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던 A씨와 B씨. B씨가 A씨에게 "살 좀만 빼보면 예쁘겠다"고 말하자 A씨는 갑자기 얼굴을 붉히며 언성을 높인다. "그건 여성혐오적 발언이에요!" 여성혐오적 발언이 과연 무엇일까?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지낼 수는 없을까? 이 물음에 답하려는 극이 있다. 7월 7일부터 9일까지 인문대 14동 소극장에서 세 번의 대화를 마친 '연극 비슷한 소통 프로젝트: 뒹굴(뒹굴)'의 '어떤 평화'가 그 주인공이다.

 창작극 ‘어떤 평화’를 기획한 뒹굴은 치열하게 놀 것을 지향하며 창작극을 올리는 극단이다. 연세대 ‘연세극예술연구회’에서 학부생들을 주축으로 2012년 시작된 이 모임은 이후 7명의 멤버들이 각기 다른 대학원으로 진학하면서 현재 소속대학을 넘나드는 연극집단으로 자리잡게 됐다. '어떻게 놀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은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방식이나 배우의 몸을 탐구하는 방식을 고민하며 창작 놀이를 꾸며 왔다. '어떤 평화'의 연출 성지수 씨(공연예술학 석사과정∙14)는 "뒹굴은 '논다'는 단어로 설명된다"고 뒹굴이 연극의 형식적인 측면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로이 극을 올리는 극단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들이 또 한 번 치열하게 놀기 위해 기획한 연극 ‘어떤 평화’는 ‘여성혐오 논의에 관해 과연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는 자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됐다. 성지수 연출은 “여성혐오적 발언들은 일상적인 대화에 이미 만연하다”며 ”고통의 목소리가 절단된 상황을 평화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고 말했다. 문제의식이 확실해지자 ‘어떤 평화’라는 제목을 먼저 짓고 총 세 개 막으로 구성된 극을 구상해나갔다. 3막이 1막을 재연하도록 해 2막을 중심으로 극이 대칭되는 구조를 만들었고, 극의 뒤에는 관객과의 대화의 자리를 30분 정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대사의 경우 실제 지인들이 일상적으로 들어왔던 여성혐오적 발언들을 바탕으로 해 살을 붙여 나갔다.

관객들은 극에서 나타나는 재연을 통해 여성혐오적 발언이 만연한 일상을 직관적으로 낯설게 느끼게 된다. 평범한 사무실에서 오가는 대화로 시작된 1막에는 여성혐오적 표현들이 위화감 없이 녹아있다. ‘예쁜 희범씨가 차 한잔 타줘요’ ‘남자친구 능력 좋다며, 빨리 결혼하고 집에서 쉬어’. 3막에서는 1막의 여성혐오적 대사들에 종소리라는 표지가 덧붙은 채 재연되고, 대사가 끝나자마자 울리는 종소리에 사원들은 전과 달리 귀를 막으며 괴로워한다. 결국 종은 계속 울리고 ‘요즘은 여성 상위시대니까’라는 대사와 함께 극이 마무리된다. 성지수 연출은 "일상적이고 익숙한 대화에 종소리를 덧붙여 낯설게 느끼도록 하려 했다"며 "우리 삶 속에서 공기처럼 떠도는 여성혐오를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극은 여성혐오 문제에 기계적인 중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한다. 2막에서는 ‘김치녀’ ‘맘충’ 등 여성혐오적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남발하는 아이들의 즐거운 역할놀이가 벌어진다. 그 중 한 아이는 대화에 불편함을 느껴 놀이에서 소외된다. 결국 아이가 미러링 단어를 사용해서라도 놀이에 참여하려 하자, 다른 아이들이 화를 내 다투게 된다. 하지만 이 갈등은 차근차근 해결되는 대신 중단된다. ‘다투지 말고 함께 즐겁게 놀자’는 누군가의 제안과 동시에 동요가 큰 소리로 흘러나오면서 다툼이 '일단락'되기 때문이다. 성 씨는 "엉성하고 급하게 화해하는 전개를 통해 사회에 만연한 젠더 혐오에 ‘싸우지 말자’며 (기계적인) 중립을 강조하는 입장을 비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혐오라는 사안에 관한 목소리가 다분히 논쟁적인데 과연 이런 평화가 실제 평화인가”라고 물음을 던졌다.

준비 기간이 짧아 다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있는 극이었지만, 막을 내리고 난 뒤 마련된 대화의 자리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오가 소통 프로젝트로서의 의미가 더해졌다. 공연예술학을 전공하는 박사과정생부터 연극을 좋아하는 학부생, 페미니스트 등 20명 내외의 사람들이 관객으로 자리해 목소리를 냈다. 관객 은승완 씨(연세대 경영∙12)는 "극 중반부의 욕설과 전반적인 대화들이 폭력적이고 불편하게 느껴졌다"고 이야기 했다.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밝힌 이혜리 씨(이화여대 기독교학과∙13)는 "미소지니에 관한 연극을 만나 반갑다"며 "소개된 재현들은 이미 잘 알려진 클리셰인 것 같아 조금 더 목소리도 내도 좋을 것 같다"며 여성혐오에 대해 더 많은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극 ‘어떤 평화’는 어떤 누구만의 평화가 아닌 모두의 평화에 대해 고민해보도록 해준다. 여성혐오적 발언으로 인해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고 밝힌 한 관객은 "내 불편함이 치료를 받아야 할 질병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여성혐오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는 목소리가 커진 한편으로 이 같은 변화를 불편해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일부는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불편해하기도 하지만 모두의 평화를 위해선 꼭 들어야 하는 이야기, ‘어떤 평화’는 무대 밖을 나가서도 계속 이야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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