제 자체의 가치 등 질적, 정성적 평가를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정부의 연구평가 시스템에 대한 개혁 의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양적 평가 풍토로 인해 한국 과학기술계의 경쟁력이 질적 정체에 있다는 문제의식에 공감한 것이다. 정부는 연구기관을 평가할 때도 기관별 특성을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으며, 양적 평가 지표를 3개 이내로 줄이고, ‘창의·도전성 수준’과 ‘달성 과정·노력’ 등 정성적 지표를 중심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연구비의 60~80%을 정부에 의존하는 과학기술연구자들은 정부 평가방식에 쫓기다 보니 모험적 연구를 기피하고 2~3년 내 실적을 내는 데 집착하고 있었던 것이 현실이다. 대학들은 선언문에서 “우리나라 대학들은 지난 30여 년 동안 논문의 양과 대학평가순위가 비약적으로 좋아졌지만 정량적 연구실적은 정체 상태이며, 정성평가의 지표로 볼 수 있는 피인용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고 지적했다. 질적, 정성적 평가를 대폭 강화하는개선책이 시의적절한 까닭이다.

하지만 아직 미흡한 점도 많다. 질적 평가 항목에 ‘활용 가능성’을 넣은 것은 산업수요에 맞는 과학기술을 육성하겠다는 정부의 기조를 엿볼 수 있다. 창의적이고 도전적 시도가 요구되는 기초과학연구에 대한 연구지원비가 매우 적은 상황에서 이번 개선은 기초과학연구 진흥에 오히려 장애가 될 수 있다. 연구분야별로 다양한 특성이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적 기준으로 평가하는 것은 여전한 문제다.

정성적 평가기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정량적 평가와 달리 정성적 평가는 그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정량적 평가를 전면 폐지한다면 명확한 기준이 없는 평가가 객관적으로 이뤄져 지속적 성과로 이어질지 의문이다. 다양한 학계의 의견을 반영해 합리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연구풍토가 만들어질 수 있는 평가 제도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최근 중력파 발견, 알파고 쇼크 등 이슈에 맞춰 투자계획을 밝히는 정부의 연구지원 방식을 총체적으로 개혁하지 않고서는 미래성장 분야에서 외국에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때에 정부가 과학기술계의 요구에 맞춰 평가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이번 평가제도에도 장단점이 있는 만큼, 정부, 대학, 과학기술계 등 관련 구성원들은 우리 과학기술계가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연구풍토를 만들고 질적 도약을 할 수 있도록 평가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