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욱 박사과정

(정치외교학부 정치학전공)

한 연구자의 죽음은 각별히 기억될 필요가 있다. 여러 의문과 고민을 남기기 때문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었던 이탈리아 유학생 줄리오 레지니(Giulio Regeni)의 경우다. 지난 1월 그는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중동의 노동조합 및 사회운동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기 위해서 이집트로 현지 조사를 떠났다. 그러나 올해 2월 3일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서 레지니는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의 나이 28세였다.

안타깝게도 죽음을 둘러싼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부검 결과 그는 사망하기 몇 시간 전 극심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 정부는 레지니가 관광객을 노린 갱단에 의해 살해당했음을 주장한다. 그러나 이탈리아 정부는 이집트 보안당국이 그를 스파이로 간주해 고문을 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전형적인 고문 수법을 비롯해 노동운동에 관한 레지니의 비판적 연구에 이집트 정부가 민감하게 반응해왔다는 점, 이집트 당국이 통화기록 등 수사자료 공유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는 점은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에 유럽의회, 국제인권단체, 그리고 다수의 연구자들 또한 이집트 정부의 적극적인 수사 협조와 진상 규명을 강력히 요청하고 있다.

레지니의 죽음은 나에게 적어도 두 가지 고민과 그 접점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다. 첫째, 오늘날 연구자들이 위치해 있는 객관적 현실에 관한 것이다. 연구자들은 진공 속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모든 연구는 그것이 갖는 내적 가치와는 독립된 사회적 힘에 의해 장려되거나 저지된다. 즉 연구자들은 각종 권력과 갈등이 교차하는 공간 속에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힘겹게 발전시켜 나간다. 레지니의 사례에서처럼, 때로 이러한 사회적 힘은 국가의 탄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 연구자의 생명을 위협할지도 모른다. 따라서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 활동이 전개되는 공간의 물적 토대와 맥락을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두 번째 고민, 연구 행위의 주관적 의미와 연결된다. ‘진리 탐구’라는 목적의 숭고함과는 별개로, 모든 연구란 궁극적으로 연구자가 수행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연구자는 무언가를 알고자 도전하는가? 두터운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지 않고 그 너머를 고민하는 동기는 무엇인가? 이 점에서 나는 현지 조사를 떠나기 전 레지니의 심정을 상상해 보게 된다. 한편으로 그는, 현지 조사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연구 행위란 엄혹한 객관적 조건 속에서 내려지는 결단과 같은 것임을 직감했을지도 모른다. 지식의 폭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다름 아닌 용기가 필요하기에, 두려움을 머금은 채 한 발을 더 내딛었을 것이다.

불의의 사건으로 레지니는 자신의 연구를 완성시키지 못했다. 그러나 끝난 것은 아니다. 더 많은 과제와 고민이 남아있다. 그렇기에 한 연구자의 죽음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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