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개교 70주년 - 서울대의 학회

1950년대 서울대에 학회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이래, 학생들은 학회에서의 자율적인 독서, 토론, 세미나 등을 통해 정규 과목에서 얻을 수 있는 것과는 또 다른 지식을 쌓아왔다. 공동의 문제의식을 고민할 수 있는 학술의 장으로 기능하던 서울대의 학회 문화는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사회상을 반영하며 그 모습을 바꿔오기도 했다. 극심한 정치적 억압을 겪었던 1970년대, 민주화 물결이 도래한 이후의 1990년대, 개국 이래 최대의 취업난을 겪고 있는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학회는 우리 사회와 함께 변화해왔다. 이에 『대학신문』은 서울대 개교 70주년을 맞아 서울대 학회 문화의 변천을 되돌아본다.

 

학회의 시작, 사회 참여와 학생운동의 토대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학회가 모습을 드러낸 시기는 195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당시 학회들은 각 단과대를 중심으로 조직돼 순수하게 학술적인 성격을 띠었으며, 국어국문학회, 물리학연구회, 교육학회, 이론경제연구회 등 전형적인 학문 분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주제를 공부하는 학회가 대부분이었다.

학회가 정치적, 이념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했던 것은 197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였다. 군사정권에 대한 저항의 의지와 민주화를 향한 열망은 학생들 간의 강력한 구심점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사회참여적인 학회가 여럿 생겨났다. 이런 학회들은 당시 허용되지 않았던 『전태일 평전』, 『전환시대의 논리』,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국내에 들어오지 않는 마르크시즘 서적 등 독재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논조의 저서와 좌파 이론서들을 통해 정치사상을 학습하며 학생운동의 근간을 구성했다. 그러나 당시 독재정권 하에서는 이런 이념학회들이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회들은 대학 본부에 등록되지 않은 채 비공식적으로 활동하며 해체와 결성을 반복해야 했다.(『대학신문』 2005년 5월 23일 자) 여성주의학회 ‘달’ 회장 강동혁 씨(사회학과·14)는 “과거에는 학회가 학생운동을 위한 조직원을 모집하는 통로로서 기능하기도 했고, 학회와 학생운동 조직 활동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이 많았다고 들었다”며 당시 학회와 학생운동의 관계를 설명했다.

굳이 ‘운동권’에 속한 학회가 아니더라도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중반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부분의 학회는 상당히 사회참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학생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학회들 역시, 당시 억압적인 사회 상황 속에서 반유신, 반독재투쟁의 영향을 크게 받아 활발한 학회 활동을 이어갔다는 것이다. 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과)는 기고에서 “늦가을에 터진 학내 시위로 무려 20여 일간 휴교령이 내려지는가 하면 뒤이어 벌어진 시위로 동기들이 여럿 제적되고 구속됐던 사태는 큰 충격이었다”며 “바로 이런 충격이 나로 하여금 정규과정의 학업이 아닌 세미나에 빠져들게 만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대학신문』 2005년 5월 23일 자)

 

민주화 이후, 대학생활의 근간으로서의 학회

1987년 민주화선언과 직선제 개헌,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하면서 학회의 성격은 또다시 한번 크게 바뀌었다. 학생운동을 중심으로 한 이전과 같은 강력한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학회의 정치적, 이념적 색은 다소 옅어졌기 때문이다. 김주형 교수(정치외교학부, 정치학과·96졸)는 “확실히 90년대에는 예전 80년대처럼 굉장히 강한 운동 지향성이 없었고, 학회의 응집력이나 에너지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며 “당시 선배들도 ‘왜 예전처럼 활발하게 학회가 안 되냐’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1990년대의 학회는 공동의 문제의식에 대한 학술적 고민의 장으로 충실히 기능했다. 단과대 내 소규모 학회들은 대체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하며 학술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정치학과 소속 학회 '지평'에서 활동했던 김주형 교수는 “당시 정치학과나 국사학과 수업에서 현대사가 등장할 때면 여전히 최근의 얘기를 다루기 조심스러워했다”며 “이 때문에 학교 커리큘럼에서 소화가 안 되거나 아쉽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해소하기 위해 좌파적 시각의 한국현대사나 노동운동사를 공부했다”고 설명했다. 또 당시 학회는 학생들에게 소속감을 제공하며 대학생활의 기반으로서 큰 존재감을 갖고 있었다. 김주형 교수는 “당시에는 다른 동아리를 하는 학생들도 많지 않았고, 학회가 1차적인 소속감을 주는 집단이었다”며 “과에서 무슨 행사를 해도 대부분 학회 대항으로 진행했다”고 말했다.

 

오늘날, 정치성의 빈자리를 메운 다양성

1990년대에 이르러 약해졌던 학생사회 내의 정치적 공감대는 시간이 흐르며 더욱 빠르게 와해됐다. 2000년대에는 학생회 선거에 비운동권 선본이 출마하는 일이 당연시되기 시작했고, 학생운동이라는 구심점에서 벗어난 학생사회는 더 이상 대다수의 학생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자연스레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학회 문화도 보다 다양화됐다.

