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대한 박사과정(생명과학부)

지하철에서 의도치 않게 중년 남성들의 대화를 들었다. 세월호 이야기였다. 한 남성이 말했다. “나도 처음엔 아이들이 불쌍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반대야. 걔네들 놀러가다 사고 난 거잖아.”

벌써 2년이 흘렀다. 그때 나는 세상을 향한 분노로 씩씩대다가 내가 그 세상의 일부처럼 느껴져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분노, 증오, 슬픔, 절망, 자책, 무기력과 같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하지만 그 소용돌이 속에서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채 이 소용돌이가 잠잠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었다.

모든 것이 희미해질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은 2년이 지난 지금 결국 현실이 됐다. 이를테면 세월호 ‘사건’은 세월호 ‘사고’로 퇴화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눈먼 자들의 국가』에서 “사고는 ‘사실’과 관계하는, ‘처리’와 ‘복구’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건은 ‘진실’과 관계하는, ‘대면’과 ‘응답’의 대상이다.”라고 썼다. 2014년 4월, 세월호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분명 하나의 ‘사건’이었다.

고심 끝에 해경은 해체됐고 대통령은 국가 대개조를 선언했다. 국민안전처라는 조직도 생겼고 진통 끝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도 꾸려졌다. 그러나 그 이후엔 알다시피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권력자들의 강한 저항에 직면했다. 사람들이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자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을 모욕하는 온갖 프로파간다가 유포됐다. 그들은 세월호를 ‘사고’로 만들려 했고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이제 단원고 희생자들의 부모뻘 되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세월호는 놀러가다 일어난 교통사고가 되고 있다.

우리가 세월호를 누군가의 불운한 ‘사고’가 아닌 우리의 ‘사건’으로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우리가 사건 이전의 세계, 혹은 사고의 세계에 머무른다면 우리도 그와 같이 침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대면해야 할 세월호 사건의 진실은 이 공동체가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월호는 단순히 위험사회로서의 한국 사회를 투영할 뿐만 아니라, 그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병리적 상태를 드러내고 있다. 사회는 세월호의 고통을 공감하지도, 사건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반성하지도 못하고 있다. 이를테면 한 공동체의 이성과 감성이 모두 마비된 상태다. 어쩌면 한국 사회는 세월호 관련 인물 중 이준석 선장과 가장 닮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세월호 사건을 한 개인으로서 대면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이 질문 앞에서 느끼는 무기력함이다. 노란 리본을 다는 것은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그 무기력함에 맞서면서 기억의 침몰을 막는 작지만 어려운 실천이다. ‘사고’가 종결됐다고 믿는 이들에게 ‘사건’이 지속되고 있다고 반박하는 무언의 시위기 때문이다. 노란 리본을 달고 인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편한 시선을 견뎌내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노란 리본에 엮인 기억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공동체의 침몰을 막을 순 없지만, 이 기억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침몰할 것이다. 아직 세월호는 하나의 사고다. 세월호 사고가 마침내 세월호 사건이 되는 날까지, 나는 노란 리본을 떼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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