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 길 위에서
다시 그 길 위에서
  • 정유진 기자
  • 승인 2016.05.15 03: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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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결국 대다수는 어딘가로 ‘가기 위해서’ 길을 걷는다. 길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되지 못하기에, 원하는 장소로 가기 위한 수단이기에 순간마다 쉽게 지나치게 된다. 하지만 전국 구석구석에는 단순히 목적지까지 가기 위한 통로의 역할에 그치는 것이 아닌, 자신만의 이야기를 머금은 길들이 존재한다. 근현대의 역사가 이뤄졌던 길 위에 그 흔적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대학신문』이 다녀왔다.

경기도 시흥시 갯골길(늠내길)

생소하게 들릴 수 있는 ‘갯골’이란 단어는 ‘갯고랑’의 줄임말로, 바닷물이 갯벌 위를 흐르며 생기는 물길을 말한다. 갯골은 보통 바닷가 근처에 있으며, 갯벌과 같은 진흙색으로 희미하게 남은 얕은 물길인 경우가 대다수다.

하지만 경기도 시흥시에 위치한 내만갯골은 갈대밭에 둘러싸여 있고 그 폭이 넓어 언뜻 보면 강처럼 보일 정도다. 내륙 깊이까지 난 갯골을 통해 바닷물이 들어오고, 1934년 일제는 이러한 지형적 특성을 이용해 갯골을 따라 그 양편으로 145만평 규모의 소래염전을 조성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생산되는 소금은 우리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거대한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의 상당 부분은 일본으로 반출돼 화약 제조용 군수품으로 사용됐던 것이다. 이 소래염전은 국내 최초의 천일제염 생산지이며, 한때 전국 소금 생산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번성했다. 하지만 저렴한 외국산 소금이 수입됨에 따라 채산성이 떨어져 1996년에 폐염전이 됐다.

시흥시청은 소금창고가 남아있는 폐염전 주위에 옛 염전의 일부를 복원해 갯골생태공원으로 개발했고, 갯골 주변을 따라 걷는 길인 갯골길(늠내길)을 만들었다. 시흥갯골은 칠면초, 나문재, 퉁퉁마디 등 염생식물과 붉은발 농게, 방게 등의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할 정도로 생태계가 잘 보존돼 있으며, 이를 인정받아 2012년 2월 국가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내만갯골’이라는 보기 드문 지형을 구경할 수 있고, 염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으며, 다양한 볼거리, 체험할 거리가 있어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서울특별시 구로구 항동철길

서울특별시 구로구의 한 평범한 주택가, 빌라와 건물 사이로 기찻길이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그리고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주택가에 기찻길이?̕ 의문을 품고 따라 들어가 보면 수평과 수직이 교차하는 기찻길이 시야를 가득 채우며 펼쳐져 있다.

항동철길은 국내 최초의 민간비료회사인 경기화학공업주식회사(현 KG케미칼)가 1954년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옥길동에 설립되면서, 공장에서 서울까지 원료와 생산물을 운송하기 위해 1959년 설치한 길이다. 하루에 두어 번, 전성기에는 하루에 열 번까지 화물열차가 드나들던 이 철길은 현재는 경기화학의 공장이 이전해 화물 수송이 중단됐다. 이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야간에 군수물자를 실은 기차가 오갈 뿐이다.

뜸해진 기차 대신 이제는 사람들이 그 길 위를 걷는다. 지금의 항동철길은 일상과 일탈이 뒤섞인 길이다. 철도 주변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레일과 침목 사이에 푸른 풀이 자라고 제비꽃이 핀 기찻길 옆을 당연한 듯 걸어 장을 보고, 학생들은 침목에서 침목으로 건너뛰며 등교를 한다. 다른 한 편에는 시간을 들여 특별히 이곳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 항동철길은 이미 사진 찍기좋은 명소, 걷기 좋은 길로 유명해진 길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항동철길은 마음에 드는 장면을 담고자 묵직한 카메라를 들고, 혹은 이색적인 풍경을 찾아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강원도 정선군 운탄고도

대한민국에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개인 만항재(1,330m)로부터 운탄고도는 시작된다. 이 정도 높이의 산이면 산을 찾는 등산객들의 발자국으로 다져진 자잘한 샛길이나 나있을 법 하련만, 놀랍게도 운탄고도는 차 한 대가 거뜬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로 다져진 길이다. 이는 오가는 사람들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긴 길이 아니며, 등산로로 개발한 길도 아니기 때문이다.

1940년대 중후반, 정부수립 이후 전력난이 심화되자 정부는 발전용 석탄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함백개발계획’을 세웠다. 1961년에 정선탄전에는 국영탄광과 민영탄광이 함께 개발됐고, 뒤이어 1962년에는 사북, 고한에서도 석탄 개발이 시작됐다. 이렇게 탄광들이 개발됨에 따라 석탄 운반을 위한 도로가 필요해졌고, 이를 위해 1962년 2,000여 명의 국토건설단이 삽과 곡괭이로 다져 운탄고도를 만들었다. 산업화의 주동력이 되는 석탄을, 산 속 깊이 있는 탄광으로부터 기차역으로 실어 날라 전국 각지로 운반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던 도로인 것이다.

석탄 운반용으로 길이 쓰이지 않은 지 꽤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약간의 석탄가루가 남아있기에 운탄고도의 색은 다른 산길들에 비해 연한 잿빛을 띠고 있다. 군데군데 석탄가루가 시커멓게 쌓여진 비탈이 있으며, 또한 중금속이 침출돼 주황빛을 띠는 폐탄광의 갱내수가 흐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또 길을 걷다 보면 1970년대 탄광갱도의 지반이 침하되면서 남은 ‘도롱이 연못’ , 해발 1,177m에 위치한 ‘1177갱’의 갱도 등 폐탄광의 다양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더 이상 석탄을 사용하지 않게 된 후 버려진 이 길을 하이원리조트에서 개발했다. 현재 운탄고도는 봄에 피기 시작하는 다양한 야생화, 높은 고도에서 내려다보이는 운치 있는 풍경, 길이 상대적으로 평탄하고 무난하다는 장점 때문에 트래킹 코스로 산악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내륙까지 깊이 들어온 바닷물을 햇빛에 말려 다른 나라로 반출될 소금을 만들던 사람들도, 국내 농업에 큰 도움이 되었을 비료포대를 하나 둘 화물칸에 쌓아올렸을 사람들도, 울퉁불퉁한 산길 위에서 흔들리는 트럭을 몰고 몇 십 번이고 탄광과 기차역을 오갔을 운전수도 이제는 그곳에 없다. 그렇지만 길만은 그 시절의 흔적을 간직하며 아직도 남아있고, 길이 남아있는 한 새로운 사람들은 계속해서 그 위를 걷는다. 그리고 그 발자국 하나하나는 또다시 새로운 역사가 되어 길 위에 쌓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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