사회참여적 학회의 기반을 이루던 단과대 과·반 소속 소규모 학회들은 오늘날 학회 자체가 사라지거나, 학술 활동이 비활성화되며 친목도모를 위한 단체로 변화했다. 영어영문학과 소속 학회 '온음'은 지난 2014년 활동을 마지막으로 해체됐다.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학회들도 활동이 저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세미나는 학회에 따라 많으면 한 달에 한 번, 적으면 한 학기에 한 번 개최되고 있는 실정인데, 199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학회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세미나를 개최했음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저조한 수치다. 일치단결반 소속 학회 '지평' 회장 안준 씨(정치외교학부·15)는 “현재 과·반 학회는 친목도모의 성격이 확실히 크다”며 “많은 경우 투어링 세미나도 엠티의 성격으로 변질되고 학술활동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사회 변화를 모색하던 학회의 사회참여적 성격은 2010년대에 들어서 거의 사라지게 됐다. 설립 당시 강한 사회참여적 성격을 띠고 학생운동의 근간으로 역할 했던 학회들이 현재는 특별한 사회적 성격 없이 개인의 학술적 호기심을 충족하는 학회로 바뀐 경우도 볼 수 있다. '총문학연구회' 회장 김시온 씨(경영학과·10)는 “총문학연구회가 출범 당시에는 운동권이었고, ‘총’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이유”라며 “하지만 지금은 (운동의 색채가) 완전히 탈색됐다”고 설명했다. 현재 총문학연구회 회원들은 관심 가는 문학작품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1975년에 운동권 학회로서 출범했던 '고전연구회'도 총문학연구회와 비슷한 경우다. 고전연구회 회장 손승연 씨(치의학과·15)는 “굳이 사회적 의미를 찾지 않더라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개인적인 차원의 활동을 하는 것 역시 충분히 유의미하다고 생각한다”며 오늘날 학회 활동을 평가했다.

학생운동이라는 거대한 공동의 관심사가 사라지면서 학생들의 관심사와 학회가 다루는 분야가 다양해졌다. 일례로 새로운 학문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생기면서 범죄학을 공부하는 '범죄학회', 중동에 대해 공부하는 학회 '알파나르' 등이 생겨났다. 범죄학회 회장 김상오 씨(자유전공학부·12)는 “지금 학교에는 범죄학만을 제대로 다루는 수업은 없다”며 “범죄학에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공부해보기 위해 모였다”고 설명했다. 또 학술적인 목적에서 시작됐던 학회가 현재는 그 활동 범위를 넓혀 동아리의 성격을 띠게 된 경우도 있다. 영화제작 동아리 '얄라셩' 회장 한슬기 씨(서양화과·14)는 “1979년 얄라셩이 시작될 당시에는 영상매체가 사회에 대해 발언이나 기능을 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영화 매체를 연구하려는 목적이었다”며 “그러나 지금은 학술적인 연구보다는 경험적으로 영화를 직접 찍어보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근래에는 취업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취업에 도움을 주는 경력을 쌓는 학회들이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경영대 소속 학회들을 꼽을 수 있다. 재무, 경영전략, 회계 등 구체적인 경영학의 분과에 대해 공부하는 이 학회들은 공통적으로 매우 밀도 있고 강도 높은 활동을 통해 해당 분야에 대한 구체적 지식과 경험을 습득한다. 학회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은 대체로 발표물을 만들고 세미나를 진행하기 위해 일주일 중 5일 정도 모임을 갖는다. 재무 학회 'FCRC'의 경우 모든 발표를 영어로 진행하는데 이에 대해 회장 정성보 씨(경영학과·09)는 “영어를 보완해서 경쟁력을 갖추자는 취지에서 영어로 공부하게 됐다”고 밝혔다. 또 이런 학회 활동이 실제 취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경영전략학회 'MCSA' 전(前) 리크루팅 팀장 권민석 씨(경영학과·11)는 “현업에 종사하는 학회 출신 선배들로부터 조언도 받을 수 있고, 실제로 스타트업 쪽은 채용을 건너건너하기 때문에 선배들로부터 인턴 자리를 받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여전히 학회는 계속된다

순수하게 학술적인 학회에서 사회참여적인 학회를 거쳐 오늘날 보다 다양해진 학회까지, 서울대의 학회는 사회의 흐름에 맞춰 다양한 변화를 겪어왔다. 취미 동아리나 대외활동 등 새로운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다양한 통로가 열리면서 오늘날 학회 활동 자체가 주춤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변화에 대해 김주형 교수는 “학회 문화가 큰 틀에서 사회 변화와 맥을 같이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학생들이 실용적인 활동을 찾아간다고 해서 그를 옳다, 그르다 평가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MCSA 회장 박진영 씨(불어불문학과·12)도 마찬가지로 “학회가 좋은 건데 왜 안하냐고 학생들을 탓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1학년 때부터 모두 여유가 없는 상황이고, 어떤 유인이 없는 상황에서 낭만으로 뭘 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반면 학회 문화의 변화로 인해 공동의 문제의식을 고민할 수 있는 장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강동혁 씨는 “꼭 80년대처럼 ‘학생들끼리 운동을 해야 한다’ 까지는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공동의 문제의식을 만들어나갈 필요는 있다”며 학회의 침체에 우려를 표했다. 권민석 씨는 “사회적인 문제에 대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가치관을 정립해보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기회가 사라지는 모습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고 의견을 같이 했다.

그러나 70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변하지 않은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지식이 고픈 학생들이 스스로 그 지식을 탐구하고 쌓아가는 학회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1970년대 학회에서는 금지된 좌파 서적을 탐독했다면, 오늘날 학회에서는 정규수업에서 다 담을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학문을 공부하고 있다. 김상오 씨는 “현재 범죄학은 쉽게 공부하기 어려운 학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혼자 공부하지 않고 다른 사람 의견을 듣고 토론한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관악의 학회는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생겨나기도 하면서 학문에 목마른 학생들을 여전히 반기고 있다. 학회의 모습은 사회를 반영하며 변화해왔고, 또 앞으로도 변화하겠지만 지식을 향해 항해하는 관악의 열정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