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는 관악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70년대 중반 서울시내 동숭동에서 이곳으로 이전할 때만 해도 서울대생의 데모가 골치 아파서 멀리 시골로 쫓아냈다는 말이 많았다. 사실 그때만 해도 신림동은 시내에서 먼 유배지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이제 상황은 역전됐다. 서울대만큼 좋은 자연친화적 캠퍼스는 찾아보기 어렵게 된 것이다.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학생, 교직원들은 모두 축복받은 사람들이다. 공기 좋고 경치 좋은 곳에서 공부하고 일하니 말이다. 필자도 학생생활과 직장생활을 관악산에서 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이라 생각한다. 학부 시절 인문대, 사범대 뒤 넓은 잔디밭을 뒤덮던 벚꽃, 개나리꽃,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진 캠퍼스, 가을이면 단풍이 곱게 물드는 가로수, 겨울이면 흰 눈이 고즈넉한 관악산,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누리는 호사다.

그런데 유감스런 일은 서울대가 관악산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외부의 따가운 비판이다. 벌써 오래 전이지만 캠퍼스내 신공학관이 건설됐을 때, 갑자기 관악산 중턱을 가리며 우뚝 선 고층빌딩을 보고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관악산의 자연풍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었다. 그리고 서울대 정문 가까이 세워진 미술관 건립의 사연도 꽤 길었다.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했으나 관악구청이 자연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주지 않아 한참 지나서야 설계 변경 후 건축됐다. 공학관이나 미술관은 서울대로 보아서는 교육에 꼭 필요한 시설물이고, 자연을 얼마나 훼손했는가에 대한 의견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외부에서 서울대를 바라보는 눈이 곱지 않았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의 눈을 내부로 돌려보자. 우리는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조건을 감사하게 여기고, 잘 보존하려고 노력했는가? 나아가 환경보존을 위해 자원을 아껴 쓰고 있는가? 아쉽게도 아니라고 기억된다. 필자는 오래전 외부대학에 출강했던 적이 몇 번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좁은 캠퍼스를 보고는 “우리 서울대가 역시 좋구나” 하고 느낀 적이 많았다. 그런데 벌써 10년도 훨씬 더 된 옛날에 다른 대학 구내에는 재활용품 분리 쓰레기통이 여기저기 설치돼 있는데 비해 우리 서울대에는 없어서 아쉽게 생각한 적이 많았다. 지금은 설치돼 있지만…. 그리고 학생들도 자원절약이나 캠퍼스 환경 보존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고 기억된다. 빈 강의실에 불이 환히 켜져 있는 것을 본 적이 많고, 학생들도 소등에는 무관심한 것 같았다. 또 필자가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는 캠퍼스 잔디밭 위에서 행사가 끝나면 종이컵, 과자봉지, 막걸리병 등이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점이었다. 우리나라 제일의 영재들이 왜 저리 뒤처리에 약한지 하는 탄식을 금치 못했다. 마지막으로 대학의 특성상 종이를 많이 쓰는 곳이라, 필자가 전에 종이를 아까워하며 적었던 시 한 수를 옮겨본다.

 

「白紙를 위하여」

 

자연의 기운을 받고 태어난

잘 생긴 나무로 부터 만들어져

시인의 고독한 붓끝을 위해

원대한 理想의 밑그림을 위해

착한 소년의 숨김없는 일기를 위해

순백의 살을 바치고 싶었으나

이제

삭막한 세상의 덧없는 日用의 제물이 되어

얼굴 반쪽에 흉한 문신을 새기고

더러운 쓰레기통에 처박힐 운명.

비록 세상에 한쪽 얼굴 더렵혀졌으나

아직 네겐 새하얀 다른 면이 있구나.

본래 태어난 거룩한 목적처럼

다시 귀하게 쓰이기를 희망하는 이면지

재활용 되는 것도 거부당한 채로

오물 속에 버려지는

너를 위해 애도하노라.

저작권자 © 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