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제 ‘인문소극장 개관기념 연극제’

인문대 14동이 2년 6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완벽하게 탈바꿈됐다. 특히 학내 구성원들에게 큰 호응을 얻은 것은 지하 1층에 마련된 113석 규모의 '인문소극장'이었다. 새로 들어선 인문소극장을 축하하기 위해 학내 네 연극집단이 공연을 준비했다. 각기 다른 개성을 뽐내는 공연장에 문화부 기자들이 발빠르게 다녀왔다.

총연극회 「열두번째 밤」

나는 남장여자. 공작의 시종으로 일하다가 그를 짝사랑하게 됐지만 야속하게도 그는 나더러 자신이 흠모하는 올리비아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란다. 쓰린 가슴 부여잡고 메시지를 전하러 갔더니 웬걸, 그녀가 내게 반해버렸다. 순정만화 아니냐고? ‘나’는 바이올라, 셰익스피어의 희극 「열두 번째 밤」의 주인공이다. 그녀는 항해 중 난파돼 쌍둥이 오빠인 세바스찬과 헤어진 뒤 일리리아에서 세자리오라는 이름으로 남장을 하고 살아간다. 한편 세바스찬 역시 일리리아에 도착하는데, 그들의 똑같은 겉모습 때문에 왁자지껄한 소동이 발생한다.

무대는 간결하다. 흰색 천을 배경으로 의자가 몇 개 놓여있고, 조명의 사용으로만 공간의 변화를 암시한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시적인 대사와 배우들의 호연은 성긴 배경 사이사이를 메우며 꽉 찬 무대를 만들어낸다. 특히 올리비아의 사촌 토비 경과 시종이 집사를 골탕 먹이는 장면은 배우들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메인 플롯 못지않은 무게감을 지닌다. 그들의 등장만으로도 객석에선 웃음이 터진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던 사랑 이야기는 인물들이 한 데 모이고, 마침내 세바스찬이 등장해 바이올라와 공작, 올리비아와 세바스찬이 짝을 이루면서 완성된다.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던 올리비아가 세자리오에게 첫눈에 반하고, 세바스찬이 처음 본 여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는 등 급작스러운 전개는 당혹감을 안겨주지만,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가능한 한바탕 장난이고 축제일뿐인데 뭐 어떠랴!

대학신문 snupress@snu.kr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에르떼수스 「미스줄리」

깜깜한 무대 위, 빨간 드레스를 차려입은 여자의 모습이 드러난다. 약혼자를 노예처럼 부리려다 싫증이 나 파혼하고, 애완견 ‘다이아나’가 길거리의 개와 어울리는 것조차 싫어하는 그녀는 백작 가문의 딸 줄리. 하지만 그런 그녀는 ‘신비로운 사랑의 시간’이라 불리는 스웨덴 하지 축제 전야에 하인 장과 우연히 하룻밤을 보낸 후 ‘더럽혀졌다’는 불안감에 떨며 그의 발에 매달리는 신세가 됐다. 도도한 귀족인 그녀가 이렇게 비참해질 줄 누가 알았을까.

온통 검은 칠을 해서 유난히 어두운 무대와 한편에 놓인 계단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인물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감정 변화와 위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밤이 깊어가면서 줄리는 좌절하고 혼란스러워하며 맥없이 계단 아래로 내려가고, 미천한 자신의 위치에 불안해하면서도 줄리를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는 장은 어느새 계단을 올라 줄리 위에 당당히 서 있다. 귀족과 하인의 위치가 뒤집어지면서, 검은 무대 속에 이들이 느끼는 감정의 곡선은 관객의 눈에 더 강렬하고 선명하게 들어온다.

백야 현상으로 어느 때보다도 밝은 하지 축제날 벌어진 이 어두운 이야기는 결국 비극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줄리는 새벽이 찾아오자 칼을 들고 헛간으로 향하고, 기세등등하던 장은 하인을 부르는 종소리의 환청을 듣고 죄의식을 느끼며 괴로워한다. 여자라는 굴레, 하인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우리가 선 위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된다.

