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의 재정과 사업 운영에 있어 상당 부분은 기부금에 의해 진행된다. 지난해 새롭게 지어진 관정관의 경우 2012년 중앙도서관 자체적으로 시작한 모금 캠페인에 관정 이종환 선생이 600억원을 기부, 총 711억원이 모여 건설될 수 있었다. 이처럼 기부금은 제한된 예산 하에서 대학 자체적인 사업에 힘을 실어주는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학신문』은 학내 기부금의 현황과 문제점,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등에 대해 알아봤다.

Ⅰ. 메마른 대학 재정 저수지에 내리는 빗줄기

서울대의 재정 구조는 법인회계, 산학협력단(산단) 연구비, 발전기금 등으로 이뤄져있다. 지난해 법인회계는 총 예산 7,711억원에서 국고출연금이 4,373억원으로 56%, 등록금 수입이 1,857억원으로 24%, 그리고 나머지를 수입대체경비, 이월금, 전입금이 차지하고 있다.

학교로 들어오는 기부금은 발전기금에서 직접 집행하기 때문에 법인회계와 별도로 책정된다. 발전기금 회계를 살펴보면 지난해 641억원을 기부 받았으며 발전기금이 갖고 있는 총 자산 규모는 4,446억원 정도다. 지난 몇 년간 기부금의 추이는 2011년 444억원, 2012년 486억원, 2013년 681억원, 2014년 975억원, 2015년 641억원으로 변화해왔다.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기부금과 발전기금 자산 운용에 따른 수익은 학교 전체 예산에서 9~10% 정도로 학교 재정에 있어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세청이 공개한 한 해 기부금 상위 30개 공익법인 중 서울대 발전기금은 640억원으로 15위를 기록했으며, 거의 동일한 액수로 14위를 차지한 연세대를 제외하면 지난 1년간 국내 대학 중 가장 많은 기부금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기부금은 기부자에 의해 ‘보통재산’ 혹은 ‘기본재산’으로 편입될지, 그리고 용도와 위임 여부 등의 속성이 정해진다. 보통재산으로 이용될 경우 원금 자체를 사업에 집행하며, 기본재산의 경우 기부된 원금을 보존하고 기금 운용을 통해 발생한 과실금만을 사용할 수 있다. 지난해 발전기금 회계에 따르면 기본재산이 약 2,765억, 보통재산이 약 1,043억으로 일부 금액은 이월금 및 적립금 등으로 구성됐다. 또 기본적인 용도는 연구·학술, 시설, 장학 등으로 분류되며 2014년 용도별 모금현황은 전체 975억 중 연구·학술 38%, 시설 22%, 장학 19%, 교육 10%, 기타 11%를 기록했다.

현재 서울대의 재정 구조에서 학교가 자체적으로 발전을 위해 쓸 수 있는 재정 확보를 위해선 발전기금 모금이 핵심이다. 강창우 기획부처장(독어독문학과)은 “산단 연구비는 국가 R&D 사업에 종속적이며 연구비 지급, 산단 운영비로 쓰고 나면 남는 예산이 크게 없다”며 “법인회계에서 국고출연금은 한정적인 가운데 등록금은 동결됐고, 자체수입의 경우 큰 수익은 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철수 기획처장(법학전문대학원)은 “법인회계와 같은 경우는 이미 사용처들이 정해진 금액들이기에 따로 빼서 이용할 수 없는 부분”이라며 “기초학문연구 지원과 같이 대학 내에서 자율적으로 발전 방향을 계획할 때 학교에서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은 기부금”이라고 설명했다.

Ⅱ. 빗방울이 골고루 떨어질 수 없나요

지난 몇 년 동안 기부금은 장학금, 인프라 확충, 연구 지원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학내 구성원에게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몇몇의 경우 용도가 학내 환경과 잘 맞아 떨어지지 않아 집행 후 빈축을 사기도 했으며, 집행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의 의혹을 사기도 했다. 또 단과대마다 동문회 발달, 동문들의 종사 직종 등의 차이로 기부금이 넉넉한 곳도 있지만 부족한 경우도 있었다.

