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스케치] 유성기업 규탄 전국금속노조 집회

▲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에 유성기업 노조 대의원 고 한광호 씨의 추모 분향소가 설치됐다.

3월 28일 서울대 중앙도서관 터널에 사회변혁노동자당 학생위원회 서울대분회 주도로 같은 달 17일 자살한 유성기업 노조 대의원 고(故) 한광호 추모 분향소가 설치됐다. 한 씨는 2011년 노사분쟁 이후 사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징계와 고소 등 탄압을 받았고, 이로 인해 우울증 고위험군으로 판정될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씨의 죽음에 대해 노조 측은 “사측의 노동탄압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입장인 반면 사측은 한 씨의 적은 정상근무일 수와 노모 부양 문제를 들어 자살 원인이 “개인 가정사나 개인적 사유”라는 입장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노조는 ‘노조파괴 중단, 책임자 처벌, 고인에 대한 사측의 사과’를 요구하며 각종 추모운동을 진행한데 이어 지난달 27일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노조파괴 범죄집단 유성기업 규탄! 한광호 열사투쟁 승리! 금속노동자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집회에는 유성기업 노조를 포함한 금속노조 조합원 1,300여 명이 모였다.

얇은 폴리스 라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노조가 대치한 긴장감이 팽팽한 가운데 집회가 열렸다. 집회 시작 전 조합원들은 한 씨를 추모하기 위해 묵념을 한 후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다. 한 씨를 추모하는 검은 깃발이 곳곳에서 펄럭였고 몇몇 조합원들은 한 씨의 영정을 품에 안으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후 조합원들이 한 씨를 추모하는 의미로 관을 옮기는 상징의식을 시도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면서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유성기업 조합원 1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갈등의 시작, 유성기업의 합의 불이행과 노조억압

사측에 대한 유성기업 조합원들의 투쟁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성기업은 지난 2009년 주간 연속 2교대제*와 월급제를 도입할 것을 유성기업 노조와 합의했다. 하지만 사측은 합의 내용을 시행하기로 약속한 2011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이에 유성기업 노조는 같은 해 쟁의를 시작했다. 2007년부터 잇따른 노동자들의 죽음이 장시간 야간 노동과 관련 있다고 판단한 유성기업 노조에게 교대제 시행은 생존권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이에 사측은 직장 폐쇄로 맞서며 용역 경비 업체를 고용해 쟁의를 하던 유성기업 노조 진압을 시도했다.

한 사업장 내에 여러 개의 노조가 존립할 수 있는 복수노조 제도가 같은 해 7월 시행되자 사측은 제2노조를 조직하고 제2노조와 기존 노조를 차별대우했다. 금속노조 함재규 부위원장은 “유성기업 영동지회 노조는 96.6%가 징계를 받은 반면 제2노조에서 징계 받은 사람은 단 3명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14일 금속노조가 제2노조를 상대로 제기한 노조설립 무효 확인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은 회사 주도로 설립이 이뤄져 “자주성, 독립성을 갖춘 노조로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제2노조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다시 조직된 사측 주도의 제3노조는 지난달 19일 고용노동부에 노조 설립을 신청했고 사측의 기존 노조 징계와 차별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지난달 27일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열린 금속노동자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다.

"사측 사과와 노조파괴 중단까지 투쟁 계속할 것"

이날 집회에선 한 씨의 죽음에 대한 사측의 사죄를 촉구하는 발언이 이어졌다. 조계종 사회노동위원으로 참여한 도철 스님은 한 씨의 죽음은 “타살이자 기업의 노조파괴와 노동자들에 대한 탄압에 저항하기 위한 마지막 선택”이라고 비판했다. 몸이 아픈 한 씨 노모는 육성 녹음을 통해 “유성기업은 빨리 노조랑 만나서 우리 아들 죽게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하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지속되는 사측의 노조에 대한 억압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민주노총 최종진 수석부위원장은 사측이 노조를 억압하고 있다며 “제2노조 설립이 어용노조로서 법원에서 반려되니 겉모습만 바꿔서 제3노조를 만들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유성기업 영동지회 김성민 지회장은 “유성기업 노동자들의 투쟁으로 제2노조를 무너뜨렸는데 사측의 노조파괴 프로그램은 아직까지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옥죄어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집회가 격화되자 경찰은 확성기를 통해 집회 중단과 해산 명령을 내렸고 노조 간부는 마이크를 들고 자체적으로 질서를 유지한다며 경찰 개입 중단을 요구했다. 양측은 주변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방송으로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마지막엔 노조가 사측을 규탄하는 스티커를 경찰 방패, 집기류에 붙이려 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하며 경찰과 노조 사이에 세워졌던 폴리스라인은 모두 쓰러졌다. 경찰은 노조를 방패로 밀며 캡사이신을 발포했고 조합원들은 바닥에 나뒹굴었다.

향후 투쟁 계획에 대해 김 영동지회장은 “우리 노동자들은 5년 동안 투쟁했고, 또 다른 5년 투쟁을 준비할 것”이라며 “5년 동안 임금 인상 한 푼 받지 못하고 월급 40만원(무노동 무임금 법칙으로 파업 시 삭감되어 받는 임금)과 상여금 100만원 받아가면서 서울로 올라올 것”이라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유성기업의 원청인 현대 아이에이치엘 노조 이명호 사무장은 “기성언론에 사측의 노조 파괴가 다뤄지지 않고 시민 관심도가 떨어지는 상황”과 “노조가 거리로 나서 얘기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의 현실”에 대해서 안타까워했다.

*2교대제: 24시간 공장이 가동되는 주야 맞교대 대신 2개 조가 심야를 제외한 시간대에 8시간씩 교대 근무하는 제도.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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