고유리 기자 yoori0805@snu.kr

사진: 정유진 기자 tukatuka13@snu.kr

미대극회 「하아(我)얀」

모두 제정신이 아니다. 정신병원인 이곳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다들 한 가지씩 집착증을 앓고 있다. ‘피부 집착녀’부터 ‘하나마나한 말 집착남’, 심지어 전기치료에 집착하는 의사까지. 그 중에서도 눈에 띄게 이상한 인물은 스스로를 사이보그라 여기는 영군. 밥을 먹는 대신 건전지를 핥으며 충전 완료되기만을 기다리는 그는 ‘존재의 목적’에 끊임없이 집착한다. 과연 그가 그토록 애타게 찾는 존재의 목적은 무엇일까.

테이블, 의자, 자판기 등 무대 위 소품들은 모두 현실 속 그것과 닮아 있지만 온통 흰 색으로만 칠해져 있다. 현실 사회를 살아가는 척하지만 사실은 여전히 공상 속에서 살고 있는 환자들의 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연극은 인물이 급격한 심경의 변화를 겪을 때마다 형형색색의 조명을 사용해 흰 무대를 채우며 이들의 심리 상태를 드러낸다. 극이 절정으로 향해 갈수록 존재의 목적에 매몰돼 혼란스러워 하는 영군의 심리를 보여주듯 무대는 조명으로 알록달록해진다.

하얀 무대에서 하얀 옷을 입고 ‘미친 연기’를 펼치는 배우들.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이는 그들은 어느새 관객들까지 ‘하아얀’ 의식의 저 편으로 데려간다. 사이보그인 자신의 존재 목적이 무엇일까 끊임없이 되묻는 영군은 관객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지며 보는 이를 괴롭게 한다. 결국 영군은 같은 병원 환자인 일순의 도움으로 존재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사이보그지만 괜찮아’라는 답을 얻게 됐다. 그러나 극이 다소 급작스럽게 마무리돼 강제로 현실로 돌아오게 된 관객들은 여전히 존재의 목적을 묻는 질문과 함께 남겨진다.

김지수 기자 alsltn207@snu.kr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SNUPA 프로덕션 「언더더씨어터」

“인문소극장 개관기념 연극제의 대미를 장식하는 연극이 곧 시작됩니다!” 대사라기엔 이상한 말로 시작되는 이 연극, 리허설만 봐도 뭔가 심상치 않다. 건물 1층 로비에서부터 2층 발코니, 조명이 있는 캣워크*까지. 배우들은 극장 안팎을 종횡무진하며 극장 소개인지 대사인지 모를 말을 한다. 객석에서 벗어나 배우들에게 홀린 듯 이끌려 다니다 보면 당신은 연극을 보는 건지 투어를 하는 건지 헷갈리고 말 것이다.

이들의 연극은 ‘선물’의 의미를 재조명하는 여정이다. 새 극장이 학내 연극인들에게는 ‘선물’이라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들은 선물의 의미를 공유하려 한다. 건물 곳곳에선 대사에 ‘선물’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 연극 장면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펼쳐진다. 무대에서 오필리아는 갈등에 빠진 햄릿에게 자신이 받았던 선물을 건네고, 줄리엣은 발코니에서 로미오에게 자신의 마음을 선물하며, 무대 뒤편에선 오이디푸스 왕이 양부모가 자신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처럼 받았다는 신탁을 듣는다. 다섯 명의 배우가 재빨리 역할을 바꾸면서 선물을 주고받는 모습은 관객의 눈과 귀를 끌어당긴다.

이 정체불명의 연극에 참여하는 것은 당신에게도 선물이 될 것이다. 공연들이 이어진 뒤, 관객들은 새 극장을 위해 고사를 지내는 풍물패와 함께 놀이판에 뛰어들 수도 있다. 앞으로 극장에 예술적이고 실험적인 시도들이 가득하길 바란다는 SNUPA 프로덕션(연합전공 공연예술학)은 오늘도 야심차게 모두가 함께할 ‘투어’를 준비하고 있다. 26일부터 28일까지는 풍물패에 노래, 강연까지 더한 본공연이 펼쳐진다고 하니, 이들이 준비한 선물을 놓치지 않길!

*캣워크: 조명 조정용으로 사용되는 천장 가까이의 좁은 통로

고유리 기자 yoori0805@snu.kr

사진: 강승우 기자 kangsw0401@snu.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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