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속 몸짓하던 마임이스트가 말했다
침묵 속 몸짓하던 마임이스트가 말했다
  • 고유리 기자
  • 승인 2016.04.10 03: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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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

‘마임’하면 흔히 이런 것들을 떠올릴 것이다. 찰리 채플린처럼 익살스런 표정을 한 배우가 눈앞에 벽이 있는 것처럼 손으로 벽을 만지고 주먹으로 벽을 쾅쾅 두드리는 모습이나, 새내기라면 배우게 되는 ‘바위처럼’ ‘달려달려’ 같은 마임(몸짓)곡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여기 흔히 생각하는 그런 마임의 틀을 깨고 보다 넓은 마임 예술의 세계를 구축해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 마임 1세대이자 춘천마임축제를 최초로 기획한 사람, 마임이스트 유진규 씨를 만났다. 동그란 안경에 셔츠와 청바지까지 60대의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젊은 모습의 그는 마임을 하듯 부드럽고 다채로운 제스처를 섞어 가며 기자와 이야기를 나눴다.

▲ 유진규 씨는 "나는 다른 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며 "외계와의 조우를 주제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침묵의 독무대에 매료되다

그는 기자에게 찻잔을 주는 행동을 직접 표현하며 연습 과정을 설명했다. 그가 손잡이에 끼듯 손가락을 구부리고 어깨에서부터 힘을 주자 ‘투명 찻잔’을 들어 올리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잔을 입에 가져가 따뜻한 차 온도를 느끼고, 흘리지 않게 조심히 마시는 모습까지 보여준 그는 마치 아기가 행동을 배우는 것처럼 주위의 모든 대상을 처음 보듯 다루며 연습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떻게 처음 마임의 세계에 입문하게 됐을까.

Q. 1976년 마임을 시작하실 땐 한국사회에 마임이 잘 알려지지 않았잖아요? 마임을 처음에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그때 한국에서 열린 독일 마임이스트 롤프 샤레의 공연을 봤던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A. 고등학교 때였는데, 공연 광고에 쓰여 있는 ‘침묵의 독무대’라는 말에 딱 꽂힌 거야. 그때도 마임 하면 서커스 광대들, 찰리 채플린 같은 희극적인 광대들은 이미 있었지. 그런데 공연예술로서의 마임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건 처음이었어. 무작정 공연을 보러 가서 불이 꺼지자마자 복도 끝으로 뛰어 내려가서 맨 앞 바닥에 앉았어. 배우가 눈앞에서 아무 말 없이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무슨 이야기인지가 다 전달이 되는 거야. 사람들도 배우가 움직이면 박수치고 반응을 보여. 듣도 보도 못한 공연이었고 너무 신기했던 거지. 그게 처음 접한 마임의 세계였지.

Q. 그러면 이후에 어떻게 마임이스트의 길을 걷게 됐나요?

A. 공연예술로서의 마임을 가르치는 연극 극단에 들어갔어. 어릿광대가 아니라 고도의 신체 표현 방법, 그게 무엇이냐면 몸짓언어, 말하지 않으면서 내가 생각한 것을 그대로 표현해내는 팬터마임 기법을 가르치는 곳에 내가 들어갔던 거지.

Q. 마임을 직접 하시는 것은 보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었겠어요.

A. 생각대로 안 되지. 벽 짚기, 날아오는 나비 잡기 같이 이미 있는 마임은 열심히 보고 따라 하면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창작, 즉 보지도 듣지도 못한 이야기를 만드는 건 달라. 예를 들어 봄에 싹이 올라와서 꽃이 피는 걸 표현한다고 치면, 몸이 어떻게 꽃이 되고 싹이 되겠나. 그러니까 꽉 막혀서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거지. 몸으로 표현해야 할지 손으로 해야 할지, 상대가 싹으로 볼지 안 볼지까지 고민이 되는 거야.

Q. 그렇다면 몸으로 무엇인가를 표현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A. 마임은 벗은 몸 하나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몸 하나로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지. 흔히 말이나 글로만 생각과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몸만으로도 할 수 있다는 거야. 말과 글은 교육을 받아서 생긴 체계지만, 몸의 움직임의 세계는 배운 게 아니거든.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본질적인 것에 대한 접근이 마임이지.

 

홀로 선 무대 위 몸이 보여주는 치열함

극단에서의 훈련을 거쳐 그는 그 자신만의 ‘침묵의 독무대’를 만들어나갔다. 첫 창작 공연 1976년 작 ‘육체표현’은 어릿광대의 모습을 탈피해 있는 그대로의 몸을 보여준 최초의 시도였다. 이후 그는 공연의 틀을 벗어나는 실험적 시도도 주저하지 않았다. 1979년 ‘아름다운 사람’에선 공연하는 도중 공연장 밖에서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고 깨부쉈다. 여기엔 안정된 공간에서의 ‘재현’보다는 살아있는 ‘표현’을 만들고자 했던 그의 의도가 담겼다. 몸을 둘러싼 사회적 관념에도 주목해 ‘어루만지는 몸’ 등의 최근작에선 몸이 도구화되는 문제를 이야기했다.

