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인 협동조합 - ② 자립음악생산조합

 

어제 본 영화부터 주말에 보러 갈 발레 공연까지. 다양한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예술인은 풍요로움을 이끄는 이들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당장의 창작 활동이 가로막힌 예술인들이 많다. 이에 손 놓고 있지만 않은 예술가들은 자구책으로 협동조합을 꾸려왔다. 노동조합처럼 투쟁이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고민하고 조합원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창작물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협동조합이 시작된 배경과 그들의 활동을 들어본다.

①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② 자립음악생산조합 ③ 발레STP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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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근데 인디음악이 뭐야?” “응, 더 열심히 하라는 음악이야.” 영화 「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은 ‘인디’를 이렇게 설명한다. 인디 음악은 왜 ‘더 열심히’ 해야 할까? 홍대 앞의 클럽들이 없어졌다는데, ‘열심히’ 공연하던 밴드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2011년부터 시작된 ‘자립음악생산협동조합’은 이렇듯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 인디음악계에서 진정한 인디 정신을 추구하는 협동조합이다. 스스로 음악을 만들면서도 모여서 품앗이처럼 서로 돕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두리반 그 후, 살 길 찾아나선 음악가들

자립음악생산조합의 음악가들은 이른바 ‘두리반 사태’를 계기로 모였다. 2009년 홍대입구역에 공항철도 공사 계획이 잡히자 건설사는 주변의 땅을 사들이면서 세입자들에겐 제대로 된 보상조차 하지 않았다. 역 주변에 위치한 칼국숫집 두리반에도 철거반이 들이닥치자 ‘한받’ ‘정동민’ ‘회기동 단편선’ 등 홍대 씬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들 5~6팀이 모여 약자인 세입자가 일방적으로 쫓겨나는 부조리한 상황을 알리고 음악가로서 이에 저항하는 ‘자립음악회’를 열었다.

한 칼국수 식당의 일에 홍대 음악가들이 연대하게 된 배경에는 홍대 음악 씬의 위기가 철거농성장의 문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운영위원 황경하 씨는 “공연을 해도 우리에게 돌아오는 몫은 없었다”며 “노동의 대가를 클럽 주인이나 우리가 아닌 건물주가 가져가고 있다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말이 지금처럼 보편화되지 않은 때였지만 음악가들은 자신들의 상황이 세입자가 약자일 수밖에 없는 두리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에 2010년 노동절날 ‘51개 팀을 불러 대규모로 공연해보자’는 의미로 축제 ‘51+’를 열었다. 통기타 하나 들고 노래를 읊조리는 포크 음악부터 몸을 들썩이게 하는 일렉트로닉 음악까지 온갖 장르의 음악이 두리반을 가득 채웠고, 공연은 하루동안 1,000여 명의 관객을 모았다.

이후 음악가들은 자본의 힘에 의해 자신들이 쫓겨나고 홍대 씬이 쇠퇴하는 문제를 공유하기 시작했고, 이는 조합의 시작이 됐다. 황경하 씨는 “인디 음악이 돈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구조 속에서 우리끼리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협동조합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음악인들은 1년간 협동조합에 대해 공부한 끝에 2011년 5월 자립음악생산조합을 발족했다. 현재는 음악가, 리스너, 예비음악가 등 300여 명이 조합원으로 소속돼있고, 10명의 운영위원이 조합을 꾸려가고 있다.

앨범 기획부터 공연까지 DIY!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음악가들의 연대를 통해 개별 음악가의 ‘자립’을 돕는다. 조합원들은 매달 최소 5천원을 조합비로 납부하고, 이렇게 모인 돈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앨범을 내고 싶어하는 음악가 조합원들의 음반 발매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이후 조합은 기존 음반사와는 달리 수익금을 가져가지 않는다. 음악가 황푸하 씨는 “자본을 따라가는 음반 회사보다 협동조합과 같이 하는 것이 음악 색깔과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조합과 함께 정규음반을 내기로 한 이유를 말했다. 조합에선 음악가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나 앨범 디자인 등을 도울 사람을 소개받을 수도 있다.

조합은 음악가의 음반 제작을 돕는 것에서 나아가 음악의 유통 방식까지 고민한다. 음반사와 기획사가 홍보와 유통을 맡아 수익을 나누는 기존 구조에서 조합이 꿈꾸는 자립은 실현되기 힘든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터인 ‘레코드폐허’는 음악가들이 자신의 음반을 직접 판매하고 쇼케이스도 열 수 있는 자리다. 레코드폐허를 기획한 황경하 씨는 “음악가들은 자기 음악을 팔고 돈을 받는 일을 부끄러워하기도 한다”며 “이제는 개개인이 자영업자처럼 제작과 유통, 홍보를 전부 하면서 직접 소비자를 만나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기획의도를 설명했다.

 

문제적 장소에서 음악판을 벌이다

최근 이들은 재개발 지역인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서 강제철거에 반대하는 음악회를 열고 있다. 강제집행 문제가 벌어진 장소마다 자리를 잡는 ‘강제음악회’가 홍대 두리반과 한남동 문화공간 ‘테이크아웃드로잉’을 거쳐 현재는 옥바라지 골목까지 온 것이다. 옥살이를 뒷바라지하는 독립운동가 가족들이 서대문형무소 근처에서 모여 살며 형성된 이곳은 역사적 가치를 지녔음에도 철거집행이 결정됐다. 조합의 음악가들은 주변의 수많은 건물이 철거된 와중에 그나마 남은 ‘구본장여관’ 위 옥상에서 매주 노래하고 있다. 가파른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나오는 작고 허름한 옥상에선 주민과 멀리서 찾아온 관객들이 폐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음악가의 연주를 듣는다.

이들의 활동은 음악을 수단으로 사회참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목적으로 문제적 공연을 여는 것이다. 황경하 씨는 “농성장의 음향 등이 좋지 않을 때 음악인들은 자신의 음악 자체에 대해선 관심이 없다고 느끼기도 한다”며 “현장에서도 음악은 음악 자체로 소개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강제음악회 기획자 이권형 씨는 옥상에서도 음향 장비를 세심히 확인하고, 자기 색깔을 지닌 음악가들에게 ‘출석 요구서’를 패러디한 초청장을 보내 핫한 라인업을 꾸린다. 지난 11일(수) 강제음악회에선 록 밴드 ‘유기농맥주’가 소박한 옥상 분위기에 맞게 어쿠스틱 밴드 ‘유기농생맥주’로 변신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조합의 에너지는 이어진다. 그들이 머물렀던 현장엔 의미 있는 흔적이 남았고, 특별히 합동 제작되는 음반은 조합의 행보를 기록하고 있다. 테이크아웃드로잉엔 강제집행 문제가 일단락된 지금도 스튜디오와 음향장비가 남아있어 음악가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또 여러 조합원들이 함께 녹음한 ‘테이크아웃드로잉 컴필레이션’ 앨범은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발매됐고, 철거 위기에 빠진 공간의 소리가 그대로 담긴 독특함을 보여준다.

자립음악생산조합은 인디 음악가들이 인디답게 스스로의 힘으로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왔다. 조합은 혼자 작업하는 음악가들이 스스로 음반을 만들고 더 많은 리스너를 만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에서 도움을 준다. 더불어 심각한 분위기의 철거 현장을 한바탕 공연판으로 만들어 음악가들이 모여들 자리를 마련한다. 앞으로도 계속 ‘자립’의 목소리를 음악계 전체로 퍼뜨려갈 이들의 미래를 그려본다.

 

 

dkxmans@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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