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명주 사진부장

홍익대 페이스북에 올라온 ‘융합잠바'

예술계까지 번진 대학구조조정을 풍자

예술 전공도 취업률로 재단하고 있어

서로 다른 꿈들을 배려해야 하지 않을까

 

올해 만우절, 홍익대 미술대학 페이스북 페이지에 ‘융합’이라는 학교의 방침에 맞춰 (대대로 내려오는) 기존의 점퍼와 새로운 디자인의 점퍼를 반반 섞은 ‘문화창조융합프라임잠바’가 미술대학 단체 점퍼로 선정됐다는 글이 올라왔다. 취업을 못할 학생들이 걱정됐는지 기존의 전공들을 통폐합시키고 산업수요에 맞는 공과계열을 위주로 새로운 전공을 만드는 학교에 최대 300억까지 지원해주는 이른바 프라임사업을 풍자하는 글이었다. ‘와 홍익대 미대 회장 정말 재치있다!’ 고 생각하면서도 ‘엥? 이게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고등학교를 나와 홍익대 도예유리과를 다니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에게 홍익대도 프라임사업을 하냐고 물어보자마자 “배우고 싶은 것이 있고 꿈이 있어 피땀 흘려 학교에 왔더니 할 말이 많아진다”며 말을 꺼냈다. 최근 친구의 전공을 포함해 금속디자인, 목조형가구디자인과는 정원이 25명에서 19명으로 줄어들었고, 앞으로는 미술대학 정원이 30%가 줄어들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정원감축을 해서 남는 인원은 프라임사업으로 만들어지는 과에 배치하게 된다. 그렇게 홍익대에는 공대도 아니고, 미대도 아닌 애매모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홍익대 세종캠퍼스 조형예술과의 커리큘럼과 상당한 부분이 유사한 이상한 전공이 탄생하게 된다. 게다가 몇 달 만에 계획한 전공이 들어서기 위해 몇 년을 다닌 학생들의 수업을 줄여나가고 있어 홍익대 학생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곧 군대에 가는 이 친구는 수업이 없어지고 정원이 감축되고 있는 걸 보면서 혹시라도 군 복무 중 자신의 전공이 ‘공예과’로 뭉뚱그려질 것을 걱정했다.

비단 홍익대뿐만이 아니다. 프라임사업이 진행되기 전부터 예술계 학과들이 통폐합되거나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지난해 SNS를 뜨겁게 달군 ‘#saveKUFILM̓ 캠페인으로 유명 연예인과 학생들이 크게 반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률이 높지 않다는 이유로 건국대 영상학과와 영화학과가 ‘영화애니메이션학과’로 통합됐다. 만화가 지망생에겐 꿈의 학교인 세종대에서도 만화애니메이션과와 산업디자인과가 공대로 편입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화여대에선 프라임사업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근조 화환 시위가 이어졌다.

이렇게 예술 전공들이 자리를 잃고 있는 이유는 그들의 취업률이 낮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듯이 예술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취업뿐만이 아닌 자신만의 꿈을 갖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므로 애초에 예술계 전공은 취업률이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라에서는 취업률을 기준으로 학교를 평가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취업률이 낮은 예술 전공의 학과를 축소하거나 없애고 있다. 이제는 아예 ‘취업용 전공’을 만들기 위해 다른 전공들을 통폐합시키라고 권유하고 있다.

전국의 미대생들이 학창시절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그림을 그리고 손이 부르트도록 흙을 주무른 것은 취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밤낮으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을 몽땅 재료비로 써버리는 것 또한 취업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을 다루는 만화가, 최신 유행을 선도하는 패션디자이너,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회화 작가, 천만 관객에게 감동을 준 영화감독 등 저마다의 꿈이 다르다.

언젠가 “피카소가 언제 취직을 했느냐”는 말을 본 적이 있다. 나는 미술을 해오면서 사회,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예술가들이 취업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예술에까지 취업을 요구하고 순수예술교육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면 점차 우리나라 예술을 이끌어나갈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다.

음, 어쨌든. 진정 미술을 하려는 학생들의 암담한 미래가 걱정된다면 학과를 없애거나 새로 만드는 것이 답은 아니다. 이제는 알파고도 바둑을 두는 시대가 됐다고 해서 명지대 바둑학과를 인공지능바둑학과로 만드는 것이 이상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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