우선 기부 건물의 경우 그 용도가 명확하지 않아 캠퍼스 공간 활용에 있어 문제가 되거나 지어진 이후 상업화 논란이 일기도 했다. 최재필 교수(건축학과)는 “학내 몇몇 건물들은 각 단과대에서 확보한 기부금으로 지어져 비효율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다”며 “캠퍼스 조성의 경우 대학 전체적으로 계획을 갖고 접근해야 하는데 단과대에서 기부금을 가져오면 거부하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기부자가 건물 형식으로 기부할 때 그 설계자를 기부자가 지정할 수 있어 일정 부분은 기부자의 의도가 존중된다”며 “대학의 계획에 부합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단과대 사이에 기부금의 규모가 크게 차이남으로써 발생하는 불균형 문제도 있다. 대표적으로 공대의 경우 발전기금을 통해 들어오는 기부금 이외에도 별개의 재단을 갖고 있어 상대적으로 많은 기부금을 확보한다. 반면 자연대 교수 B씨는 “자연대의 경우 졸업생의 진로가 보통 연구원이나 교수로 몇몇 단과대에 비해 기부 액수에 있어 차이가 난다”며 “이로 인해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가 소홀히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기부에 있어 동문 기부가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단과대마다 종사 직종이 다르고 그 수가 다르다”며 “또 단과대별 성격이 다르고 단과대마다 적극적으로 기부를 유치하려는 노력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단과대마다 기부금 규모가 다른 것은 단과대별 특성상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어느 정도 조율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해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기부금이) 부족한 단과대가 있는 경우 본부에 위임된 기부금으로 충당하고 있다”며 “또 자체적으로 모금 캠페인을 하도록 장려 및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본부에 위임된 기부금은 그 액수가 크지 않아 적극적인 조정은 힘든 실정이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몇몇 단과대의 경우 기초학문 육성을 위해 재원이 필요하면 본부 차원에서 지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하는 한편 “그러나 본부에 맡겨지는 위임 기부금이 적어 임의로 조정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기부 건물의 문제와 단과대별 기부금 규모 차이를 개선하기 위해선 용도가 지정된 목적기부금보다 본부 위임 기부금의 비중이 늘어나는 것이 대안으로 제시된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대부분 목적이 지정된 형태로 기부금이 들어와 현재 본부에 집행이 위임된 기부는 거의 없다”며 “본부에 재량이 맡겨져 학사운영에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돈이 균형 있게 쓰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창우 기획부처장은 “건물성 기부와 단과대별 기부를 지양하고 전체적인 건축 기금과 같은 형태로 운영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현실적으로 기부금의 용도가 명확해야 기부자에게 잘 어필할 수 있다”며 “적절하게 명분을 모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부 위임 기부금을 확대하는 경우 본부 자체에서 관리하는 비중이 늘어나기 때문에 공정한 집행 내역에 대한 요구가 더욱 커질 수 있다. 이는 본부가 기부금 집행 계획을 다양한 주체와 공유할 때 해소될 수 있다. 현재 발전기금에서는 국세청의 공익법인공시, 대학알리미를 통해서 회계와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만 사업별로 세세한 집행 내역이 들어간 예·결산안을 제공하진 않는다. 이에 몇 년 전 학생사회에서는 발전기금 운영 내역에 대한 자료를 ‘발전기금 Break’와 같은 활동으로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발전기금 측은 기부자의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공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목적 사업별로 묶어서 처리하면 기부자의 개개인의 신상이 드러나지 않을 수 있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본부에 위임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학내 예·결산에 포함돼 감사를 받기에 투명하게 운영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혹시 기금 운용은?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 중 ‘기금을 고수익 상품에 투자해 그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국민연금 기금의 헤지펀드 투자가 결정된 것처럼, 발전기금 역시 고위험·고수익 상품에 투자함으로써 기금의 규모를 키우면 되지 않을까. 그러한 독자를 위해 기자가 직접 이를 파헤쳐봤다.

2015년 말 기준 발전기금의 기금 운용 현황을 살펴보면 현금성자산 73%, 채권 6%, 주식 4%, 대체투자 11%, 파생연계상품 7%로 나눠져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이 중 대체투자는 부동산, 원자재 관련된 펀드를 말한다. 이처럼 발전기금은 자산의 대부분을 저위험·저수익성 상품에 투자 중이며 중위험·중수익 성향의 투자가 일부 포함돼있다.

외국대학의 경우 기금의 규모 자체도 크지만 공격적인 기금 운용과 자체 사업 등을 통해 대학재정의 대부분을 대학기금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강창우 기획부처장은 “하버드대의 경우 기금을 10조원 정도 확보하고 있다”며 “기금을 안정적으로 은행에 예치해 유지하기보단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 큰 수익을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미국 대학 중 기금 운용에서 높은 순위에 속한 대학들의 경우 기금의 작은 부분만을 안정적인 예금에 두고 헤지펀드와 같은 공격적인 투자로 연 15%에서 20%의 큰 수익을 거뒀다.

