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성악 전공생들은 한국에서 학부를 마치고 나면 유학을 떠난다. 기초는 우리나라에서 닦으며 학적을 만들어 두고, 외국에 가서 심도있는 교육을 받겠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국내 대학원은 유학 전의 준비를 위해서나 군 복무를 연기하기 위해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변화하고 있다. 성악은 서양 전통음악으로 역사가 유구하지만 우리나라는 일제 시대에 도입된 후 100년 정도의 짧은 역사인데다 동양인으로서의 체격 조건은 좋지 않아 외국 유학 자체가 꿈같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통 벨칸토 발성법을 서양에서 제대로 익혀온 사람들도 많고, 소프라노 조수미를 비롯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국 성악가의 등장과 세계 유수 콩쿠르에서의 활약 등 우리나라 성악가들의 평균 기량이 오히려 외국보다 더 낫다고 감히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은 국내의 공부 여건이 많이 좋아졌다는 증거다.

 

 

그러나 막연한 희망에 부풀어, 혹은 국내에선 못 했지만 외국에선 좋은 선생님을 만나 꼭 실력이 향상되리란 생각을 갖고 일종의 도피성 유학을 나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막상 유학을 나가면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기가 더욱 힘들다.

 

 외국보다 서울대에 훌륭한 스승 많아

허황된 ‘도피성’ 유학보다 국내에서 심도있는 공부를

 

이태리에만 한국 성악도가 2천 명이 넘는다고 한다. 독일이나 미국, 그리고 유럽 다른 나라까지 합치면 3천 명도 훨씬 넘을 것이다. 하지만 좀 비관적으로 말하자면 이들 중 상당수가 공부를 끝내지 못하고 귀국하거나, 귀국 후 성악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공부를 다 마쳐도 귀국을 못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물론 외국에서 주역으로 활동하고 인정받는 사람들도 있고, 국내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며 국내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해 귀국했지만 마땅히 일자리를 찾지 못해, 생계 유지를 위해서 아예 다른 직업으로 바꿔 돌아오는 경우가 상당수 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합창단 활동, 입시생 지도 등의 성악에 관계된 수입을 올리면서 학업 유지가 가능하지만 외국에선 이런 성악에 관계된 부직을 갖기가 정말 힘들다. 아예 전혀 다른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최근 이태리에서는 무분별하게 늘어나는 한국 유학생의 수를 줄이기 위해 규제를 강화해, 한국에서의 학부 졸업에도 불구하고 국립 음악원의 성격을 띤 Conservatory의 합격이 힘들어졌다. 운이 좋아 합격을 해도 Conservatory 1학년 과정으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5년제 과정인 Conservatory는 예전에는 한국에서 학부를 졸업하면 그 학력을 인정해 4학년 과정으로 넣어주곤 했다. 외국어로 내용이 똑같은 공부를 반복하는 이런 유학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최근 들어서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많이 증가했다. 아마도 필자와 같은 의견을 갖고 있는 학생이 많아서일 것이다. 막연한 유학보다는 보다 확실하고 현실적인 조건에서의 심도있는 공부가 더 낫지 않을까? 이것이 내가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이고, 다른 대학원생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내가 학교 측에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 이렇게 심도 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 유학 대신 서울대 대학원을 선택한 학생들과, 학교 방침인 ‘대학원 중심 대학’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작년에 신설된 음대 박사과정을 잘 살려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대 음대 대학원 과정이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해 나가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 © 대학신문 사진부

 이정훈(음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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