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전 4월 28일, 대구 상인동 사거리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1년이 지났고, 참사 1주기 추모사는 “희생자들이 남긴 교훈을 새겨 다시는 이 같은 불행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로 시작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7년 후의 2월 18일, 이번에는 지하철 안에서 또다시 불길이 일었다. 1년이 지났고, 추모사는 “영령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로 시작됐다. 다시 10년 후의 4월 16일, 이번에는 진도 앞바다에서 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또다시 잊지 않겠다고, 기억하겠다고 외치고 있다. 다시는 이 같은 불행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외침은 매번 반복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본 기획에서는 근 20여 년 사이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세 참사의 추모현장을 카메라에 담아 과거의 참사들을 우리가 어떻게 추모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았다. 이를 통해 앞으로의 추모의 움직임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잊지 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4월 16일, 참사가 일어나고 두 번째로 돌아온 기일에는 어김없이 하늘이 흐렸다. 몇 방울씩 떨어지는 빗줄기 사이로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단 추모행렬은 단원구 시내를 한 바퀴 돌았다. 버스를 기다리던 행인들도,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던 주부들도 행진을 지켜보며 고개를 숙였고, 단원고등학교 정문 앞에 서있던 조문객들은 유가족들에게 하얀 꽃을 건넸다. 분향소는 발 디딜 틈없이 조문객들로 가득 찼고, 추모 열기는 빗줄기가 거세진 밤이 돼서도 식지 않았다. 잊지 않겠다는, 기억하겠다는 외침은 그렇게 계속해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 날이었구나.”

2월 18일, 대구 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발생한 방화사건이 3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지 정확히 13년이 되던 날이었지만, 중앙로역 개찰구 바로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을 찾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잠깐 시간이 뜨는 사람들, 약속시간에 늦는 친구를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간간히 그곳을 둘러봤을 뿐, 추모를 목적으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드물었다. 한국전쟁 이후 네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야기했던 사건의 13주기 추모식은 사건 발생 시각을 기리며 오전 9시 53분에 시작됐으나, 식이 끝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생들은 별 관심이 없죠. 자기들 태어나기도 전에 났던 사고니까.”

4월 28일, 상인동 가스폭발 사건은 1995년 지하 공사 도중 가스가 누출돼 폭발하며 등교 중이었던 학생 43명과 행인 58명을 비롯한 수백여 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다. 중앙로역에서 몇 정거장 떨어지지 않은 달서구 학산공원에 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제법 큰 규모의 위령탑이 있지만,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한 행인이 이 장소를 대구 지하철 사건을 추모하는 곳으로 착각하고 있을 정도로 그 인지도가 낮았다. 비석은 군데군데 녹이 슬어있었고 향로에는 향 대신 쓰레기와 나뭇가지들이 가득했다. 당시 등교 중이었던 학생이 많아 가장 피해가 컸던 영남중학교 안에도 추모공간이 마련돼 있었지만 지난해 리모델링을 거치며 시청각실이 그 자리에 대신 들어섰다.

 “관심이 멀어지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되고, 변하는 건 없어요.”

‘대구지하철참사 희생자대책위’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전재영 씨는 “참사의 책임자들은 문제의 본질적 해결책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참사 발생 초기에 집중된 대중의 관심을 최대한 빨리 희석시키기 위해 애쓰고, 그후엔 오히려 피해자 지원사업이나 사후방안을 유야무야하려 든다”고 말하며 그 예로 ‘1인 승무제’와 ‘소방방재청’을 제시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발생 당시 승무원의 미흡한 대응이 피해를 가중시킨 것으로 밝혀지자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지하철 1대당 승무원의 수를 늘리는 방안이 추진됐으나 경제적 사정을 핑계로 지연되다가 결국 흐지부지됐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은 대구 지하철 참사 이후 정부가 각종 재난을 직접 해결하겠다는 취지 하에 설립된 조직이지만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후 ‘국민안전처’라는 이름 하에 조직이 개편됐으나 이는 단순한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전 씨는 말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달라진 게 없어요. 지금도 그저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잖아요.”


 

“나를 비롯한 누구라도 당사자가 될 수 있다는 마음으로”

시간이 갈수록 관심이 옅어지는 사람들과 그것을 기다리고 있는 책임자들, 양쪽 모두에게서 참사는 그들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문제다. 그러나 방문객들이 직접 지하철 사고의 당사자가 돼볼 수 있는 ‘대구안전테마파크’에서 그것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의 문제로 다가온다. 실제로 운행되던 지하철의 차량을 개조해 만든 공간 안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지고 조명이 꺼진 상태에서 사람들은 역 밖으로 탈출해야 하는데, 진행자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이는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이곳을 가족과 함께 방문한 김병옥 씨는 “연기가 들어오니까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나도 어느 날 이런 사고를 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 그게 제일 무서웠고, 실제로 당한 당사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새삼 깨닫게 된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이곳에서는 소화기 사용법 및 응급처치법을 강의하거나 참사에 관한 사진전과 전시를 주최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형식으로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대구안전테마파크 정기승 관장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안전이고, 이러한 일들이 남의 일이 아닌 만큼 앞으로도 많은 분들이 참사를 추모하는 것에 꾸준하고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과거의 기억과 미래의 위험 사이에 서서”

우리는 쓰라린 과거를 기억하며 하얀 꽃을 영전에 바치고 추도사를 올린다. 죽은 사람을 생각하며 그리워한다는 뜻을 가진 단어 ‘추모’는 보통 그러한 행위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과거에 ‘당신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내’가 슬퍼하고 애도하겠다는 의미에만 멈춰 있어서는 안 된다. 과거의 시간 속에 멈춘 추모는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게 하지 못할 것이며, 우리는 또다시 새롭게 일어난 비극을 추모하게 될 것이다. 진정한 추모는 과거의 비극을 충분히 애도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의 미래에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주체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작지만 큰 한걸음으로부터 지속적인 관심과 실질적인 해결은 시작된다. 과거의 기억을 거울삼아 미래의 위험을 방지하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오늘날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1년이 지난 오늘,

왜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세월호의 이 추도사는 미래의 다른 누군가에 의해 인용되지 않기를 바라며.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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