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아론 박사과정(철학과)

나는 모든 차별과 억압은 종식돼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차에 근거한 차별과 억압 역시 종식돼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개개인이 겪는 복잡한 경험들 속에서 각자가 맞닥뜨린 성적 억압의 기제들은 마치 순서도를 따라가듯 동일하고 기계적인 방식으로 인식되지 않을 것이기에, 그것이 공론의 장에 소환될 때 수많은 불일치와 대립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논의 전체가 진전되는 양상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 이슈들이 산적한 가운데, 군대 문제는 페미니스트들에게 낙인을 찍는 구실이 돼 여러 페미니즘 이슈들을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으며, 여러 이슈들을 성대결의 구도로 왜곡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20대 초반의 비장애인 남성들은 국가의 징집대상자가 되며 징집을 거부하면 구속 수감된다. 이는 군대에 가지 않는 선택지가 없다는 점에서 강제 징집인데, 징집된 군인들은 수많은 신체적 위험과 폭력에 노출되고 적잖은 정신적 외상을 입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격마저 국가에 양도해야 한다. 이는 조금만 비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누구나 이상한 일이라고 느낄 것이다. 국가는 국민에게 이러한 방식의 무차별한 징집권을 행사해도 되는가, 21세기 들어 징병제를 폐지하는 국가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현재의 남북한 전시 상황이 징병제를 간단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 무엇보다, 왜 여자들은 징집대상자에서 빠져 있는가. 그 어느 때보다도 희망 없고 불안정한 20대를 통과해야 하는 우리 세대들에게 이러한 사정은 더욱 민감하게 포착된다.

오직 남자들만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는 현재 한국의 국방 시스템은 수많은 양상의 성적 불평등을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여성이 마찬가지로 징집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인가. 이 부분이 많은 사람들의 감정적 격분을 불러일으키는 지점이다. 우리 사회의 군대 문제에 관한 논의는 1999년 군가산점 위헌 판결 이후로 성대결의 구도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시 군가산점 위헌을 주장했던 사람들은 군에서 제대한 자에게 주어져야 하는 보상이 군에 가지 않는 취약계층이 속한 노동시장의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방식으로 주어져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군대에 가지 않는 이득을 누리면서도 군가산점으로 인한 손해는 조금도 보지 않으려는 여자들’에게 분노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성평등을 주장하지만 가장 큰 불평등에는 눈을 감는 이기적인 페미니스트들’에 격분을 쏟아놓는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징병제가 불가피하다면 여자들도 징집돼야 진정한 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나는 여자들이 징집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들이 강제 징집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징병제가 불가피하다는 가정 자체가 국가의 기만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군비를 축소하는 경향이 두드러진 가운데 국방부는 북한의 수십 배가 넘는 군사비를 지출하면서도 현재의 전투인력을 유지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나는 여성과 남성 집단 간의 단순한 대결 구도는 복잡한 권력 구조를 감추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징병제를 유지함으로써 누가 어떤 이익을 얻는지, 한반도 정세가 징병제를 반드시 필요로 하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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