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중동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오랜 숙적인 미국과 이란이 올해 1월 전격적인 핵협상을 타결하고 이란에 대한 37년간의 경제제재가 해제됨으로써 중동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란 시장 개방은 세계경제는 물론 한국 경제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란은 세계 3위의 원유생산국에 세계 최대의천연가스와 우라늄광을 보유하고 있다. 중동 최대의 농산부국으로 인구 8,000만의 높은 생산성을 가진 페르시아 문명의 후예들이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가장 먼저 직접 이란을 방문했고 이란의 로하니 대통령은 해제 직후 프랑스로 달려가서 한꺼번에 118대의 항공기를 주문했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물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이란 방문도 조만간 이뤄질 전망이다. 이미 이란에 진출하고 있는 3,000여 개의 한국 기업들에게도 더할 수 없는 호재다.

올해로 한국 기업의 중동 진출은 43년을 맞는다. 그리고 다시 제2중동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고객가치와 그 문화에 대한 지독한 몰이해 상태에서 시장만 바라보고 달려가는 비즈니스 행태는 허구에 다름 아니다. 여전히 한국 사회를 관통하는 이슬람포비아와 그동안 ‘악의 축’ ‘테러지원국’으로 버려왔던 시장과 고객을 향한 억지 미소가 그들을 감동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1970~80년대 100만명 이상의 우리 근로자들이 뜨거운 열사의 중동에서 하루 3교대로 일하면서 땀흘려 외화를 벌어들였다. 그 결과 한국은 중진국 진입의 기회가 열렸고 경제발전의 단단한 원동력이 됐다. 그럼에도 OECD 국가 중에서 중동 지역에 대한 연구 축적이나 전문가 숫자, R&D 투자, 연구논문 수 등에서 최하위권에 맴돌고 있다. ‘돈만 벌고 치고 빠지는 임기응변식 비즈니스’는 더 이상 글로벌 시장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진정한 문화이해와 고객중심의 시장 관리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 21세기 비즈니스는 문화를 먹고 산다. 고객이 어떤 제품이나 브랜드에 끌리게 하려면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대장금 신드롬'과 한류열풍

다행히 중동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고마운 시장이다. 우리는 중동 지역에 갈 때마다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최고의 대접을 받을 때가 많다. 한류 열풍 덕분이다. 그들은 선뜻 이해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을 좋아한다. 케이팝(K-Pop)과 드라마를 중심으로 한식·태권도·축구·게임·한국어 사랑은 기본이고 한국인과 결혼하고 싶어 하는 대학생도 적지 않다. 나라마다 운영되는 ‘코리아 카페’(Korea Cafe)는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회원을 거느리며 중동 문화지도를 새롭게 그리고 있다.

이집트의 ‘겨울연가’ 열풍도 대단했지만 2007년 이란에서 방영된 ‘대장금’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했다. 정확도 부문에서 다소 오차는 있겠지만 6개월 평균 시청률이 90%에 이르렀을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대장금이 방영되던 날 밤, 내가 목격했던 테헤란 시내 풍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거의 모든 식당과 카페, 그리고 번화가 가전제품 전시관 앞은 온통 대장금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자동차도 거의 없었다.

‘대장금 신드롬’엔 일종의 문화적 배경이 숨어 있다. 궁궐 내에서 온갖 모함과 중상모략에 시달리면서도 최고 상궁 자리에 오르는 대장금의 드라마틱한 휴먼 스토리는 근대 서구 열강의 침략과 식민 지배로 수많은 침탈을 당해 온 중동 지역 이슬람인의 고통과 꽤 많이 닮아 있다. 중동인들은 대장금이 던지는 희망과 성공의 메시지에도 위안을 얻는다. 그들이 대장금을 보며 “이건 내 얘기야(This is my story)!”라고 외치는 건 그 때문이다.

