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예술인 협동조합 - ③ 발레STP협동조합

어제 본 영화부터 주말에 보러 갈 발레 공연까지. 다양한 예술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며 예술인은 풍요로움을 이끄는 이들이다. 하지만 최근 한국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당장의 창작 활동이 가로막힌 예술인들이 많다. 이에 손 놓고 있지만 않은 예술가들은 자구책으로 협동조합을 꾸려왔다. 노동조합처럼 투쟁이나 요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가능한 창작 환경을 고민하고 조합원들이 모여 자발적으로 창작물을 만들어간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인 협동조합이 시작된 배경과 그들의 활동을 들어본다.

① 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② 자립음악생산조합 ③ 발레STP협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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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국발레단의 '기억의 자리'. 영화 「스트레인저」OST에 맞춰 만들어진 세련된 모던발레 작품이다

여기 조금 색다른 발레 공연이 펼쳐진다. 백조를 닮은 순백의 무용수들이나 왕자와 공주가 등장하는 고전적인 발레는 공연을 수놓는 다채로운 레퍼토리 중 하나일 뿐. 열정적인 탱고 음악에 맞춰 남녀 무용수들이 강렬한 사랑의 몸짓을 표현하는가 하면 여장남자가 신데렐라의 계모로 등장해 코믹한 연기와 춤을 선보인다. 열광적인 반응이 연신 터져 나오는 객석을 살펴봐도 정장을 차려입은 성인들보다 부모와 함께 온 아이들이 더 눈에 띈다. 티켓 가격은 2~3만 원으로 10만 원을 호가하는 일반 발레 공연보다 훨씬 저렴한 이 공연. 누가 하는 걸까? ‘발레, 아름다운 나눔’ 행사를 4년째 주관해온 이 단체의 이름은 ‘발레 STP 협동조합’(STP)이다.

◇민간 발레단의 위기, 여섯 발레단의 의기투합=STP는 ‘유니버설 발레단’ ‘이원국발레단’ 등 6개의 국내 민간발레단으로 이뤄진 협동조합으로 2012년 결성된 ‘민간직업발레단연합회’가 전신이다. 서로 다른 역사와 특색을 지닌 이들 발레단은 ‘이대로는 민간발레단의 미래가 없겠다’는 위기감에 힘을 합하게 됐다. 약 8년 전부터 국공립 발레단에 국가 지원이 많이 늘어난 반면 민간 발레단은 시장과 민간 후원 등이 활성화되지 않아 둘 사이의 격차가 심각해졌다. STP 이사장을 맡은 ‘서울발레시어터’ 김인희 단장은 “이러다간 한국에 국공립 단체밖에 안 남겠다고 생각했다”며 “협동조합을 통해 관객층을 넓히고 민간발레단끼리 힘을 모아 국가에 정책적인 제안도 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경제적 약자들이 상부상조해 당장 생존을 꾀하는 다른 협동조합과 달리, STP는 무엇보다 다양한 관객을 만나고 발레의 문턱을 낮추는 데 힘을 쏟는다. STP의 주된 활동은 1년에 몇 차례 열리는 소속 발레단들의 합동 공연으로 발레가 어렵거나 특수층의 문화라는 편견을 깨뜨리는 데 중점을 둔다. STP 공연은 클래식 발레를 비롯해 모던, 창작 발레 등 발레의 여러 장르와 각 단체의 개성과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레퍼토리로 구성된다. 김인희 단장은 “사람들의 고정관념 속 발레는 ‘호두까기 인형’ 같은 클래식 발레”라며 “우리 공연은 이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값싼 티켓 가격도 발레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중요한 요소다. 2만 원 남짓을 내면 관객은 마치 ‘종합선물세트’ 같은 국내 유수 발레단의 대표작들을 만날 수 있다. 게다가 무용수의 근육 모양과 땀방울까지 보이는 지근거리의 좌석이다. STP(Sharing Talent Program)라는 이름에서 드러나듯 이러한 재능 나눔으로 대중과 발레의 접점을 늘리는 것이 이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희망이 그들을 자유롭게 하리=지금까지 STP의 활동은 적지 않은 변화와 성과를 만들었다. 이들 공연은 ‘문턱 낮춘 발레’나 ‘명작 하이라이트’ 같은 타이틀로 언론에 종종 소개되고 관객들에게도 뜨거운 반응을 얻어 매번 객석을 가득 채우고 있다. 2013년 25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시작한 합동공연은 이제 700여 석의 대극장에서 관객과 만난다. 공연 횟수도 연 2회에서 약 13회로 늘어났다. 또 지난해부터는 한여름 야외음악당에서 STP와 아마추어 발레단의 공연을 올리는 ‘수원발레축제’를 개최했고, 올해는 수원시의 긍정적인 반응에 힘입어 국고 지원에 더해 시 예산을 지원 받았다.

단원에게 월급과 4대 보험을 제공할 수 있는 단체가 2개에 불과할 정도로 민간발레단의 현실은 여전히 어둡지만, 구성원들의 표정까지 어둡지는 않다. 협동조합 활동이 당장 수익에 보탬이 되진 않아도 미래를 그려볼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김인희 단장은 “꾸준히 STP 활동을 해오면서 우리가 힘을 합치면 못할 것이 없겠다는 자신감을 얻었다”며 “시작할 때 소극적이었던 단원들도 관객 반응을 피부로 접하면서 점점 열의를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발레의 저변 확대라는 목표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러나 ‘두려움은 너를 죄수로 가두고 희망은 너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말처럼 STP라는 희망은 그들을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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