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등에는 검게 그을린 듯한 흉터가 있었다. 철이 들고 난 뒤 어머니로부터 그게 5.18 당시에 공수부대원에게 두들겨 맞은 자리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공연히 그때의 일을 들춰 직접 말씀하시는 법이 없었다. 세월이 흘렀고 많은 것이 바뀌어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기억들 역시 부당한 억압과 오명으로부터 놓여났음에도 그랬다. 다만 그 흉터만은 전과 다름없이 그 자리에 그대로 검게 남아있어 마치 이 세상에는 오직 침묵으로써만 증언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언어를 압도하는 어떤 체험의 영역이 존재함을 간단없이 보여주려는 것만 같았다.

실로 역사 가운데 흉터처럼 남겨진 사건들은 그것의 실재와 본질을 유실하거나 초과하는 다른 무엇으로 환원되는 일에 맹렬히 저항하곤 한다. 여기에는 대규모의 살육이 버젓이 자행되는 세계의 참혹함과 인간성의 절멸 앞에서 쉽게 눈을 감아버리는 일도, 그것들을 한낱 스펙터클로 소비해버리는 일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어떤 엄중함이 개입돼 있다. 우리가 참사라고 부르는 것들을 앞에 두고 스스로를 삼가되 동시에 그것을 의연히 마주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 삽화: 이은희 기자 amon0726@snu.kr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 「사울의 아들(Saul Fia)」(2015)이 그렇다. 이 영화는 답답하고 생경한 화면비율로 관객들에게 당혹감을 안긴다. 일반적인 영화에 비해 가로 폭이 훨씬 좁은 1.33:1 비율의 화면 안에는 포함되는 것들보다 빠져나가고 잘려나가는 것들이 훨씬 많다. 총을 겨누는 나치와 불태워지는 포로의 모습들은 프레임 안에 온전하게 담기지 못한 채 그저 총소리와 산산이 부서지는 비명의 흔적으로만 남는다. 영화는 관객들에게 수용소와 가스실에서 벌어졌을 사태의 진상을 쉬이 허락하지 않는다. 러닝타임 대부분의 시간동안 관객들의 시야에 가장 명료한 형태로 들어오는 것은 다만 주인공 사울의 뒤통수와 무언(無言)의 표정일 뿐이며, 이따금씩 그의 어깨 너머로 아웃포커싱 처리된 시체더미와 수용소의 풍경이 흐릿하게 흘러간다.

우리는 많은 경우 감각적으로 생생한 묘사와 상세히 진술된 이야기가 사태에 대해서 체험에 준하는 앎과 이해를 가져다주리라고 기대한다. 그러나 인간의 언어와 감각은 무력하고 기만적이다. 그리고 참사가 지닌 엄청난 실존의 무게를 더하거나 덜어냄 없이 있는 그대로 현시하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감각과 언어의 과잉은 오히려 사태의 본질을 사유하는 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그것들은 실감을 앞세워 사태를 명확히 드러내려 하지만, 그러나 정확히 바로 그만큼, 사태는 아득하게 멀어져버리고 만다. 그런데도 실감은 커녕 이념이라니. 36년 전 5월의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두고 또 다시 좌와 우를 나누고 애국과 종북을 거론하는 방식은 너무 얼뜨고 형편없는 수법이 아닌가. 이러는 사이 그날의 의미는 멀어진다. 자취를 감춘다. 그리하여 그것은 다시 은폐되고 말 것이다.

아버지는 5.18민주화운동 보상 심사를 받으러 때마침 5월 18일을 하루 앞둔 날 광주에 내려가게 됐다고 하셨다. 나는 문득 아버지의 흉터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고쳐 그러지 않기로 한다. 「사울의 아들」에서 마주쳤던 뜻밖의 순간이 떠올랐다. 사울의 어깨 너머로 흩날리는 재와 자욱하게 깔린 연기가 시야를 가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었던 바로 그 순간, 나는 비로소 홀로코스트의 맨얼굴을 보았다. 그 재와 연기가 무엇을 태우고 남은 것인지에 관해 그 어떤 각주도, 부연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배하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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