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부 조수지 기자

‘80년대 대학축제는 독재정권에 항거했던 대동의 장이었다.’ 당시 축제를 설명하는 이 한 줄에는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이 스며있었다. 독재정권하에서의 대학축제엔 언제나 독재정권에 위협적인 힘들이 흐르고 있었다. 때문에 70년사의 반절에 달하는 시간 동안 서울대 축제는 공권력으로부터의 간섭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서울대엔 운동권 간부급 학생들이 많았기 때문에 다른 대학에 비해 특히 탄압이 심하게 가해졌다. 행사의 내용이 바뀌기도, 강제로 규모가 축소되기도, 폐지되기도 했고 심지어는 행사를 주최한 학생이 어딘가로 끌려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학생들은 움츠러들기는커녕 ‘우리의’ 축제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어째서 학생들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축제를 지켜내려 했을까. “인식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는 행사를 경유해서 뿌리내리는 것”이라던 한 취재원의 말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사람이 모이는 장인 축제는 큰 힘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생각이 싹트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울대 축제에 가해졌던 독재정권의 탄압과 방해는 축제가 가진 큰 힘을 반증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의 대학 축제는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힘을 온전히 다 발휘하고 있을까.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이전과 달리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 학생들을 끌어 모으는 것만 해도 무척 어려운 일이 됐기 때문이다. 장을 필요로 하는 담론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착된 장이 있기 때문에 담론을 채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다른 대학의 경우 현실에 발맞춰 아예 주점을 세우고 연예인을 대거 초청해 높은 참여율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축제가 여전히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목소리를 일궈내려는 노력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이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회를 향해 계속 질문을 던지다 보면 대학을 벗어나 사회에 나가서 어떤 문제가 닥쳐왔을 때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는 연습이 될 수도 있다.

“사회에 나가면 개인이 바로 갑?을?병?정으로 포지셔닝 돼요. 학생들이 축제라는 장을 통해 미리 그런 문제를 고민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한 인문대 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누군가에겐 절로 흥이 나는 재미가, 눈요기가 될 만한 화려한 행사가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중에 돌아봤을 때 진정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될 것들은 어쩌면 그럴 듯했던 볼거리보다 소박하지만 치열했던 우리만의 고민들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축제라는 이름에 걸맞은 축제의 모습은 아마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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