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긍식 교수(법학전문대학원)

어릴 적부터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인재를 키워야 한다”는 말을 늘 들어왔다. 그래서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해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률을 자랑했고, 한동안 그 혜택을 누렸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고등교육의 부족이 아니라 ‘과잉’에 고민하고 있다. 고교 졸업생은 줄어들고 있지만, 그동안 지속적으로 늘어난 대입 정원 때문에 대학은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하고, 그래서 미리 대학구조조정으로 파국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대학 스스로 몸집을 줄이기에는 큰 힘이 들 것이고 결국 외부에서 강제할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는 당근과 채찍을 동원해 대학의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맞춤형으로 양성하는 ‘프라임사업’, 학부교육을 선도하는 대학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에이스사업’, 그리고 소외된 인문학의 역량을 강화시켜 대학의 균형발전을 추구하는 ‘코어사업’ 등 예전에는 보기 힘든 국가주도의 대형 대학구조조정이 물밀듯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이 사업들이 국가발전의 장기전략에 기반을 하고 있는지 또 그 전략이 정확한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자. 다만 다음 하나만 분명히 하자. 정책입안에 우리의 미래상,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에서 출발했는지?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인구론’(인문계 학생의 90%가 논다). 이 말은 지금 당장 우리 사회가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눈앞의 필요로 인문사회계를 대폭 줄이면, 한 세대 후의 삶은 어떻게 될까? 기계에 의존하는 물질적 풍요만으로는 우리는 물론 후손들도 만족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남의 틀로 우리의 문제를 보고 그들의 눈으로 해법을 찾을 것이고, 결국 우리의 어려움을 풀지 못할 것은 분명하다.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그리고 우리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학문 전 분야의 균형 있는 발전이 필요하다.

1997년 외환위기를 지식산업을 육성해 극복했다. 두뇌한국21(Brain Korea 21) 사업, 지방대학 역량강화를 위한 ‘누리 사업’으로 인재를 양성했다. 그때 공부를 한 연구자들은 대부분 학자로 활약을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지식산업은 기반부터 붕괴되고 있다. 최대의 수요처인 대학은 더 이상 연구자와 교육자가 필요 없다. 아니,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공공기관도 같은 처지다. 눈앞의 효율만 강조하는 정부의 시각에서는 연구자는 한갓 비용일 뿐 미래에 대한 투자는 결코 아니다.

대학에서는 미래의 학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것은 대학의 존재 이유며 의무다. 그러나 힘들여 공부한 학자들의 앞날은 너무나 어둡다. 학자로 자립한 후 안정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터전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제자들에게 장밋빛 미래를 얘기하며 공부만 하라고, 아니 공부하지 않는다고 꾸짖을 수 있을까?

나라의 미래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정부에 있다. 그러나 이를 방기하는 정부의 무능을 탓하며 이 뒤에 숨는 대학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우리 서울대는 개교 70년을 맞이한다. 20년 전의 표어는 ‘겨레와 함께 미래로’다. 이 정신은 지금까지 대학 구성원의 가슴 속에 여전히 남아 있다. 우리 대학이 ‘세계를 품고 겨레와 함께 미래’로 가기 위해서는 인재를 키우는 것을 넘어서 그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삶의 바탕을 일궈줘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우리 대학은 ‘기초학문육성’ 등 미래의 인재를 키우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모자란다. 이제 우리 대학 스스로 미래의 학자가 편안히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 나아가 세계의 인재를 품고 미래로 가야 한다. 정부가 하지 않는 것을 우리가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이 ‘민족의 대학’이라 자부하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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