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르타쿠스로 회자되는 ‘을의 반란’

총선과 옥시 불매로 가능성 보여준 우리

‘갑’처럼 군림하는 정부와 기업 가운데서

진짜 ‘갑’인 우리들이 선택해야 할 때

수도로 난 길을 따라 서있는 6,000개의 십자가와 그 위에 매달려 죽어가는 노예반란군. 기원전 73년 이탈리아 본토에서 일어난 스파르타쿠스 반란의 결말이다. 살아남기 위해서 상대를 죽여야 했던 검투사들의 반란은 역사적으로 가장 많이 회자된 ‘을의 반란’으로 남아있다. 비록 반란은 실패로 끝났지만 한낱 노예들의 반란을 3년 동안이나 진압하지 못했다는 충격은 로마 사회를 강타했고, 노예의 처우를 개선하는 시발점이 됐다. 굳이 2000년 전 이야기를 꺼내온 것은, 올해 우리 사회에서 스파르타쿠스 반란만큼은 아니지만 ‘을의 반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두 사건 때문이다.

첫 번째는 4.13 총선. 60%를 채 넘지 못한 투표율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었지만 16년 만에 여소야대 정국을 열었다. 야권 통합이 총선 직전까지 불발하면서 1여다야 구도가 만들어졌음에도 여당인 새누리당은 제1당 자리를 지키지 못했다. 총선 다음날 외신들은 집권 여당이 과반 확보에 실패한 사실을 보도하며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권력 누수)을 우려했다. 그간 청와대에 대해 우호적인 입장을 견지해온 보수언론들조차 총선 후 ‘대통령이 직접 답해야 한다’ ‘청와대의 태도에 실망했다’는 사설을 내놓았다. 총선으로부터 1달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총선 후유증을 수습하기에 급급하다.

두 번째는 옥시레킷벤키저(옥시) 불매운동. ‘옥시 제품 리스트입니다. 불매운동에 참고하세요.’ 최근 인터넷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글이다. 가습기 살균제 파동은 옥시 측의 뻔뻔한 태도로 소비자 불매운동에까지 이르고 있다. 주목할 것은 소비자들의 적대적인 태도에 대형마트, 소셜커머스, 편의점 등 유통업체까지 진열대에서 옥시 제품을 치우는 데 동참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옥시 상품을 진열대 가득 쌓아놓고 할인행사를 벌인 한 대형마트는 소비자의 뭇매에 매대를 아예 철수해야 했다.

우리는 여태껏 정부와 기업이 ‘갑’으로 군림하는 사회에 살아왔다. 선거 전 ‘나라가 책임질테니 걱정 말고 아이를 낳으라’던 이들은 당선되기 무섭게 지자체로 예산을 떠넘겼다. 청년실업률이 10%를 넘어섰음에도 대통령은 노동개혁안의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수정해 나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없이 국회를 압박하는 말만 되풀이했다. 세균을 ‘싹싹’ 없애준다던 기업은 그저 자식 걱정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도 감감무소식이었다. ‘사람이 먼저’라던 기업은 쉰 살의 직원을 벽 앞에 꿇어 앉혔고, ‘품질을 고집’한다던 우유 회사는 정작 인격은 갖추지 못했다.

하지만 정부도, 기업도 사실은 갑이 아니었다. 유권자의 표심은 지금껏 승승장구해온 ‘선거의 여왕’의 이력에 큰 오점을 남겼고, 집권 여당은 아직도 아노미 상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비자의 분노는 옥시라는 세계적인 기업을 벼랑 끝에 내몬 것도 모자라 한국 시장에서 쫓겨나기 직전까지 끌고 갔다. 어디 옥시뿐인가. 탈취제, 섬유유연제 등 각종 생활화학제품도 줄줄이 소비자를 기만한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지금까지 ‘을’인 줄 알았던 우리는 사실 ‘슈퍼갑’이었다.

갑도 아니면서 자기들이 갑인 줄 알고 나대는 사람들은 아직 많다. 여전히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과도한 수수료를 요구하며 중소업체의 간을 빼먹고 있다. 히잡을 쓴 대통령은 외교성과를 부풀리며 지지도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 데만 급급할 뿐, 올해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지 못했다. 이들을 그냥 둘 것인가. 선택은 여러분, 슈퍼갑에게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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