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한 편] 「동주」 영화평론

윤동주는 1941년 12월에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고 1942년 3월에 한국을 떠나 4월 2일에 도쿄 릿쿄(立敎)대학에 입학한다. 그러나 한 학기만을 다닌 후 사촌 송몽규가 있던 교토로 옮겨서 10월 1일자로 도시샤(東志社)대학에 편입하게 된다. 이듬해인 1943년 7월에 송몽규와 함께 체포됐으니 그가 일본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보낸 시간은 불과 15개월 정도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에게 이 15개월은 베일에 싸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어떤 이유와 경로로 “재(在)교토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그룹에 가담”(일본 측 자료)했다는 혐의를 받을 만큼 ‘불온한’ 움직임들에 가까이 접근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조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도쿄에 머물던 당시 친구 강처중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다섯 편의 시뿐이다.

그래서 윤동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조심스럽다. 그의 죽음, 그것의 맥락과 본질을 확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말 부분이 불완전한 초고로만 남아 있는 미완성 장편소설을 대신 완성하는(혹은 왜곡하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영화 「동주」는 그 어려운 일에 도전했고 섬세한 결과물을 생산해냈다. 그래서 나는 한 달 전에 일단 이렇게 적어두었다. “신연식의 각본과 이준익의 연출은 훌륭했다. 일본 도착 이후 체포될 때까지의 시기에 대해서라면, 사실 관계는 거의 밝혀져 있지만 그의 내면 공간이 어떠했는지는 미지로 남아 있는데, 이 영화는 그 시기 그의 내면에 깊이 있는 주석을 다는 데 성공했다.”(「한겨레」2016년 4월 2일) 다시 엄밀히 적자면 ‘주석’이 아니라 ‘해석’이라고 써야 맞겠다. 새로운 사실을 발굴한 것이 아니라 상상력을 발휘해 텍스트를 다시 쓴 사례이기 때문이다.

정합적이고 깊이 있는 해석을 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는 한 해석자를 다른 해석자와 구별되게 하는 하나의 ‘관점’이다. 「동주」의 관점은 ‘윤동주를 그의 사촌 송몽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동주를 취조하는 일본 형사가 처음부터 따져 묻고 있는 것은 동주와 몽규의 관계이며 이것은 이 영화가 스스로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송몽규를 언제부터 알고 지냈지?”라는 형사의 물음과 함께 과거 시제의 본론이 시작되도록 편집한 것은 자연스러운데, 이는 이 영화 전체가 저 형사의 질문에 대한 동주의 긴 답변일 수 있다는 뜻이 된다. 동주는 자기에게 몽규가 어떤 존재인가를 되짚다가 자기가 누구인지 또렷이 알게 될 것이다. 닮은 두 존재가 나란히 서 있을 때 오히려 각자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사례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이 영화의 서사적 흐름은 동주가 몽규에게 느끼는 감정의 굴곡을 따라 곡선을 그린다. 북간도 용정에서 광명(光明) 중학을 다니던 때의 윤동주가 송몽규의 신춘문예 당선소식을 함께 듣는 시점(1935년 1월 1일 전후로 추정되는)에서 본론이 시작될 때 역사적 현실과 예술의 가치에 대한 두 사람의 견해차는 아직 잠재적인 상태로 머물러 있다. 그러다가 연희전문학교에 함께 진학해 친구들과 문예지를 만들 무렵(1938년 이후) 둘의 입장 차이는 표면화돼 충돌이 벌어진다. 둘의 갈등은 이를테면 ‘산문적 인간’과 ‘시적 인간’의 갈등이라고 할 만한 것이다. 몽규의 관심은 메시지의 효율적 전달을 통한 행동에의 촉구에 있고, 동주의 관심은 문학을 통한 인간 내면의 표현과 더 깊은 차원의 소통 가능성에 있다. 전자에게 후자는 나약해 보이고 후자에게 전자는 편협해 보인다.

여기까지는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저 둘의 갈등은, 일제강점기는 물론이요 어쩌면 지금까지도 진행 중인, 오래된 예술 논쟁의 소박한 판본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이 영화가 훌쩍 깊어지는 것은 일본 유학 이후(1942년 봄) 시절을 다루면서다. ‘베일에 싸인’ 그 시기에 동주가 일본 군국주의자들로부터 겪은 물리적 폭력과 그로 인한 고뇌를 격렬하게 보여주고(그가 교련 교육을 거부해 강제로 삭발당하는 장면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개연성 있는 추정에 해당한다), 그가 인간적 존엄을 지켜내기 위해서 산문적 현실 속으로 개입(commitment)해 들어갈 것을 결심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여줄 때 「동주」는 섬세하면서 과감하다. 도쿄의 동주가 교토의 몽규 앞에 나타나서 “조선인 학생들을 규합하자”라고 말하는 순간 둘 사이의 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워져 있다.