Q. ‘마임을 안 하겠다’는 선언도 했습니다. 실제로 선생님의 실험적인 시도들은 마임이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내가 지금 배우고 생각하고 있는 건, 예술이라는 것은 보여지는 순간 이미 생명은 끝났다는 거야. 계속 새로워져야 하지.

Q. 앞으로 하려고 하는 새로운 마임은 어떤 모습인가요?

A. ‘우리의 몸이 정상적인 몸인가?’ 하는 반성적인 질문을 요즘 하고 있어.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서로 괴롭히고 군대에선 서로 물건 다루듯이 하고, 살아있는 사람의 몸을 생명체가 아닌 도구로 본다는 거야. 지난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작품은 대부분 현재에 있는 것들을 부정하면서 나와. 어, 이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사는 게 아닌데? 하는 스스로에 대한 부정, 주변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항상 작품이 나오고 예술이 나오는 것 같아.

▲ 길거리에서 맨발로 마임 공연을 펼치는 유진규 씨.

비워내는 몸짓의 가치를 깨닫다

20년 전 즈음 갑자기 찾아온 병은 그의 예술세계에 ‘비움’이라는 주제를 더하게 했다. 뇌종양 진단을 받은 그는 산속 절에 들어가 철학적 사유에 빠지는 시간을 보냈다. 병이 나은 뒤 자신의 사유를 바탕으로 창작한 그의 작품 ‘빈손’에서 그는 손에 들고 움직이던 긴 한지가 어느샌가 사라지고, 손바닥에 물을 담으려 하면 이내 밖으로 흘러나가 빈손만 남는 모습을 표현했다.

Q. 병을 얻고 나서 회복한 뒤 창작한 ‘빈손’이나 ‘방’ 연작에선 ‘비워내기’를 주제로 잡은 것처럼 보이는데요.

A. 절에서 편안하게 있으면서 산에도 갔다 왔다가 새벽에 예불도 하잖아. 그러면서 끊임없이 내 안의 무엇이 머리를 아프게 만들고 있나? 그 생각만 하는 거야. 그러다 깨달은 게 우리는 늘 무엇을 잡으려고 한단 말이야. 그런데 이걸 잡고 동시에 다른 것도 잡으려고 해. 저걸 잡으려면 들고 있던 걸 놓아야 잡을 수 있는데 다 움켜쥐려고 하잖아. 우리는 빈손이 될 때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빈 손’이야.

Q. ‘방’ 연작은 관객들이 설치물이 있는 방을 직접 지나다니며 예술가를 만난다는 점에서 조금 달라 보이는데요. 이 공연도 비워내기와, 또 마임과 연관이 있을까요?

A. 방 연작은 내가 보여주는 게 아니라 관객이 스스로 보게 하자는 거였어. 공연을 통해서 우리는 공연 자체가 아니라 결국 자기 자신을 느끼고 가는 거니까. (공연 장소에) 미로를 두고, 거기에 거울을 뒀어. 자기를 비춰보면 사람들은 깜짝 놀라. 갑자기 나타난 거울 속 사람이 자기 자신으로 안 보이고 “이게 누구야?” 한단 말이야. 하지만 그때 서서히 보면 자기 존재를 느끼게 되는 거지. 그것도 마임이냐고 물어보면 말 없는 움직임 속에서 자기 자신을 보는 거니까, 넓게 보면 마임의 범주에 들어 있지.

마임 축제를 여는 한국 마임의 아버지

유진규 씨는 ‘춘천마임축제’를 시작해 마임을 대중에게 알리고자 한 선봉장이기도 하다. 80년대 말 국내에 마임이스트가 5명뿐이던 시절 그는 마임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한국마임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마임 공연이 가득한 축제를 열었고, 이후 춘천으로 자리를 옮겨 세계 3대 마임축제로 꼽힐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Q. 마임 축제를 ‘난장’이라는 단어로 많이 설명했습니다. 왜 ‘난장’인지, 어떻게 미친 듯이 놀 수 있는 축제를 기획했는지 궁금합니다.

A. 축제의 정신은 밤을 지새우면서 미친 듯이 노는 거거든. 그때만큼은 모든 걸 털어내고 밤새도록 노는 거야. 그렇게 만들어낸 것이 ‘도깨비 난장’이지. 98년부터 시작했는데 밤을 새우는, 밤 9시에 시작해서 새벽 5시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이야. ‘아수라장’이라고 춘천 도심에서 물로 난장판을 만드는 것도 있어.

그는 혼자서 할 수 있고 격식이나 틀이 없어 ‘게릴라처럼 어디서나, 길에다 깡통 하나 놓고 할 수 있는 것’이 마임의 특징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대로 사람들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을 반대하는 도청 앞 길바닥에서도, 작은 콘서트가 열리는 소극장에서도 그의 예술을 볼 수 있다. 남들이 가지 않은 마임이라는 길을 과감히 선택하고, 치열한 고민 끝에 몸에 대한 사유를 담은 작품들을 만들어 온 마임이스트 유진규. ‘비움’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그가 앞으로 그의 마임세계를 또 어떻게 채워나갈지 기대해 본다.

유진규 씨는 “나는 다른 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며 “외계와의 조우를 주제로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위): 유승의 기자 july2207s@snu.kr

사진(아래) 제공: 유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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