그렇다면 서울대 발전기금 또한 이러한 공격적인 기금 운용을 통해 기금 규모를 늘릴 수는 없을까. 발전기금 측은 국내법상 외국대학과 같은 적극적인 투자는 원천적으로 힘들다는 입장이다. 발전기금 관계자 C씨는 “발전기금의 기금 구성은 기본재산이 73%, 보통재산이 27% 정도 되는데 기본재산의 경우 법적으로 반드시 원금을 보장해야 한다”며 “기본재산으로는 은행 이자보다 월등히 높은 수익을 거두는 금융상품에 뛰어들 수 없다”고 설명했다.

원금 자체를 집행하는 보통재산의 비율이 높아져도 실질적으로 기금 운용에 쓸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발전기금 관계자 C씨는 “보통재산의 특성상 기부금이 장학금이나 연구비 등으로 가까운 시일 내에 사용되기 때문에 많은 부분을 운용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또 기본재산 기부에 대한 선호 때문에 적극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보통재산 비율이 늘어나는 데 어려움도 있다.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기부자들은 보통재산보다는 지속적으로 기금에 포함되는 기본재산으로 기부하는 것을 선호한다”고 설명했다.

Ⅲ. 한 차례 소나기보단 꾸준한 가랑비가 좋아요

지속적인 불경기로 기부금이 마냥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기 어려운 가운데, 기금 운용을 통해 큰 수익을 내기 힘들다면 기부금 모금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특히 최근 기부금과 관련한 세제 개편에 따라 개인 거액 기부자에 대한 세금 혜택이 큰 폭으로 축소돼 거액 기부자 수의 감소도 우려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액 기부의 중요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다른 대학 역시 소액 기부 열풍이 불고 있다. 고려대의 경우 지난해부터 소액 정기기부를 목적으로 하는 ‘KU PRIDE CLUB’ 캠페인을 시작했다. 캠페인은 최소 1년 약정으로 매월 1만원 이상의 정기 기부를 약속해 참여할 수 있다. 기부자에게는 학교 소식, 모금 현황 등이 담긴 책자가 정기적으로 배송되며, 명단에 이름이 게재되면서 기념품, 무료주차권 등이 제공된다. 연세대의 경우 2009년에 상경대 동창회에서 ‘블루버터플라이’라는 월 3만원부터 약정 가능한 캠페인을 시작했으며, 기부자와 수여자 간에 문자, 소식들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대 내에서도 소액 기부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 발전기금 관계자 A씨는 “이번달부터 ‘만만한 기부’라는 이름의 소액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재기부 요청을 할 때 처음 기부를 한 사람보다 1/10정도의 노력이 들기에 기부 경험을 늘리는 것이 좋다”고 설명했다. 총동창회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소액 기부를 기반으로 하는 ‘풀뿌리 장학금’을 신설했으며 올해 역점을 두고 집중할 계획이다. 총동창회 관계자는 “2011년 SNU장학빌딩 기금과 같은 큰 규모 사업 이후 작은 돈들을 모아 장학금을 주는 소액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며 “연말정산에 세금으로 나갈 부분이 기부로 나간다고 생각하면 큰 부담이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액 기부 외에도 다양한 캠페인을 통해 기부자들의 이목을 끌고 기부문화를 개선할 수 있다. 발전기금에서 지난해 시작한 ‘선한 인재 이어달리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와 유사하게 선발주자가 후발주자를 추천하는 릴레이 방식으로 진행됐다. 지난 2월 목표인원 210명을 훌쩍 넘은 323명이 참여해 100억원 이상의 기금이 모였으며, 모인 기금은 가계소득 1분위 이하 학생에게 장학금 형태로 지급됐다.

한편 다양한 캠페인을 진행하는 데 있어 장기적 관점에서 기부 사업을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철수 기획처장은 “기부문화의 전반적인 개편에 있어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선한인재달리기처럼 학생이 기부금으로 지원받고 여건이 될 때 다시 재기부를 하는 선순환 구조를 이룰 수 있다”고 설명했다. 총동창회 관계자는 “큰 기부 사업을 진행한 후 얼마간은 기부금이 줄어들었다”며 “장기적으로 기부 사업들 간의 간격을 잘 조율해서 계획을 짤 필요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부터 서울대는 국내 최고의 대학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기부금을 받아왔다. 기부금은 건물 신축, 연구 지원, 장학 등 학내 복지를 증진하는 데 다양한 형태로 활용돼왔다. 이러한 배경 속에는 발전기금, 단과대 등의 노력과 많은 기부자들의 선의가 깔려 있었다. 그러나 기부자의 선의가 학내 구성원에게 왜곡돼 전달되기도, 그 운용에 있어 의혹을 사기도 했다. 앞으로 이러한 기부자의 선의가 보다 효과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그리고 학생들에게도 그 선의가 제대로 다가오도록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

삽화: 이종건 기자 jonggu@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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