어쩌면 둘의 거리를 제로로 만들면서 끝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동주와 몽규는 같은 감옥에서 함께 죽었으므로. 그러나 이 영화는, 이 영화의 가장 성공적인 후반부 장면들에서, 둘의 사이의 거리를 다시 한 번 벌려 놓는다. 몽규가 유학생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집을 나설 준비를 할 때, 동주는 동주의 영어판 시집 출간을 위해 애쓰던 여성 쿠미의 전화를 받는다. 이 의미심장한 엇갈림 이후에 나오는 더 흥미로운 장면은, 동료들 앞에서 열정적인 연설을 하는 몽규에게 일본 형사들이 들이닥치는 과정과 교토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쿠미가 건 전화를 받는 동주의 모습을 엇갈리게 편집한 대목인데, 여기서 전화를 들고 있는 동주의 뒷모습은 마치 동료를 고발하고 있는 배신자의 등처럼 보인다. 배신자란 본래 ‘등을 돌리는 자’가 아닌가. ‘마치 배신자라도 된 것 같다’고 느끼는 동주의 내면을 표현한 연출일 것이다.

이어지는 것은 고향으로 도망치자는 몽규의 제안을 동주가 거부하는 장면이다. 자신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동주는 쿠미를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쿠미의 호출(calling)은 동주의 소명(calling)이 시를 쓰는 데 있음을 알려주는 사건이라면, 몽규를 향한 동주의 “안 돼”는 그가 자신의 본질이 ‘투사’가 아니라 ‘시인’임을 인정하는 말일 것이다. 이제 확연해진다. 몽규는 몽규이고 동주는 동주라는 것. 감옥에서 진술서에 서명하기를 강요당하는 장면을 보여줄 때 이 영화는 다시 한 번 동주와 몽규를 교차 편집하면서 둘의 다른 선택(몽규는 서명하고 동주는 거부한다)을 보여주지만,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둘의 차이가 아니라 공통점이다. 부끄럽다는 것. 몽규와 동주는 서로 다른 이유를 말하며 함께 부끄럽다고 말한다. 둘 사이의 거리는 다시 아주 가까워진다. 투사건 시인이건, 식민지의 청년들은 그렇게 부끄러워하며 죽어갔다.

「동주」가 윤동주를 송몽규와의 관계 속에서 이해하려는 영화이고, 두 사람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고 넓히는 일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고 간다는 생각을 적었다. 아직 하지 않고 남겨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울지 않았다는 것. 「동주」는 내가 울 만한 요소를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는 영화였으므로, 엔딩 크레디트가 다 올라갈 때까지, 나는 내가 왜 울지 못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야 했다. 그 한 가지 답은 ‘흑백’에 있었다. 역사적 사실성을 높이기 위해 사용했을 흑백이 오히려 나에게는 이 영화에 완전히 몰입하는 것을 방해하는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 이 영화의 흑백에는 묘한 인공성이 있다. 이 흑백은 깨끗했고 아련했으며 그래서 아름다웠다. 이 사실이 뜻하는 바는 단순하지 않다. 어쩌면 「동주」의 흥행 성공이 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어째서 그런가.

영화「동주」의 메시지를 하나의 말로 함축한다면 역시 진정성(authenticity)이어야 할 것 같다. 이 영화에서 동주는 제 삶이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부합하는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그와 같은 삶의 형식이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내내 괴로워한다. ‘진정성’에 대한, 즉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나) 진실한 삶에 대한 이 고민은 ‘속물성’이 지배하는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점점 잃어가고/잊어가고 있는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지도 오래됐는데(김홍중, 『마음의 사회학』참조), 말 그대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한 윤동주의 그 예외적인 삶은 우리의 오늘을 비춰볼 수 있는 거울로서 너무도 적절해 보인다. 그리고 여기에는 ‘요절’이라는 삶의 형식과 ‘시’라는 문학의 형식이 진실과 특권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는 사회적 통념도 가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정성의 화신’인 윤동주의 삶에 감동받으며 우리가 망실해버린 고귀한 가치를 비로소 다시 생각하기 시작한 것일까? 그럴 수 있으려면 이 영화의 물음이 우리시대의 것이자 또 나의 것으로 육박해 와야 할 것이고, 또 그럴 때 느껴지는 것은 감동만이 아니라 고통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가 우리에게서 너무 멀다. 그 시대는 공간적으로 말하면 일종의 역사적 유적지다. 나는 이 영화의 깨끗하고 아련했던 ‘흑백’이, 제작진의 의도와는 다르게, 마치 액자처럼 윤동주를 과거의 시간 속에서 방부 처리하는 데 기여했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시대의 고통으로부터는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안심하고 감동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정성에 대해 고통스럽게 사유하는, 시인이 주인공인 또 하나의 영화 「시」(이창동 감독, 2010)가 「동주」와는 달리 흥행에 참패한 것도 그래서일까.

그러고 보면 윤동주 시집을 1948년 초판본 그대로 복원한, 그래서 읽기에도 어려운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기이한 현상도 실은 이해할 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적지를 관광하고 돌아올 때 우리 손에는 언제나 기념품이 들려 있기 마련이니까.

▲ 신형철 (문학평론가, 조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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