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인 협동조합 - ①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어제 본 영화부터 주말에 보러 갈 발레 공연까지. 다양한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예술인은 풍요로움을 이끄는 이들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당장의 창작 활동이 가로막힌 예술인들이 많다. 이에 손 놓고 있지만 않은 예술가들은 자구책으로 협동조합을 꾸려왔다. 노동조합처럼 투쟁이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고민하고 조합원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창작물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협동조합이 시작된 배경과 그들의 활동을 들어본다.

① 모두를위한극장 공졍영화협동조합 ② 자립음악생산조합 ③ 발레STP협동조합

----------------------------------------------------------------------------------------------------

‘나만 알고 싶은’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의 개봉일을 손꼽아 기다리던 A씨는 마침내 영화를 보러 인근 영화관을 찾아갔다. 하지만 상영시간표엔 대기업이 배급하는 영화들이 1시간 간격으로 배치돼 있고 보고 싶은 영화는 이른 아침이나 심야시간뿐. A씨는 결국 영화 관람을 포기하고 만다.

̒내가 보고 싶을 때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해주는 곳은 없을까?̓ 최근 독과점으로 얼룩진 영화계에서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생각이다. 이처럼 관객에게 제한된 선택지만 주어지는 한국 영화 시장의 현실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는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모극장)을 만나보았다.

 

영화인 모임에서 협동조합으로

모극장은 5명의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생들이 모여 불공정한 스태프 처우를 고민하는 스터디 모임에서 출발했다. 2011년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나리오 작가 고(故) 최고은 씨의 죽음을 계기로 영화인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모임을 만들게 된 것이다. 이는 감독으로서 또 스태프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5인의 영화인들 역시 피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김선미 프로그래머는 “(촬영 현장 스태프의 경우)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한 채 막노동에 가까운 밤샘작업을 이어가기 일쑤였고, 그렇게 힘들게 일해도 급여는 5~60만원에 불과했다”고 그들이 받던 처우를 이야기했다.

스터디 모임은 얼마 뒤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이 됐다. 마침 2012년 12월 1일 협동조합기본법이 제정된 것을 계기로 고민하고 공부하는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기 위해 협동조합을 세운 것이다. 영화계에 종사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좋아하는 청년들이 하나둘씩 모였고 2013년 5월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을 정식 등록했다.

회사가 아닌 협동조합이라는 형태로 조직을 꾸린 이유는 모두가 주체가 되는 평등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조합에서는 고용인-피고용인의 위계도 하달식 지시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 이를 보여주듯 조합원들은 ‘남남’ ‘썰’ 등 각자 별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홍보팀 박설아 마케터는 “영화인들의 공정한 처우를 위해 결성된 조직인 만큼 개개인의 의견을 평등하게 수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모극장을 통해서라면 어디든 극장이 될 수 있고 누구나 영화를 볼 수 있다.

모두에게 공정한 영화란

모든 영화인이 공정한 처우를 받게 되길 치열하게 고민하던 그들은 ‘공정영화’라는 자신들이 만든 개념을 넓혀갔다. 처음엔 관객에게 자신의 작품을 선보일 기회가 필요한 감독 몇 명이 모여 노트북으로 영화를 상영해주는 ‘랩톱영화제’를 여는 등 창작자의 입장에서 ‘왜 우리의 작품이 상영되지 않을까’를 고민했다. 하지만 곧 영화계를 불공정하게 만든 환경, 즉 영화 생태계 전반으로 생각을 확장했다. 김 선미 프로그래머는 “처음에는 영화인 처우개선 문제였는데 이제는 영화인들만을 위한 협동조합이 아닌 관객과 영화인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고민으로 점점 커졌다”고 말하며 “단지 창작자만의 욕심이 아니라 정말로 ‘모두를 위한 극장’이 돼야 함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들이 이야기하는 공정영화란 ‘제작자에게는 공정한 수익을, 관객에게는 공정한 관람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공정영화’를 실현하기 위해 모극장은 관객 맞춤형 상영회를 독자적으로 기획해왔다. 이들은 대형영화관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영화를 지역 주민들에게 상영해주기 위해 상영회의 주제나 성격도 철저히 소비자에게 맞춰 선정한다. 정기상영회 ‘시(SEE)사회’가 개최되는 ‘스페이스노아’는 벤처기업들을 위한 개방형 사무실로, 찾아오는 이들의 대다수는 일할 공간이 필요한 청년 사업가들이다. 이에 모극장은 상영회 주제를 사회적 기업, 노동 등으로 정하고 청년 사업가의 꿈과 현실을 보여주는 영화 등을 상영한다. 장터 ‘늘장’에서 금요일마다 개최되는 ‘늘씨네와 벗들’은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터라는 공간에 초점을 맞춰 인디밴드, 영화배우 등 다양한 분야의 게스트가 영화를 추천하며, 누구나 찾아와 자유롭게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누구나 보고 기획하는 영화제

모극장은 ‘팝업시네마’라는 플랫폼을 마련해 관객들에게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공동체 상영은 매우 쉬운 개념”이라고 설명한 김선미 프로그래머는 “함께 모여 영화를 보고 싶은 누구나 신청만 하면 보고 싶은 영화를 관람할 수 있다”며 문화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인근 영화관에서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다면, 팝업시네마 웹사이트에 접속해 그 영화를 고른 후 신청만 하면 영화가 ‘배송’된다. 마땅한 상영공간이 없다면 웹사이트를 통해 상영공간을 대여할 수도 있다. 팝업시네마는 최소 인원을 줄이고 그만큼 금액을 낮춰 관객들이 더욱 쉽게 공동체 상영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이들은 모두가 영화 상영을 기획하는 주체가 될 수 있길 바라며 ‘시민 프로그래머’를 양성하기도 한다. 김선미 프로그래머는 “시민 프로그래머 양성은 관객들이 스스로 공정한 영화 관람의 기회를 갖지 못하고 있다고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며 “서로 어떤 영화를 접해보고 싶은지, 보고 싶은 영화를 접하는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고 설명했다. 6주간의 교육 과정이 끝나면 그동안 영화를 ‘소비’해온 이들은 영화제나 상영회를 여는 ‘기획자’로서 활약하게 된다. 지난해 개인적인 추억이 담긴 90년대 영화들로 구성된 ‘90년대, 비디오 가게 회고전’, 올해엔 절망스런 현실을 당당히 마주하기 위한 ‘헬조선 영화’가 열렸다. 박 마케터는 “기획부터 작품 선정, 게스트 섭외, 수금까지 모두 시민 프로그래머의 손으로 이뤄진다”며 진정으로 모두를 위한 영화 상영의 과정을 설명했다.

모극장에 참여하는 영화인과 관객 각자의 관심은 조금씩 달라 보이지만 결국 공정함이 실현된 영화 생태계라는 지점에서 서로 만난다. “제작자에게는 공정한 수익을, 관객에게는 공정한 기회를”이라는 박 마케터의 말처럼 모극장은 모두의 영화를 위해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다.

 

사진제공: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