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자립음악생산조합 취재를 위해 재개발 지역인 무악동 옥바라지 골목에 갔다. 강제집행일이었던 그날, 남은 두 건물 중 하나였던 ‘구본장 여관’ 입구에는 용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제부터는 예고 없이 용역이 들어올 수 있으니 튼튼한 철문을 달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쩐지 무거운 마음으로 옥상에 올라가 공연을 취재하고 돌아왔고, 조합을 소개하는 기사가 나간지 며칠 지나지 않아 옥바라지 골목에 철거 용역이 투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상을 보니 골목에 있던 사람들은 끌려나갔고, 안에 사람들이 있는데도 건물은 부서지고 있었다. 공연이 열리던 여관 입구는 펜스와 용역들로 막혀버렸다.

물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측의 대처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서울시장은 옥바라지 골목을 방문했고, 자신이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도 좋으니 어떻게든 철거를 막겠다는 이야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대처는 미리 이뤄질 수 있었으나 그렇지 못했고, 현재로서는 이뤄지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주민 측과 시는 지난해 이미 만나서 상황을 공유한 바 있다. 하지만 골목 건물과 토지를 처분할 권리도 서울시가 아닌 재개발조합에게 있어 절차상으로도 철거를 막기 쉽지 않다.

이러한 상황을 알게 된 자립음악생산조합 음악가들은 여관에서 진행하던 ‘강제음악회’ 대신 여관 앞 골목에서 기존 공연에 나왔던 음악가들을 모아 ‘총출석’ 음악회를 열었다. 골목 앞에는 철거지역 주민과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인 천막이 세워졌고 철거현장에 쳐진 펜스에는 철거를 반대하는 이들의 메시지가 적혔다.

지난 3주동안 나왔던 예술인협동조합 연재기사를 비롯해 내가 읽었거나 쓴 문화면 기사에서는 자생적 노력으로서의 ‘연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문화예술계에 있는 사람들이 현실적 어려움을 마주하고, 그들의 힘으로 일어나기 위해 모여서 벌이는 일들은 흥미로웠고 유익했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들을 많이 알게 되면서 나는 오히려 무덤덤해진 적도 있었다. 매주 기삿거리를 보면서 문화예술계의 어려움과 이를 해결하려는 자생적인 노력이 이제는 너무 알 만한 이야기가 돼버린 것은 아닌가 의문을 가졌기 때문이다. 기승전결이 있는 글에 맞추다 보니 그랬을 수도 있고 단순히 기사에만 열중해서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하지만 예술인협동조합을 취재하고 또 다른 기자들의 기사를 읽으면서 나는 이런 일들이 그저 ‘알 만한 이야기’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조합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해 노력하지만, 동시에 자신들이 속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나가려고 하고 있었다. 제작자에게 공정하고 관객에게는 다양한 면을 보여줄 영화 생태계, 홀로 일어서서 사회와 연대할 수 있는 음악계, 문턱을 낮춰 더 많은 대중을 만나는 발레까지, 이들의 지향점은 모두 자신들이 아닌 더 나은 사회와 문화생태계에 있었다.

시장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옥바라지 골목에는 현장을 바깥에서 볼 수 없도록 막는 미심쩍은 펜스들이 설치됐고 철거도 계속 진행되고 있다. 지금도 자립음악생산조합 음악가들은 ‘긴급문화제’를 열어 계속해서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자신들이 속한 곳을 지키고 바꿔나가려는 움직임이 계속되는 한, 내가 잠깐 가졌던 의문은 쭉 어리석은 생각으로 남을 것이다. 연대는 결코 진부하지 않다.

 

고유리 기자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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