대장금 같은 한국 사극은 전형적 권선징악 구도와 언뜻 히잡과 비슷해 보이는 극중 궁궐 의상도 이슬람 특유의 종교적 미풍양속과 조화를 이뤄 문화적 친근감을 준다.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광, 사계절이 뚜렷한 가운데 어디서나 계곡물이 흐르고 형형색색의 꽃과 나무가 만발한 경치도 중동인을 매료시킨다. ‘알라가 코란에서 약속하신 파라다이스나 유토피아가 바로 저런 곳 아닐까?’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아랍학자가 일찍이 고대 신라를 ‘동방의 유토피아’로 묘사하며 극찬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공주의 천년 사랑을 담은 쿠쉬나메라는 고대 이란 서사시가 발굴되어 학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이같은 한류 열풍은 곧바로 시장으로 투영된다. 실제로 중동 국가에선 휴대전화와 가전, 자동차 할 것 없이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제품이 단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지독한 한국 사랑이다. 중동 국가들은 한국이 필요로 하는 에너지 자원, 즉 석유·천연가스 등의 90% 이상을 안정적으로 공급해준다. 또 한국 기업이 해외에서 건설·플랜트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의 70% 이상은 중동 지역에서 나온다. 그러면서 상품도 한국산만 골라 사준다. 월드컵 같은 국제 스포츠대회에서 한국과 유럽 팀이 맞붙으면 중동인들은 으레 한국 팀을 응원한다.

그런데 최근 중동 사람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한국을 방문하곤 깜짝 놀란다. 한때 가난해 외화를 벌러 왔던 한국인들이 이제 자신들보다 훨씬 앞서 있는 현실 앞에서 질투 대신 축복을 보낸다. 자신들을 지배했던 서구 열강의 발전 모델은 따라가기 싫어하면서도 고유의 전통과 가치를 유지하며 첨단 기술 개발과 경제 발전에 성공한 한국의 발전 모델은 기꺼이 닮고 싶어 한다.

▲ 신라를 기록한 페르시아어 필사본 Ajaib(14세기) (사진 제공: 이희수 교수)

이슬람, '협력적 동반자'로 껴안아야

그렇다면 중동인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는 어떨까. 아랍과 이슬람, 아랍과 이란조차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이슬람=테러리스트’ 담론에 휩싸여 우리의 협력 파트너인 절대 다수 이슬람 주류 공동체를 적대시하는 구조적 모순을 겪고 있는 건 아닐까.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할랄단지 조성 사업이 이슬람 전파에 득이 되고 수십만의 무슬림들이 몰려온다는 비경제적 억지주장으로 무산돼 버리는 몰상식을 아직도 경험하고 있다. 중동·아랍인들은 한국이 좋다며 ‘코리아’ 브랜드를 찾고 한국말과 문화를 배우려 하는데 우린 왜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이제 서구 중심적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우리의 눈으로 중동인을 바라보고 그들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이슬람은 종교적 차원에서만 접하면 다소 불편한 이념 체계처럼 느껴진다. 일신교 자체가 기본적으로 선(善)과 악(惡)의 대결 구도이므로 다른 종교와 가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존하기가 쉽지 않은 속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이슬람의 문제는 종교적으로 풀기보다는 같고 다름의 문제인 문화로 접근해야 한다. 지구촌의 미래를 함께 짊어지고 갈, 생각이나 가치는 나와 좀 다르지만 더없이 필요한 이웃으로 바라보자는 얘기다.

이슬람 문화엔 무슬림들의 삶과 역사가 담겨 있다. 유럽 르네상스를 가능케 한 학문적 원동력이 된 것도 이슬람 문화다. 따라서 무슬림들을 좀 더 잘 알려면 우선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이해가 따라야 한다. 다시 말해 중동을 ‘테러와 전쟁으로 얼룩진 곳’이 아니라 ‘인류의 오랜 문명과 깊은 영성이 발아되고 뿌리 내린 본향’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중동과 이슬람 세계를 서구의 시선이 아닌 우리 눈으로 우리 국익으로 들여다보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 제2중동붐 시대 고객가치를 창출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접근일 것이다.

▲ 이희수 교수(한양대 문화인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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